소설 부 시 여 행 박 세 종 실낙원의 봄을 꿈꾸며 백두산 곰 한 마리가 한 굴에 살면서 항상 신웅神雄에게 빌어 사람이 되기를 원하니 신웅이 쑥 한줌과 마늘 반쪽을 주며 네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만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될 것이라 하였다. 곰은 그것을 받아먹고 삼칠일을 금기하여 고운 여자로 화하였다. 고운 여자로 환생한 곰은 쑥차를 아침 저녁으로 마셨을까? 또 마늘은 찜 쪄 먹고 여자로 거듭 태어났을까? 부시여행을 떠나면서 늘 사바나 언덕의 바람 속에서 가진 물음이다. 내가 알기로는 분명히 곰은 오늘의 서울 사람들처럼 무인 자동화 공장에서 만든 쑥차를 마시고, 마늘을 캔 통조림으로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삼겹살에 곁들어 먹지도 않았다. 결코 자연에서 나온 그대로 먹고 사람이 되었지, 원자로에 볶거나 구어 요란하게 먹지 않았었다. 마치 오늘의 파푸아뉴기니 부시사람들이 먹고 있는 타로와 바나나를 구워 먹듯 하였을 것이란 생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부시여행은 곰이 쑥과 마늘을 어떻게 먹고 아름다운 여자, 사람이 되었는 지를 밝혀 두고자 했다. 한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성경聖經에서 신과학新科學까지 가며 오며 이 물음의 해답을 얻기 위해 삼칠일의 열 배를 금기하여도 그 해답을 찾을 길 없었지만, 나는 여기 이 부시 여행에서 속시원하게 얻을 수 있었다. 부시Bush! 혹 부시라면 부시맨Bushman을 들먹이며 미개의 원시성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부시는 순수며 처녀성, 또 색깔로 치면 흰색이며 우리시대의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인간이다. 또 타율적인 남의 삶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의 삶을 가꾸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의 부시여행은 인간성을 상실한 실낙원의 봄을 찾아 떠나는 길 이야기며 주체적 삶을 찾아 떠나는 길 이야기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막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서울의 세종로를 걷고 있다. 모든 사물이 마냥 낯설게만 다가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가슴 속에 자리를 틀고 빛난다. 한없이 기쁘다! {{ }} 차 례 1. 서울, 바람의 도시에서 2. 떠남을 위하여 3. 하늘과 땅 사이 옥문 열고 들어서니 4. 하니와의 만남 5. No Problem은 문제 있다. 6. 블랙매직과 식인 7. 예측할 수 없는 땅 8. 신부값 9. 사랑은 자유라지만 10. 바나나 숲 속에서 11 엎친 데 덮친 격, 사랑 그리고 그 이후 몸살 12. 아이를 가지고 싶어! 13. 총각김치 있다면 처녀김치 왜 없노! 14. Mi Save와 Mi no Save 15. 나눔과 섬김 16. 뱀의 꼬임수 17. 축제, 그리고 죽음 18. 씽씽 19. 마스타 10키나 Okay? 20. 나는 씨받이가 되고 21. 시간여행 22. 돌아갈 날은 다가오는 데 23. 실낙원의 봄을 찾아 24. 내 사랑 꿈꾸며 부 시 여 행 1. 서울, 바람의 도시에서 두렁이고 싶다 밭두렁 논두렁 같은 냇물이 소리나는 산자락 돌아가는 지리산 어디메쯤의 논두렁 밭두렁이고 싶다 봄이면 제비꽃 피우고 가을 오면 누렁호박 다는 논두렁 밭두렁 부시의 두렁이고 싶다 동짓달 눈 내리는 밤엔 아이들 웃음소리 지켜보며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호미든 처녀아이 써레 멘 머슴아이 나눔과 섬김으로 함께 하는 두렁이고 싶다 꼽슬머리 검은 피부, 흰 피부면 어떠하리 싱그런 보리내음 가슴가슴 넘친다면 뉴기니 이랑 이랑에 물 가둘 두렁이고 싶다 - 두 렁- 입춘이 지나서도 xx아파트단지를 돌아 8차선으로 휭하니 포장된 아스팔트 한길을 내달려 오는 한 떼의 바람은 차갑다 못해 매섭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남쪽에서부터 봄이 오고 있다고 하지만 찬바람은 더욱 세를 내며 거침없이 거리를 내달린다. 가로등 불빛도 바람에 날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의 꽁무니를 뒤따른다. 매화며 살구꽃잎이 꽃샘추위 바람에 봄의 하늘과 언덕을 수놓다 입 속으로 날아들던 유년의 고향을 떠나온 날을 셈하며, 사각콘크리트 사무실에서 하루 일을 끝마치고 달과 별이 없는 밤하늘을 등지고 네온 빛 요상한 일상의 거리를 나선다. 시청 지하철역까지는 아직 약 4분 넘께 열심히 걸어야 하는데,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이 마치 목련꽃잎이라도 되는 마냥 나의 입과 코 속으로 거침없이 날아든다. 혹-흐, 혹-, 혹-, ...... 제기랄! 토할 것 같군. ...... 나는 왼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쪽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잡는다. 두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누군가에게 쫓기듯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나의 어깨를 툭-툭- 친다. 그때마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다행히 아무도 나에게 그 이상으로 다가들지 않는다. 눈물은 양 뺌을 타고 지상을 향해 흘러내리다 코 언저리쯤에서 거리의 먼지와 함께 알맞게 엉겨 말라붙고 있다. 행길가 교회의 첨탑 십자가에서 달려오는 불빛만이 반쯤 허리를 굽혀 움크린 채 가로수를 붙잡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헛구역질을 몇 번인가 되풀이한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시계를 본다. 빨리 보증금 9백만 원 월 15만원의 자취방으로 돌아가 대자로 눕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상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간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지만 운 좋게도 별탈 없이 계단의 마지막까지 내려가 캄캄한 굴 속에서 희뿌연 황사를 몰고 올 전동차가 내달려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지하철역의 매캐한 냄새가 다시 나의 머리와 심장을 후리치기 시작한다. 나는 용케도 빈자리에 앉는다. 무엇보다 차 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좋다. 따뜻한 온기가 있어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두 손을 양 무릎에 가볍게 내리면서 심호흡을 연이어 한다. 그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으니 눈꺼풀이 무거워 지면서 감나무밭 가는 길에 제비꽃이 보이고 ... 그 길 넘어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의 지나간 사건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려든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 ......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아 멘-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쯤인가 할아버지는 이렇게 시작되는 찬송가를 부르시곤 하더니 그해 가을이 그 진 끝나갈 때쯤 요단강을 건너가셨다. 중학교 졸업식을 석 달 가까이 앞둔 점순이 누나와 또래의 누나들이 마산수출자유지역의 전자공장이나 방직공장으로 떠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린 눈이 다음날 녹는 듯하더니 점심나절이 지나면서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지면서 동네는 다시 꽁꽁 얼어붙고 말았었다. 메밀꽃이 달빛과 어울려 신나게 춤추던 그 해 겨울 내내 점심은 고구마였다. 그 기나긴 겨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월남전에 돈 벌로 갔던 성종이 형이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돌아왔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마을에서는 귀환을 축하하는 밀가루 막걸리 마시기 대회(?)가 무 종다리에서 새하얀 꽃이 피고 꿀벌이 꿀을 찾아 지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또 새마을은 옛 마을과 달리 골목이 넓어지면서 시멘트 길이 생겨나고, 동구 앞 600년이 넘께 나이를 먹은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가구공장으로 실려가면서 부터 형들은 하나 둘 부산으로 서울로 떠나가기 시작하고 마을 군데군데 빈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논에 물꼬 보러 갈 때도 자가용 타고 갈 것이라 외치던 나라님의 말끝을 쫓아 희망의 80년 대가 왔지만 소값이 똥값이 되면서 송아지를 네다리씩이나 키우던 마구 아저씨가 마흔 다섯에 농약을 마시고 할아버지가 여든 일곱에 건너가신 요단강을 건너고 말았다. 고등학교 3학년, 모두가 대학교를 가야 한다며 도서관에서 불 밝힐 때 나는 여름 내내 고랭지 배추며 무밭에서 김을 매고 똥물을 두엄으로 주었다. 방학이 끝나갈 때쯤 여름 땡볕아래 키운 채소를 부산 새벽시장에 가져갔지만 해질녘 돌아오는 길, 남강물에 띄우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소값파동에 힘입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영광스러운 군인이 되고자 병무청을 도서관 드나들듯이 나든 끝에 그 이름도 유명한 백마부대 청도깨비가 되어 허구한날 날밤으로 이산저산 야행으로 땅굴을 파거나 아니면 멀건 대낮에 도깨비 춤을 <충정! 충정! 충정! ...> 추었다. 그러나 동네 한 가운데 있는 교회의 종소리는 언제나 새벽을 열었고 어머니는 나를 위해 여름날은 배추밭 두렁에서 비오는 날은 무논 배미 두렁에서 기도했다. 세상은 빈 콩깍지를 숨가쁘게 까 제겨도 국방부 시계는 어김없이 돌아 4년 6개월의 내면으로 내면으로 끝임 없이 침잠할 수밖에 없는 병영생활을 남의 표현을 빌리면 성공적으로 마치고 만기전역을 하였다. 백 번 넘어지고 일어나 넘는다는 백기재 길섶에 조상의 피 뚝뚝 흐르는 살점으로 모자이크된 감자밭 배추밭 이랑이랑을 타며 문둥이 같은 손으로 잡초를 뽑으며 드린 기도는 내가 서른을 앞둔 나이에 대학을 가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나는 차변이니 대변이니 하는 대차대조표며 손익계산서를 따지는 책과 말보다는, 4년 6개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똥인지 개똥인지 스스로 타락한 스타 장군 님이 친절히 지정해 주는 기호 밑에 도장을 찍어주고 맥심커피 한 잔 맞 대작한 나의 내력을 곱씹으며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밤새워 읽고 또 읽었다. 그래도 선거 때가 되면 소속 육지에서 똑딱선을 가지고 섬 백성을 모시러 오는 알뜰한 정당이 있어, 이들은 다만 그 배로 실려가서 실상 자기네 실생활과는 무연한 정치를 위하여 지정해 주는 기호 밑에 도장을 찍어주고 그 배에 실려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의 혜택이라곤 아직 받아보지 못한 그들의 생활 속에도 현대 문명인이 행사하는 선거란 상식이 깃들게 되고, 어느 정당이나 정치의 영향도 알뜰히 받아보지 못한 그네들에게도 투표하는 임무만은 지워져야 하고, 조국의 사랑이라고는 받아본 일이 없이 헐벗고 배우지 못한 그들의 아이들이 먼저 조국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훈령을 받고, 총을 메고 군인이 되어갔다는 것 ...... . 우리 아버지도 응당 이러한 군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리라. ...... 졸업을 앞두고 4년 가까운 그 동안 내가 한 말과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책임지면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했다. ...... 농촌.농민문제의 본질 ... 주체이어 할 농민의 자식이 ... 신식민지 지배이데올로기 체제교육을 배우고 ... 그리하여 오늘의 농촌.농민문제는 심화 ...의 문학적 접근은 ... 한국문학에 민족문학으로서의 농민문학으로 농민에 대한 공동체적 사랑의 실현 ... 농민이 자주적 주체적 인간적 삶을 영위하도록 ... 이는 곧 인간의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일깨워 ... 자기구원의 길을 스스로 개척 ...환희 넘치는 새생명의 삶을 ...... 이렇게 잔디밭에 앉아 말로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저기 저 불볕 속 뜨거운 땅으로 가야했다. 그리하여 나는 방학동안에 가나안 농군학교며 농업견학을 목적으로 한 달간 일본전역을 돌아다녔다. 일본의 농업은 식량생산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흙이 아니 콘크리트나 대형 철구조물 공장에서 식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흙(농업)은 공장이 공급하는 식량의 대가로 기계가 돌아가면서 내뿜는 굴뚝의 매연과 그 공장에서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간소외로 나타나는 것들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이를테면 자연과 인간의 자정기능의 도구로써의 농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얻게 되었다. 관광농원과 주말농장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1차 산업으로써의 농업이 아니라 3차 산업으로써의 농업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경영학사 졸업장을 받아지고 K자동차에서 부품구매를 하기 위해 거대한 무인 자동화 공장을 싸돌아다니게 되었다. 꿈과 이상은 이렇게 박살나면서 흰샤스에 넥타이를 매고선 현재의 불안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투명으로 늘 나른하고 시들시들한 나르시스터가 되고 말은 것이다. ...... 1년에 2호봉으로 대리로 승진하려면 ... 부장은 한 20년이면 ???. 파업으로 부품조달이 ... ㅉ으로 밤송이 까 보지 않았다면 이번엔 ... 회사가 학교로 착각 ...... 이런 것으로 다니던 직장을 한순간에 그만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내미 없는 수 싸움은 사투를 다투는 전투였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전장에서 오로지 필로한 것은 총과 총알이었다. 나는 총알이 되어 육탄으로 적 아닌 적을 죽여야 했다. 나는 그 싸움터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나는 남을 서서히 질식사 시킬 수 있는 담력이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급기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며 S신문으로 뛰어보기로 생각하고 도시의 거리로 돌아왔었다. 어딜간들 세상사 차이가 있을까마는 나는 새롭게 시작한 일에 혼신을 다하였다. 그러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가면서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만 갔었다. 일본의 나리타 공항을 처음 밟았을 때, 아니 부관훼리호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가 다시 신간센을 타고 도쿄를 갈 때까지만 해도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해발 600미터 이상의 고도에 의해 날씨는 서늘했고 따라서 여름배추는 심은 대로 무럭무럭 자라갔다. 물먹고 싶어, 아니면 지하철 타고 지하로 갈겨? 신출내기 치곤 ... 그래, 뭘 원하지! 당신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은 운 좋게도 가지게 될 것이여! ...... 나는 신참기자였지만 그 동안 머리와 두 발이 바쁘게 뛴 노력의 결과, 특히 나의 군 경력이 특별취재를 가능하게 했었다. 일본의 야쿠자가 부산으로 침투한다는 첩보에 따라 나는 혼자서 일본으로 날아갔었다.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전쟁이 끝나서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사카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사시는 우리의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일은 빠른 속도로 풀리기 시작했다. 도쿄로 달려가 빠징고를 중심으로 탐문한지 1주가 지나서 였다. 우여 골절 끝에 강동구의 대부 교포 2세와 단 둘이 만났고 이미 일본의 어두운 세력이 한국에 침투하여 사회의 여러 분야의 사업(?)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확인까지 했다. 그러나 첩보를 정보로 만들기까지 내가 가야할 길은 산너머 산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예를 들면, 말이 어두운 세력이지 표면적으로는 간판은 통일로 주변의 미군부대나 지역 안기부 간판들처럼 무슨 무슨 물산이니 공사니 하는 식으로, 또 버젓이 보통사람들이 보면 그를 듯한 깃발까지 높이높이 펄럭이고 있었다. 도시의 그 수많은 십자가는 모두가 자신만이 당신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붉은 불빛을 뽐내고 있지만, 사이비 종교란 활자들이 연일 신문의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말대로 총체적 부정부패, 폭력배 잡아라고 훈련시켜 내놓은 사람과 국민을 위하여 열심히 일한다기에 뽑아놓은 사람과 수출역군의 선봉장으로 뛴다는 사람과 또 그만한 그런 사람들이 함께 똘똘 뭉쳐 2천년 다가오는 새시대의 새로운 질서건설을 위해 마약과 집단살인, 심지어는 수 백만 시민을 상대로 한 생화학실험(생화학제의 공중살포 이후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측정)도 서슴없이 벌이는 사회 각 부분 각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결집된 집단임을 알고 길 없는 길을 발견했음을 느꼈었다. 나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불어오는 바람, 아니 헤쳐가야 할 지뢰밭을 잘 알고 있었다. 발목만 댕강 날아가는 플라스틱 발목지뢰가 아니라 엠 16대인지뢰로 인생을 마감하는 거대한 폭발력을 가진,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지뢰밭이었다. 아니 나의 직감은 정확했던 것이다. 굳이 지하로 보내겠다는 협박을 받기 전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총과 칼도 두렵긴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가슴이 답답해져옴을 느끼고 부터 였다. 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었다. 젊음의 패기, 혹은 촌놈의 무식한 배짱으로 세상 바둑판을 읽고 행동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기억하면 서울에서 부산 부산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다시 홍콩으로 정신없이 몸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강하게 이끄는 그 무엇이 있었다. 딱 잘라 이것이다 혹은 붉거나 파란색이라는 식으로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동해의 상공에서 창가로 바다를 내려다 보거나 안개비가 꾸역꾸역 내리는 김포공항에 내릴 때면 사람이 살지 않은 무인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그리고 섬짓하게 나타났었다. 최인훈이 광장에서 이명준을 자살케 한 것은 인생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지. 아니야, 바다에 수장시켜 죽일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도 그렇지. 난 지금까지 살고 있잖은가! 만약 내가 자살한다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바위처럼 잘도 굴러 가겠지. 바위 말이야. 부딪치고 깨지어 조약돌이 되어 둥글둥글 종말을 향하여 잘도 굴러가겠지 뭐! 아니면 더욱 산산이 부서져 모래가 될 거야. 그런데 그게 아니란 말이야. 자살 이후엔 내가 없고 세상도 없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역사도 죽는 순간 끝나게 되는 기라. 난 이명준을 죽이지 않아. 아니 죽일 수 없어. 역사는 살아있는 자의 것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에 이명준처럼 될 수 없어! 나는 지하 수십길 시멘트층 아래 전철 속에서 실낙원의 꿈을 타고 4차원의 광야를 막힘 없이 달리고 있다. 하마터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남지나 해의 물 속으로 사라질 뻔 했지만, 육군하사관학교 가스실에서 사점을 서너 번씩 넘기고도 살아온 나였기에 가로등도 매연에 움크리고 있는 서울의 지상거리로 올라간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나의 몸 속으로 찾아든다. 봄은 영영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뭍을 향한 바닷물처럼 밀려온다. 모퉁이를 돌자 한 떼의 바람이 나를 덮치면서 배속까지 바람이 들어갔는 지 배알이 싸늘해짐을 느낀다. 아까보다 한결 머리는 맑아졌지만 더욱 춥다. 왼쪽 확 트인 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똥도 약에 쓸려고 찾으면 없다는 말처럼 신문 한 장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걷다말고 주위를 휭하니 한바퀴 둘러보지만 바람을 막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은행나무집 대문에 다다랐고 대문을 열고 들어갈려는 차에 신문을 발견한다. 누군가 버린 신문이 바람에 하루종일 거리를 나돌다 자정이 넘어서야 대문 앞에서 쓰레기통으로 가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처럼 이 신문도 참으로 기나긴 하루낮 동안 포도 위의 방황이었던 것일까. 그래, 내가 찾던 신문이 아닌가! 웃음이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흐른다. 이젠 신문은 필요 없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모든 것은 변한 후였다. 그런데 나는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신문을 집어든다. 제3기 한국청년해외봉사단원 모집 농장경영, 한국어교육, 컴퓨터, 작물재배, 원예, 축산, 중소기업관리, 농경제, 태권도 ...... 파견국가 : 몽골, 스리랑카, 태국, 네팔,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순간 나는 머리에서 전기충격으로 스파크가 일어남을 느낀다. 나는 다시 한 번 천천히 모집광고를 읽어내려 간다. 동토나 열대의 나라 밀림 속으로 떠나고 싶다. 남미의 세네갈이나 몽골리아로 가면 될 것이다. 두툼한 옷을 입고 살면 누구도 나를 알 수 없어 좋고, 또 무엇보다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과 그놈들의 실험대상인 쥐새끼가 되지 않는다. 도시 사람이 내팽개 치는 꽁초가 없을 성 싶고 머리 싸자 매고 바둑판같은 세상 수를 헤아리지 않아서 좋을 것 같은 것은 덤이다. 내 삶을 즐기면서, 또 그게 바로 누군가에게 작은 그 어떤 것이나마 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다시 있을까! 내가 꿩을 먹고 그들이 알을 먹을 수 있다면 어느 모로 보아도 옳지 않은가? 혹, 외로울 땐 내가 나의 외로운 모습을 구경하며 더욱 절망해 보자. 그리고 절망 이후에 무엇이 기다리는 지 한번 보자. 그런 다음 인간이 되는 꿈이라도 꾸어보는 것이다. 절망적 고독을 향하여 달려가자. 그래, 가자? 기다! 2. 떠남을 위하여 다함께 잘사는 평화를 갈망하는 대한의 굳센 청년 KYV에 모였어라 나눔과 섬김의 드높은 한뜻 아래 기쁨과 슬픔마저 더불어 나누면서 한 세상 살자하네 화랑의 후예들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게 주신 이 만남 폭력과 무지와 가난의 묵정밭에 KYV 쟁기 메 갈 엎어 이랑이랑 나눔과 섬김의 씨앗 땀흘려 뿌리리 모두가 한 뜻 아래 정성으로 꽃피워 이랑이랑 피어나는 사랑의 향기 일랑 온누리 가슴 가슴에 넘처나게 하소서 - 평화의 기도 - 나는 국내훈련에 들어가기 앞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능한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떠나기 위해선 현재에 가진 그 어떤 것에 미련을 둔다면 결코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만나온 신혜에게 해외출장으로 당분간 만지지 못할 것이라며 마지막 작별을 대신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그녀와의 모든 관계를 정리한다. 가슴으로는 지울 수는 없겠지만 머리로는 충분히 그녀를 지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았을 때 그녀와의 결혼을 생각했었다. 사실 그녀 쪽에서 먼저 결혼이야기를 끄집어 내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쯤만 해도 그녀를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나고 그리하여 결혼으로 골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만남의 시간을 더할 수록 그녀의 생각은 나와 너무나 차이가 많았다. 언젠가 해운대를 밤늦게 거닐면서 내가 직장생활의 답답함을 말했을 때 그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훌쩍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그 이후부터 만남은 늘 사소한 생각의 차이로 다투게 되고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만 더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연히 만나는 횟수도 뜸하게 되면서 서로간의 머리 싸움은 지난 날의 서로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느낌과 감정까지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별의 이유는 너무나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말았다. 굳이 말한다면 성격 차이라고, 아니 충분히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생각의 틈이 점점 자라 극단의 이러한 이별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별은 또다른 새롭고 진보된 만남을 약속할지도 모르겠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헤어지게 된 것에 내가 훌쩍 어디론가 떠나기로 결심한 또다른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일까. 나는 신혜가 첫사랑이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도록 치명적이다. 무수히 많은 밤을 해운대 모래밭에서 혼자 보냈다. 깜깜한 밤바다에 떠 있는 배를 보았다. 해안의 따라 흘러나오는 따뜻한 아파트의 불빛을 바라보며 먼바다에 홀로 밤을 지새는 배, 내일은 항구에 닻을 내릴 꿈을 외롭게 꾸는 배를 수많은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 보았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 강남길로 해남길로 ... 무욕의 땅을 찾아가는 배야! 나는 결국 그녀를 떠나 홀로 강남길을 찾아 떠난다. 나는 지난 3년 가까이 만나온 여인보다는 나의 어머니와 헤어지는 데 더욱 가슴 저리다. 사실 짧게는 2년이지만 그 동안 고희에 들어선 홀어머니를 어쩌면 살아생전 뵙는 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면서 눈물 가득히 고인 고향의 하늘을 뒤로한다. 나에게 있어 고향하늘은 늘 그렇게 다가왔고 또 그렇게 사라졌다가 다시 또 그렇게 다가왔었다. 동구 밖 신작로까지 따라나오신 어머니를 뒤로하고 하늘을 한 번 보면 어김없이 높푸른 하늘에서 닭똥같은 비가 뚝뚝 떨어진다. 그러나 나는 늘 고향과는 멀리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고 그래서 더욱 고향이 그립고 사랑스럽다. 이별은 또 하나의 새로운 만남을 가져오지만, 다가올 만남이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그 어떤 것이더라도 고향과의 이별은 있을 수 없다. 비록 서말가웃도 못되는, 되돌아 보면 그저 그런 고향이지만 태어나 울며불며 자라온 그 산과 들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풀 하나 잠시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네 살과 피와 심장은 고향 하늘아래 자라는 나무 한 그루 풀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여져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어쩌면 돌아오질 못할 머나먼 여행을 앞둔 이의 고향, 나에게 있어 고향도 이렇게 다가온다. 부시여행! 남태평양의 예측할 수 없는 땅에 가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로 1992년 아카시아 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하던 무릎 한국청년 해외봉사단원 파견전 국내훈련에 들어간다. 봄비가 내리는 날 가방 하나 들고 수원 농민회관을 찾아 나선다. 이전까지는 한국 유네스코 사업으로 이천 유네스코 연수원에서 훈련을 가졌지만 봉사단 파견 사업이 외무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 사업으로 넘어오면서 임시방편으로 농민회관에서 파견전 훈련을 가지게 된 것이다. 3개월에 걸친 국내훈련은 봉사단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소양훈련, 현지어와 영어, 문화 및 신체 적응훈련, 현장 실무훈련 이밖에 노동과 명상 등으로 이루어 진다. 이러한 훈련은 능력과 책임감, 창조적인 인격체 형성에 목적을 두고 자발적 참여에 의한 철저한 생활중심 훈련이다. 합숙훈련을 통하여 예측불허의 열악한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준비에 남녀 50명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짧은 기간에 봉사자로서의 충분한 자질을 갖추기에 부족한 시간이지만 모두가 성실히 훈련에 임한다. 나는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농장경영 분야에 지원하여 부시의 부시 속에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연습을 한다. 그러나 훈련이 끝나갈 무렵부터 갑자기 부시의 도시, 파푸아뉴기니의 농업목축부 정책기획실(Policy Programming and Budgeting Division, 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Livestock)에서 활동하게 될 예정으로 파푸아뉴기니의 피진어(Tok Pisin - Language of Pidgin English)와 문화를 학습한다. 나는 파견국에 대하여 국내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매우 추상적이거나 일방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학습을 통하여 파푸아뉴기니에 대한 지식이 증대하게 되면서 2년간의 봉사활동에 자신감을 더하고 있다. 더욱이 파푸아뉴기니 종합대학(University of Papua New Guinea - UPNG)의 오토 교수(Dr Otto)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익힌 현지어는 부시 여행을 떠나는 동안 큰 힘이 될 것이며,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신체적응 훈련은 때로는 힘들지만, 2년간의 활동 동안에 건강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하며 매일 즐겁게 아침운동을 한다. 특히, 40킬로미터 도보행군이라 든지 지리산 종주훈련은 동료들을 보다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선녀와의 만남이 2차 40킬로미터 도보행군 날 있었기 때문인지 그 날이 지금도 또렷하다. 나와 선녀와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 되었다. 6월 밤꽃 내음이 천지에 가득하든 날 두 번째 40킬로미터 도보행군이 있었다. 이날 나는 3조 8명 가운데 포함되어 걷게 되었다. 여자 남자 반반으로 구성된 3조는 이른 아침 출발부터 유치원 아이들의 야외 나들이를 방불케 할 정도로 쫑알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오후쯤 해서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눈물을 찔끔찔끔 짤, 5-6시간 후면 찾아올 고통을 생각 못하는지 여자단원들은 연방 웃음을 남발하곤 했다. 이미 5월초에 백리 길을 걸은 경험이 있었지만 여름의 문턱에서 하루낮 종일토록 산길을 걷는 데는 상당한 용기와 인내가 필요했다. 선녀와 나는 3조의 선두에서 나란히 북한강을 옆에 낀 청평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6월의 햇살을 받아 총총한 별밭같이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때론 서로를 말없이 마주보며 걸었다. 강변 사람들이 손님맞이할 채비가 채 끝나지도 않은, 철 이른 여름을 찾아 나선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강변. 강물에 빠진 산 그림자가 오히려 즐거운 듯 남으로 남으로 내쳤다. 작은 모터보트가 강을 거슬러 상류로 달렸다. 강물은 고통스러운 듯 하얀 거품을 일으켰으나 금세 상처가 아물었는지 본래의 제 물빛으로 여름을 맞이했다. 말 그대로 사랑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에덴이 따로 있나요. 지금 우리는 에덴동산을 걷고 있지요. 내가 강물을 바라보며 다시 이야기를 끄집어 내자 그녀는 픽 웃으며 말을 받았다. 처녀 나이 서른이 넘으면 환갑 진갑 다 지낸 할머니지요. 할머니에게 아직 열 아홉 순이의 감성이 남아 있을까요? 그야 알 수 없지요!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는 진짜 할머니도 있는 모양입디다. 아 -, 이 진한 밤꽃내음! 늘푸른 마음으로 사랑하리....... 마치 자신의 존재가치를 저울질 하려는 듯 마지막 꽃잎 하나 달고서 하늘을 향하여 가슴을 열어놓은 저 언덕의 찔레덩굴...... 누구 약올리는 거유......? 지금! 아니 한 시간 후엔 절대로 함께 걷지 않겠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출발부터 지금까지 함께 걸었으니 이 사람 밑천 홀라당 다 듣고 보아 알았을 테니 ... 아니 한마디로 권태를 느낀다 이거지요! 이른 철에 설익은 풋과일 먹고 배앓이 하듯, 꼭 그렇군요. 배탈이다 뿐이겠어요. 처녀 나이 서른 하고도 넷이면 아직 시집가서 아들.딸 낳기 이른 때라고, 또 스물 아홉의 사내를 풋과일이라 사랑할 수 없다고 우기는 여자에겐 ...... 이렇게 도보행군을 가진지 몇 일이 지나서 였다. 야간학습이 끝나고 모두들 숙소를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3층 강의실에서 남자 방이 있는 8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든지 아니면 계단을 따라 6층 여자 방을 지나가야 했다. 그날도 나는 선녀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른 것이 였다. 그때 별안간 동료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강근대가 소리 쳤다. 요즘 선녀와 나무꾼 사이에 번개가 친데이! 이어 누군가 말을 받았다. 오늘밤 남자방 비워야제! 칠석날은 좀 기다려야 데지만 우짜겠노- 이렇게 앞 뒤 함께 숙소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모두들 한바탕 웃음바다를 만든 것이 였다. 그날 밤 이후 윤이영과 나는 공식적으로 선녀와 나무꾼으로 통했다. 여기서 선녀와 나무꾼이란 2차 도보행군이 있기 달포 전쯤 공동체훈련 시간에 내가 이영의 운동복 상의를 숨긴 데서 얻은 별명 이였다. 그때 얻은 별명이 극기훈련의 일환으로 가진 2차 도보행군 이후, 국내훈련 수료식이 다가 올수록 입에 오르내리는 횟수가 많아져 갔다. 특히 훈련을 지도하고 있던 선생들 사이에 요주의 인물로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지난해 2기 단원훈련 가운데 있었던 한 사례를 강조하곤 했다. 훈련기간에 처음 만나 싹튼 사랑이 활동 임지로 출발하기 하루 전에 결혼까지 하여 그들 둘 모두가 봉사단원으로서의 활동을 포기한 사례였다. 규정에 따라 단원자격 상실을 가져온 것이었다. 말하자면 단원의 신분은 미혼자여야 한다는 규정에 의해 제3기 한국청년 해외봉사단원에 지원한 여자 23명과 남자 27명 모두 서른 살 전후의 미혼자들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은 나와 선녀 사이에 합당한 비유였을 것이다. 이별의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올 수록 둘만의 시간은 밤을 새워도 짧기만 했다. 야간교육이 없는 날은 저녁을 먹자마자 만나 새벽쯤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즈음 나는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했다. 누가 보아도 대차대조표상으로는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또 이루어질 수 없는 도시인의 만남 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하여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져만 갔다. 선녀와 나무꾼 마져도 자신들의 앞일에 대해 알쏭달쏭해져 갔다. 언젠가 사랑으로 완전한 하나가 되기에는 아직 일러 배탈나지 않으려면 냉정하게 서로에게 주어진 각자의 삶을 성실히 가꾸어 가야 한다던 선녀의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주어진 삶이 어떤 것인가는 모르지만, 현재에 충실하자고 그 역시 몇 번씩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여자는 사랑에 살고 남자는 일에 산다지만, 나에게 있어 사랑 또한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러한 가운데 3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인간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모여 들었던 여러분들이 마침내 그 실천의 첫발을 내딛는 뜻깊은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며 앞으로 2년간의 봉사활동을 수행하는데 있어 항상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유지할 것 를 당부했다. 동시에 단원들 간에도 항상 화합하고 도와주는 자세를 가져줄 것 을 강조한 한국국제협력단 총재의 훈시에 이어 우리는 대한민국 청년의 명예를 걸고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나눔과 섬김의 정신으로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 이란 선서를 끝으로 제3기 한국청년 해외봉사단 발단식이 끝났다. 그리고 나와 선녀는 곧바로 서울, 네온사인이 빛나는 거리로 바람처럼 들어갔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무엇보다 하나의 결단이 필요했다. 두 길을 동시에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나를 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결단이란 게 어디 자신들의 이성만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인식은 인간 스스로 할 수 있어도 그 결단은 절대자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는 말이 있다. 8월 초순 하오의 햇살은 따가웠다. 서울의 공기가 탁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숨막힐 줄 몰랐다. 산 속에서 아카시아 꽃 밤꽃 향기에 묻혀 생활하던 지난 3개월이 꿈만 같았다. 산새의 노래는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으로, 밤꽃이며 들꽃의 향기는 거리에서 내뿜는 매캐한 냄새로, 솔밭 불어오던 미풍은 숨막히는 공기로 하루 낮 사이에 박여 버린 것이었다. 질식사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종로의 한 커피숍으로 갔다. 그 무슨 말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둘은 그 어떤 말이 필요했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커피를 다 비울 때까지 말이 없었다. 빈 커피잔을 바라보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왔다. 말이 없어도 통했다. 눈빛으로 말이다. 나는 계단을 내려 오면서 참사랑은 결단을 필요치 아니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은 둘 사이의 바램에 자연스럽게 행동을 같이하며, 또 자유하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던 3년 전 겨울방학 때 가나안 농군학교 새벽강의 시간에 들은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기다려야 한다. 나는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 결단에 대한 냉정한 행동이 발동되면 그 이전의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뒤돌아 서는 냉혈동물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시도 때도 모르고 내린 이 결단(?)에 따라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는 진주행, 선녀는 부산행 열차를 탔다. 물론 선녀는 경부선이었지만, 나무꾼은 호남선을 택했다. 내가 경부선을 타고 가 삼랑진에서 다시 진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대전을 지나 논산과 하동을 돌아 진주까지 가는 밤 11시 45분 서울발 통일호에 무거운 몸을 실었다. 또한 20일 후면 여정대로 선녀는 인도네시아로 나무꾼은 뉴기니섬으로 헤어지게 될 것이었다. 진주로 내려온 다음 날 나는 중산리 법계사를 돌아 천왕봉에 올랐다. 뉴기니행 부시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던 날도 나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면서 였다. 군대를 제대하고부터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에 혼자 지리산을 찾곤 했었다. 법계사 로터리 산장에 도착하면 밤 8시쯤 된다. 이후 새로운 만남을 위해 준비해 간 두 홉들이 소주 두 병을 놓고 약속 없이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잔을 돌려가며 마시며 또 남의 이야기에 귀를 곤두세우기도 하다 새벽 1시가 넘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달빛을 머리에 이고 걷는다. 말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고 하지만 실은 달빛을 밟으며 혼자 걷는 천왕봉 가는 길에 머리를 깨끗이 씻곤 했던 것이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산을 찾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나는 일반 등산객들이 잘 찾지 않는 어린이 자연학습원 쪽의 길을 택해 산장으로 갔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는 빨주노초 파난보의 빛깔로 달려왔고 산새들의 노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하란 소리로 들렸다. 그런데 오솔길 옆에 핀 용담초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철이 늦어 그런지 아니면 한 송이 꽃을 피우기엔 아직 일러서 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꽃이 피기 직전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습원의 우리 나라에 자생(自生)하는 꽃을 연구하는 분께 물어 보았지만, 뿌리를 약용으로 하는 무슨 무슨 꽃이라며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였다. 새벽 5시 45분. 해가 구름 속에 가려 햇살이 쯧쯧 거리며 지상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발 아래 멀리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빛과 어둠이 함께 섞갈리어 뒹굴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지리산을 찾고 나서 처음으로 아무런 결말을 내리지 못했다. 되려 가슴은 뛰고 머리는 혼란스러워져만 갔다. 진주에 돌아와 다시 대나무 숲이 우거진 남강변의 찾았다. 어느 날은 아침과 저녁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 깊은 어둠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다. 세인씨 ...... 어- 윤이영! 어딥니까? 왜 이렇게 만나기 어렵습니까. 어디냐니까! 지금 출발하면 아마 저녁쯤엔 만날 수 있겠지요? 안돼요 -요-요 -요......! 실습중에는 곤란하다니까. 아니 오늘만 날인가요. 내일도 2년 후에도 태양은 오늘처럼 떠오를 것인데- 발단식이 있던 날 밤 늦게 서울역에서 헤어진지 보름이 지나서야 전화로 만난 것이다. 후에 알았지만 그 동안 선녀는 선녀대로, 나무꾼은 나무꾼대로 속을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지 말랬는데! 칠석날 오작교가 텅- 비었기에 뛰어서 왔제. 뭐 잘못된 게 있습니까. 보고싶어 볼라꼬 왔을 뿐인께 ...... 그럼 이제 가알라요. 그런데 얼마 후 선녀와 나무꾼은 농장을 뒤로하고 읍내를 향해 걸었다. 선녀가 실습하던 농장에서 이천읍까지는 솔밭 지름길을 따라 걸어도 족히 50분은 넘는 거리였다. 그날은 어느 때 보다도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소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은 한반도를 향해 북상중이라던 태풍의 영향을 이미 받고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은 솔밭에 어둠을 몰고 왔다. 한 20분쯤 걸었을까 검은 구름으로 덮인 하늘 가장자리에 유난히 빛나는 별이 하나 보였다. 그때 나무꾼은 선녀의 오른손을 꼭 잡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읍내의 불빛에 방향을 잡아가며 걷던 발길을 멈췄다. 풀잎이며 나뭇가지들이 서로 몸을 비벼댔다. 나무꾼은 선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융성이던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지나가던 바람도 숨을 죽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솔밭둥지에서 잠을 청하던 한 마리 새가 --놀라 하늘높이 치솟았다. 3. 하늘과 땅 사이 옥문 열고 들어서니 바람이 불-고 마음이 울던 날 바다 건너 어디 메쯤 부시가 있다 길래 어쩌면 돌아가지 못할 석기(石器)로 떠나왔네 하늘과 땅 사이 옥문 열고 들어서니 걸인이 멱을 감고 떠나가진 않았어라 아담과 하와의 동산 파푸아 뉴기니 눈 한번 깜박하고 다시 보니 딴 세계라 허한 마음 분한 마음 두고두고 생각하네 동산은 엉겅퀴 가시덤불 엘리엘리 라마 사막 다니 - 내 사랑, 파푸아 뉴기니 - 내가 찾고자 하는 부시를 어쩌면 선녀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가지고서 김포 공항을 출발한지 만 이틀째인 1992년 9월 1일 5시 50분 새벽. 갑자기 비행기가 속도를 줄이자 나의 몸이 좌석의 등판에 가 부딪친다. 보잉기의 날개가 지상을 향하면서 흔들리자 해안을 따라 숲이 나타나더니 다시 군데군데 연기가 피어 오르는 올망졸망한 민둥성이 산이 나타난다. 열대의 밀림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날아왔는데, 예상과는 달리 검둥이 혹은 갈바랜 민둥성이 산이다. 그리고 황톳빛 끝없는 대지가 나타난다. 건기(乾期)와 우기(雨期)의 두 계절 가운데 건기의 계절로 6개월 이상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풀이란 풀은 건초로 변해 있고 여기에 화전을 위해 불을 질러 검게 탄 산이다. 이름하여 사바나 언덕이다. 이윽고 비행기가 다시 수평을 유지하자 하나의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수 같은 바다, 해안을 따라 군데군데 집들이 보인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중턱쯤에 빌딩이 홀로 폼을 내며 솟아 있다. 파하란 바다에 정박중인 배들은 마치 화석으로 변한 새들과 같다. 수의처럼 도시를 뒤덮고 있을 연기며, 유류저장소의 번쩍거리는 담벽, 공장의 철 구조물 같은 것들은 찾아볼 수 없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스튜어디스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 모르스비의 잭슨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92년 9월 1일 새벽 6시 보잉기가 드디어 땅에 내려 앉는다. 파푸아뉴기니의 첫 아침을 이렇게 에어 뉴기니(Air Niugini) 기내에서 맞이한다. 밤사이 마닐라(Manila)에서 포트 모르스비를 날아온 것이다. 비행기 트랙을 내려오는데 강한 햇살이 세차게 달려와 머리에 부딪친다. 금세 머리가 뜨거워진다. 또한 강한 햇살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여기다 여기! 어디선가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날아왔다. 전날 필리핀에서 대한항공 스튜디어스의 달콤한 한국말을 마지막으로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던 참이다. 입국수속을 위해 한국의 어느 간이역과 흡사한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오는데, 1년 전에 먼저 발을 내 디딘 2기 단원들이 활주로와 청사가 접하는 철망 밖에서 두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나 또한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썰렁한 검사대로 들어간다. 양국간의 협정에 의하면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나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입씨름이 붙는다. 순간 UR이 어떤 식으로 협상되었고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 짐작이 간다. 결국 라면과 고추장 약간을 압수 당하고 여기에 세금까지 물고서야 공항광장으로 나온다. 밖은 공항청사 안과는 달리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맨발의 사람들로 혼잡하다. 선배단원들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즈음 검은 피부에 꼽슬머리 현지인들이 검붉은 입을 벌리고서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본다. 나 역시 그들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는데, 허술한 반바지 차림의 선배단원들을 발견, 처음 만났지만 서로 부둥켜 안으며 통성명을 나눈다. 그리고 나는 수 백 수 천의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건다. 봉숭아 꽃잎같이 생긴 북엔베리 꽃으로 만든 꽃목걸이가 가슴에서 붉게 타기 시작한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피부색과 말과 음식마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남반구 남의 나라 땅에서 살면서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 진홍의 꽃잎 되어 흰 실에 하나하나 꿰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선배들을 보면서 그들이 떠나오기 전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부모님이 계실 터이고 또 사랑하는 여인도 있었을 것이며, 그 동안 태어나 자란 고향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순간 지금쯤 서울에 있을 선녀가 보고 싶다. 이러한 순간도 잠시, 나는 임시숙소로 가기 위해 노다지로 달려오는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고갯길을 걷기 시작한다. 약 500미터쯤 걸었을까 나는 새삼스럽게 뉴기니섬에 쐬는 햇살이 정말로 무섭다는 것을 확인한다. 대빵 선배님, 좀 쉬어 가는 게 좋겠습니다. 얼마나 걸었다고 쉬어가긴 ... 잠시 야자나무가 있는 곳에서 쉬어 가기로 한다. 야자나무 밑의 바람은 달콤한 솜사탕 같다. 마치 한국의 가을 바람같이 나의 목덜미를 파고든다. 땀에 젖은 옷은 금세 말랐고 다시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당지역에서 버팔로 사육 축산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던 강신형은 몸에 난 종기가 땀으로 인하여 더욱 가려운지 연신 몸의 이곳 저곳을 문질러 댄다. 또한 레이지역에서 농작물 병충해 방제에 몰두하고 있던 안상현은 목을 완전히 덮은 검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고, 남부지방의 베레나에서 벼 생산 시범농장을 개척하던 성백주는 검게 탄 목덜미에 흰 반점까지 생겨 있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넘친다. 그런데 나는 야자나무 밑의 바람을 마냥 즐길 수 만은 없다. 다시 언덕을 걸어서 넘어야 한다. 고독한 태양의 시새움 아래. 우리 일행이 잭슨공항 언덕을 넘어 5마일에 있는 그랜빌 모텔로 가는 데 전형적인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 담벼락에 아이들 낙서하듯 얼굴과 팔뚝에 이리저리 그려 넣은 시퍼런 줄무늬의 굵직굵직한 문신들, 게다가 엉성한 이빨 속으로 들여다 보이는 핏빛 타액! 모든 새로운 것이 무섭게만 다가온다. 특히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부아이라 불리는 열매를 상습적으로 씹고 있었는 데 씹을 수록 타액과 혼합되어 선홍색의 액즙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핏빛 타액을 거리의 여기 저기에 내뱉어 놓아 마치 카인의 대지에 물든 아벨의 피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신발을 신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수염이 얼굴을 뒤덮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종로나 명동에서 볼 수 없었던, 어린아이의 웃음이 얼굴 가득 피어 있다. 그들의 얼굴과 마주할 수록 인정미 넘치는 그들의 삶에 나는 금세 안심할 수 있다. 그들은 십년지기나 되는 마냥 할로! 하며 나에게 다가온다. 도착한 둘째 날부터 현지적응훈련을 파푸아뉴기니 대학에서 시작한다. 대학은 1965년 개교하여 의학, 경제학, 교육학, 지리학, 역사학, 법학, 정치학 및 심리학과가 있으며 5천 3백여 명의 학생을 가지고 있다. 30만 권 이상의 장서를 데이터 베이스에 잘 보유한 Michael Somale 도서관이 있지만, 대학이라기 보다는 흡사 거대한 플랜테이션 농장과 같다. 교정의 수많은 나무 가운데 꽃이 피지 않는 나무가 없고, 또 꽃이란 꽃은 모두가 화려한 원색으로 적도의 태양과 바람을 즐기고 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기숙사는 콘크리트 바닥에 목침상 하나만이 덩그래 있다. 도난과 라스칼(Rascal)이라 불리는 떼강도의 침입 같은 사고와 말라리아 모기 때문에 설치해 놓은 창살은 마산 교도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곳이다. 기숙사의 여학생 방이 밤 10까지 남학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점을 즐겁게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년이 지나서 였지만. 강의가 없는 오후에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지 않고 시장이며 학교, 병원, 터미널, 은행 등 갈 수 있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 찾아 다닌다. 대중버스(PMV)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어디를 가나 가는 곳마다 처녀아이들이 침을 흘리며 늙을 잃고 한국청년을 바라보다가 막판에는 하나같이 같은 말을 외쳤고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마치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듯 해 보인다. Yu orait? ......" ???!!!...... 이렇게 시작된 생활은 예상보다 빨리 적응해 간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서든 2년은 살아야 한다는 각오가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좀은 지루한 강의도 조금의 긴장과 즐거움을 가지고 받을 수 있다. 육군하사관학교 정문에 큼직하게 붙어있는 강한자만이 살아 남는다 는 표어처럼 알아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틀 무렵 남태평양의 바다는 환상적이다. 차츰 환하게 밝아 오면서 다가오는 하늘은 흡사 북극의 대설원처럼 흰 뭉게구름이 일출에 반사되어 종잇장처럼 평면으로 나란히 뉘어졌고 발 아래는 작은 섬들이 바닥에 떨어진 밥 알갱이처럼 수 없이 널려져 있는 모습에 늙을 잃곤 한다. 아침은 늘 그렇게 일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한편, 나는 매일 삶의 처절한 투쟁을 치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린내 나는 고기며 역겨운 냄새, 시꺼멓고 지저분한 거리의 사람들, 천장의 불개미와 도마뱀, 찾아드는 말라리아 모기떼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수 개월이 지났을 때에 모든 것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지만, 강의 중간중간 짬짬이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말을 하고 같이 웃고 생활하는 가운데 너무도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나는 두려움을 잊어가고 있다. 역겨운 고기도 먹고 파파야 망고 삶은 바나나 등도 달게 먹는다. 광적으로 열광하는 관중들 속에서 럭비경기를 구경하기도 한다. 하늘은 한없이 높아만 가고 햇살은 더욱 따가워 가지만 하루 하루의 날들은 긴장 속에서도 탐험을 즐길 수 있다. 몇 주가 지나서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안녕의 편지를 나는 파견기관인 서울에 보낸다. 흔히들 파푸아뉴기니를 인류문화의 박물관 또는 신석기(新石器)시대로부터 현대문명까지 라는 말을 하면서 무한한 시간여행과 문화여행이 가능한 지구상의 몇 안되는 보고의 나라 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지난 4개월 동안 서울과 파푸아뉴기니에서 파푸아뉴기니의 문화학습을 통하여, 한마디로 에덴동산 뉴기니섬의 마지막 실낱같이 남은 처녀막이 찢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금물결 춤추는 이곳은 남태평양 발 벗은 아이는 열두 달 물 속 사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게 주신 이 만남. 야자수 그늘 아래 맨몸으로 살아간다 미개의 원시인이라고 말하는 간교한 뱀 참으로 선악과 일랑 먹지 말라 하더냐. 아담과 이브가 코카콜라 마시던 날 에덴의 뉴기니섬은 엉겅퀴 가시덤불 아담은 총을 쏘면서 거리거리 헤매네! 이를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폐쇄적인 부족사회에서 급속한 현대문명의 유입으로 나타나는 반사회적 갈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 완톡, 부아이, 창살문화 등 이들 문화의 단면적인 이해를 넘어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사회. 문화. 경제 등 파푸아뉴기니 전반에 대한 사전 학습은 계속된다. 졸음이 몰려오고 모기가 피를 빨아대도 <부시 여행에서는 알아야 산다>는 말을 되새기며 강의를 한쪽 귀로 흘려버릴 수 없다. 일요일 길에서 혹은 운동경기를 하고 있는 빈터, 아름드리 나무에 올라가 가지에 마치 뽕나무 오디처럼 매달려 있는,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는 검거나 희고 또 노란 시장 사람들을 이해하고 아는 데는 보다 체계적인 교과서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강박관념을 강의실에서 조금은 풀 수 있다. 특히 그들 속에서 어울리며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려면 인류학자들의 연구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인류학자들은 파푸아뉴기니의 주민을 파푸안형과 멜라네시안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파푸안형은 최초의 이주민으로 주로 내륙에 살고 있으며 멜라네시안형은 해안지대와 작은 섬들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파푸아뉴기니의 주민은 유럽과의 접촉이 있은 후로 거의 혼혈되어 다른 멜라네시아 주민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 간혹 중앙 고원지대와 라부, 아이오메, 마당지방 등에는 니그미나 피르미로 불리는 종족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이들 역시 별도의 이주민은 아니다. 마누스 지방의 북서쪽 섬들에 사는 주민은 마이크로 네시아인들이며, 타우와 누쿠마누 군도에는 폴리네시아 혈통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일 뿐이며 대부분의 주민은 멜라네시안인으로 북솔로몬 부카지방의 세계에서 가장 검은 피부인들과 트로브리안드와 포트 모르스비 주변의 좀 크고 밝은 피부의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사회구조의 변화는 외부와의 접촉으로 인해 초래 되었지만 아직도 전통적인 주민들의 생활은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어떤 지역에는 소유와 거주의 모계원칙이 지켜지고 다른 지역에는 부계체계가 유지되고 있다. 간혹 조금한 마을이나 외딴 가옥에 거주하는 주민도 있지만 거의 50명에서 300명 정도의 촌락으로 사회가 구성되며 거주지도 각 지방의 환경에 따라 형태나 규모, 재질 등이 다양하다. 폴리네시아나 휘지와는 달리 파푸아 뉴기니에는 어떤 세습적인 지도자도 없다. 보통 마을의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 보다 능력이 있고 계속적으로 선물교환과 잔치들을 베풀면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주민의 생활은 공동체적이고, 경제는 자족적이며, 마을 밖으로의 어떤 의무도 없다. 이러한 배타성은 점차 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국가의 통합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전통적인 종교와 의례, 신념체계는 남아 있으며 주술과 마법사의 효험은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인이 오래 전부터 교역로는 있었으며 해안가와 내륙의 상품은 마을에서 마을로 교환되었다. 포트 모르스비 주위의 사람들은 파푸아만으로 일년에 한 번 무역여행을 떠났으며 그릇과 사고야자를 교환하였다. 모든 마을은 나름대로의 죄와 형벌에 관한 관념이 있고 어떤 곳에서는 주로 의례적 목적으로 사람사냥을 하였고 식인풍습을 행하기도 하였다. 주민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867개나 되는 언어의 다양성에 있다. 이러한 언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정책들이 시도되어 왔다. 제2차 대전 전에는 교통어(Lingua Franca)로서 히리 모투어(Hiri Motu or Police Motu)를 사용하기도 하였고, 독일 통치시기 이후로는 피진어(Pigin)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최근에 들어와 점차 피진어가 모투어를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어는 영어이다. 전체를 통틀어서 어떤 일반화를 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아직도 인구의 80퍼센트 이상, 대부분의 주민이 촌락에서 생활하고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각종의 전문가들.대학 졸업자들.상위의 공무원이나 정치가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튼 촌락의 주민들까지도 최근의 급격한 사회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1880년 이래로 유럽인들의 정책이 지속되어 주로 무역과 선교와 관련된 독일, 영국인들이 계속 증가하였다. 뉴기니에서는 주로 코코넛이, 파푸아 지방에서는 금광의 개발이 중심이었다. 제2차 대전 무렵에는 이미 뉴기니에 4천 399명, 파푸아에는 1천 822명의 유럽인이 살고 있었다. 제1차 대전을 계기로 금광은 거의 문을 닫고 고무산업이 설립 되었으며, 1921년 뉴기니의 신탁통치가 시작 되면서 는 호주인들에 의해 플랜테이션이 개발되었다. 모로베 금광으로 인하여 유럽인들이 대거 유입되기도 했다. 이 모든 산업은 일본의 침략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으며 전쟁 후에야 호주의 전후 피해보상 기금에 의해 산업이 재건되었다. 전후 세계상품 가격의 급등에 따라 파푸아뉴기니 플랜테이션은 호주에 의해 적극적으로 가동되었으며, 여러 공공부분에서 유럽인들의 참여가 두더러 졌다. 1971년에는 외국인들의 수가 50만 757명이었으나 1976년에는 다시 34만 812명으로 감소하였다. 과거의 외국인들은 파푸아뉴기니에서 상주하거나 정착하는 경향이었는데 최근에는 계약에 따라 수 년 간만 일시 거주하는 경향이 있다. 1993년 현재 외국인은 약 5만 명으로 호주인이 1만 5천 명, 한국인 100여 명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약 3만 명, 기타 영국과 미국인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편 중국과 말레이인 등의 아시아인들도 많았는데 1957년에 거의 모두 호주의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현재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조부모가 모두 파푸아뉴기니인이거나 8년 이상을 거주했을 때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 1992년의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 약 400만 명 가운데 약 20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나머지는 모두 시골마을, 즉 부시에 거주하고 있다. 10세 이상의 인구 중에서 영어는 20.17퍼센트, 피진어는 20.2퍼센트, 모투어는 4.51퍼센트, 기타어가 14.23퍼센트로 문해가 가능하며 67,8퍼센트가 문맹자다. 마찬가지로 10세 이상의 인구 중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은 22.3퍼센트, 피진어를 쓰는 사람은 45.01퍼센트, 모투어는 9.41퍼센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국민에게 우리 나라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려 하자 일부에서는 국민의 자유를 빼앗게 하는 일이라며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는 1976년 9월 16일에 영연방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여왕은 파푸아뉴기니를 대표하는 총통을 지명하는 데 실제로 총통은 국회에서 기밀의 무기명 투표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6년이다. 독립정부는 독자적인 헌법을 갖고 있는데 이는 1949년 파푸아뉴기니법에 호주 국회에서 통과된 것을 개정한 것이다. 이 헌법은 국회와 장관들의 집행 위원회, 사법부, 공공행정, 총통과 시민권 등에 대해 규정을 두고 있으며, 정부의 수반은 국회에서 선출되는 수상이 되고 있다. 1994년 현정부는 윙거티(Wingti)가 이끄는 인민민주운동당(People's Democratic Movement)을 중심으로 연립내각을 구성하였다. 5개의 정당이 현정부와 야당인 팡구당(Pangu Party)을 중심으로 크게 나뉘어 지고 있다. 그러나 수상의 도덕성이 날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그의 통치력이 얼마나 갈지는 의문이다. 또한 수도를 제외한 전 지역이 19개의 지방정부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이러한 지방자치 제에 의해 각 지방정부는 국가의 정책 내에서 지방의 정책 수립과 수행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학교, 무역업의 인허가, 술 판매, 촌락법정 등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또한 지방정부는 지역사회개발과, 농업과 어업, 보건, 교육 등의 분야에 대한 입법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의회활동과 서로 상충되기도 한다. 각각의 지방정부는 지방의회와 집행위원회를 두고 있다. 중앙정부는 권력의 지방분산을 위하여 정부부처에 분산화부를 설치하고 지방정부와의 조정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의하여 일차산업과 교육, 기업발전 및 보건 의료 등의 분야는 지방정부에 이관하고 있다. 또한 각 지역의 지방정부는 지역정부협의회(Local Government Council)를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각 주요 도시에는 도시협의회(City Council)가 있다. 법정은 국가법원, 지방법원, 지역법원, 촌락법원, 아동법원, 탄광법원 등이 있다. 모든 법은 파푸아뉴기니 헌법에 의해 보장되며, 정의부(Department of Justice)에서 법적 제한 장치에 대한 책임을 진다. 또한 민원 조사관을 파견하여 법의 공정한 집행을 감시 조정하고 있다. 정부기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공무원들에 의해 충원되고 운영되는데, 이를 위하여 공무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호주와의 협정에 의하여 호주의 전문일력들이 파푸아뉴기니 정부에 고용되었으며, 국제연수센터를 통하여 호주정부는 태평양국가의 제반 행정업무에 관한 연수를 담당하였다. 오늘날에는 총리부, 국방부, 교육부, 재무부, 외무부, 보건부, 정의부, 노동부, 상업부, 토지조사환경부, 광자원부, 경찰부, 일차산업부, 공공사업부, 교통부, 민항부, 공공공급부, 공무위원회부, 분산화부, 도시개발부, 가정복지부, 농목축부, 수산부, 산림부 등 총 26개의 정부부처가 있으나 지방정부의 끊임없는 독립요구 등에 의해 점차로 지방정부의 비중이 강조되면서 중앙정부의 업무는 계속 분산되고 있다.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마냥 이어지던 강의는 현지적응 기간이 끝나면서 멈춘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강의실에서 얻은 지식을 매우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현지적응 훈련기간이 끝나면서 농목축부 청사에 출근을 한다. 2차대전 당시 맥아더 장군의 사령실이었다는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봉사활동 하면 대학생들의 농촌 일손돕기, 혹은 의료봉사와 같은 식의 활동을 생각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유엔 식량기구가 지원하는 시장조사 자료를 컴퓨터를 이용하여 분석 정리하는 일이다. 옥스포드 대학원을 나온 방글라데시 출신 계약공무원이 직접 나에게 일을 준다. 주어지는 일은 유엔 통계전문가 봉사자와 현지인 공무원들과 함께 일을 해야한다. 국가간의 협정체결에 의하여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제공해야 할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서울에서 간단히 가져온 짐조차 풀지 못하고서 매일매일 주어지는 일을 위해 영어며 컴퓨터와 함께 퇴근해서도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발붙이고 살기 위해, 나의 부시여행은 오줌똥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시작된 것이다. 나는 어느새 크리스마스 파티와, 5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고 나서야 또 한해의 끝에 서 있다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도 그를 것이 크리스마스는 세상가득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캐럴송이 거리거리 흘러 넘치는 것인데, 언제나 야자나무 꼭대기 위의 태양은 심술쟁이로 나의 가슴까지 불덩이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가는지 아니면 오는지 또 아니면 멈추어 버린 것인지 기후로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출근을 하면 모두가 하나같이 크리스마스 휴가계획으로 바쁘다. 1주일씩의 휴가기간 동안 무엇을 할까?, 고향 부시마을에 다녀오겠다는 현지인들이 부럽다. 수 백달러나 하는 항공비를 생각도 하지 않는 그들이 마냥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연휴를 아파트 철창 속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부시여행을 떠날 수밖에 ...... 4. 하니와의 만남 오랜지빛 저녁노을이 붉게 변하면 사바나 언덕에 우기(雨期)가 시작된다나요 그리움 그 끝에서, 저녁노을 바라봅니다 먹이를 찾아 나선 도마뱀 우는 저녁 365일 가운데 오늘은 283번째 맞이하는 오랜지빛 저녁노을이랍니다 검게 탄 사바나 언덕, 그리움도 붉게 타고 있습니다 - 그리움 33 - 나는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금빛 반짝이는 하누바다(Hanubada) 가장자리를 걷는다. 산호초가 먼바다 광대한 짙은 푸른색과 어우러져 더욱 하얗게 빛난다. 바닷물이 정강이까지 올까말까 한 그 멀리 100미터쯤 되는 곳까지 달려온 성난 파도는, 깊은 밤 사랑의 끝에서 사정없이 허물어지는 남자 마냥 하얀 거품을 토해내면서 뭍으로 뭍으로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힘을 잃은 물결은 마치 남이섬에서 본 강물같이 잔잔해진다. 수많은 야자나무가 줄을 지어 이 모습을 바라보며 소근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 온다. 작은 물고기 떼들이 밀물에 몸을 맡긴 채 여기저기 놀다, 간간이 물결이 치면서 나는 모래알들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바다와 모래톱으로 분리된 웅덩이의 물이 산들바람이 불면서 반짝거린다. 실개천 피라미 같은 한 떼의 작은 고기들이 산호초를 한 번 돌더니 나의 발목 주위로 몰려든다. 어떤 놈은 나의 다리에 입질을 하다가 나의 움직임에 놀라, 바닷물에 잠겨 검은빛이 감도는 야자나무잎 밑의 어둠 속으로 팽하니 숨곤 한다. 나는 다시 그 놈이 입질하기를 기다리며 바닷물에 퇴색해 가는 야자나무잎 주위를 노려다 본다. 아니나 다를까, 발목 위가 스물거려 허리를 굽혀 물 속을 바라보니 언제 왔는지 그놈이 다시 입질을 해대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모르는 체 좀 두고 보기로 한다. 큰바다 고기라면 혹 독을 품거나 아니면 발가락 하나쯤, 그도 모자라면 그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럴 염려는 없다. 아니 그놈은 아양을 떨 줄 알고 귀엽고 또 잡으면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 사라질 것 같다. 마음속 한편으로는 그놈이 나의 그것을 제법 꽈-악 물어 주기를 은근히 바랜다. 야자나무 숲속은 검푸른 바다보다는 밝았지만 햇살이 잎에 가려 어둠 기가 있어 툭- 하며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한다. 더욱 멀리에는 밀림의 언덕과 산이 있고 구름과 하늘이 보인다. 해안을 따라 수많은 코코넛이 달린, 바다를 내려다보며 바람을 불러 다시 바람을 일으키는 경쟁을 하는 듯 야자나무는 제마다 다른 바람을 내고 있다. 또 바다는 바다 나름대로 육지는 육지 나름대로 꽃향기를 실고오는 산들바람, 해초내음을 뭍여 나르는 햇바람, 흙바람, 들바람까지 쉬지 않고 나를 위해 기도한다. 나의 좌측에는 나무가지가 물밑 모래에 묻혀있고 뿌리는 하늘을 향해 지향없이 뻗치고 있는 죽은 나무를 지나 금빛모래가 얇아지면서 하얀 산호초와 죽은 조개가 파도에 씻겨지고 부서진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떠오르는 태양, 금빛 모래, 푸른 야자수, 사파이어 색의 바다, 시원한 바람, 예쁜 물고기, 이 모두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만들었다니 믿을 수 없다. 태양과 모래 그리고 바다며 물고기 가운데 예전에 보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이들이 이렇게 제각기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나에게 자랑하기는 처음이다. 그저 무엇에나 대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팬티를 벗어 던지고 선 숨차게 흰 거품을 토하며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내고 있는 파도까지 달려간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촌놈티 감추려고 무렵까지 오는 반바지를 입고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은 되려 촌티를 팍팍 내는 것이 아닌가. 한 뼘도 되지 않은 거리를 두고 바라 볼 수록 신비함은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한다. 도대체 함께 뒹굴며 노래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의 깊이를 더할 아무런 구속이 사라진 것이다. 그 때, 누군가 나의 등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순간적으로 뒤돌아 보았고 그리고 바닷물과 야자나무 숲이 만나는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오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누구일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나는 여자가 걸어오는 쪽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녀가 가까이 왔을 때까지 나는 딴전을 피우고 있다. 신경은 온통 등뒤의 여자에게 가 있지만. 안녕-? 그녀는 반짝이는 눈동자를 나에게 던지며 대뜸 말한다. 나 박이라고 해, 그런데 넌 누구니? 나는 그녀를 향해 뒤돌아 서면서 이름을 묻는다. 하니! 하니는 이 해변에 살고 있니? 아니, 씽씽하려 왔다가 완톡집에 머물고 있어. 그녀는 독립기념일 씽씽팀으로 포트 모르스비에 왔다가 친척집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하니, 부모 형제들은 어디에 살고 있니? 박, 여기서 멀어. 스몰 발루스(경비행기)를 타고 2시간은 날아 가야돼. 그녀가 먼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인 체 인사를 해 오기에 어쩔 도리가 없이, 나만의 선녀를 홀로 서울에 두고 부시를 찾아 바다를 건너온지 석 달 하고도 스무 나흘 되던 1992년 12월 26일, 이렇게 나는 알몸뚱이로 처음 만난 여자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니와 먼 곳으로부터 달려오는 파도에 밀리며 함께 넘어지고 일어난다. 그 낮선 여자, 하니는 질름거리는 웃음과 함께 질긋히 나의 몸 깊숙한 곳까지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하려 들지 않는다. 들은 풍월은 있어 나는 머리카락이 쭈삣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첫 만남부터 순간의 유혹에 평생을 지고 갈 십자가를 짊어지게 될 판국이다. 그러나 선녀도 나의 선녀이지만, 무엇보다 뭘 알아야 면서기 질이라도 한다던 말처럼 부시인들의 삶을 모르고 서는 덩굴째 굴러 와 홀랑 벗고 바치는 떡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파푸아뉴기니에 도착하는 첫날밤에 감을 잡았던 것이다. 또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록 부시 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지극히 서울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 아닌 나의 눈(尺), 서울의 눈으로 부시를 보고 절망적 고독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남자의 여자의 사랑,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바지를 벗을 준비가 돼 있다지만 하니를 만나면서 날이 갈 수록 선녀의 따뜻한 체온이 마치 그의 몸 구석구석까지 쉼 없이 돌고 있는 심장의 피와 같이 흐르고 있다. 그리움은 풀잎처럼/ 뒤섞여 눈앞이 흐리고 잠든 바람 저편에 깃드는 새가 슬펐어 란 어느 시인의 노래 마냥 선녀는 야자수 하늘 끝 별빛같이 멀어서 슬픔은 넘실대는 남태평양의 파도가 된다. 그런 한편 한 번 타락하게 되면 끝 닫는 데까지 간댔지. 여자에게 순결이라면 남자도 순정을 ...... 하니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불덩이를 식혀가기 시작했다. 불쑥불쑥 쏟는 검붉은 칼날의 긴장이 사거라 들기까지 지옥과 천당을 수 없이 오간다. 차라리 지옥이면 지옥, 진주 하동을 돌아 삼천포로 빠지면서 홍콩이나 천당에 가 영원히 그곳에서 사는 게 구원의 길이라 생각된다. 사실, 어떤 날은 밤이 새도록 이 불덩이가 죽어들지 않는다. 미개의 고통을 추적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이 크면 클 수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도 타오르던 불덩이는 아침이 되어서야 흰 거품을 내 물며 한 줌 재로 변한다. 이러한 시간이 잦아질 수록 나는 부시 속에서 앞으로 나가기 보다는 뒤로 되돌아 가곤 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지, 천정의 도마뱀을 바라보고 혼자 누우면 부시의 첫날밤이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곤 한다. 박, 난 너를 좋아한다고! 우리 바나나 숲에 가는 게 ...... 바나나 숲은 왜? 바보, 그럼 너네 방에 가! 안돼! 나는 하니의 말을 한마디로 자른다. 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서 단 둘이 시간을 함께 하다보면 넘어서는 안돼는 선을 넘게 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이치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도 아니고 남의 나라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가는 서른 살의 외살림이고 보면 더욱 더 그녀를 안방으로 이끌고 올 수 없는 이치다. 한마디로 아무일 없이 헤어지게 될 것이라는 데 나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는 부시야! 부시에는 부시의 질서가 있는 법이라고 지난번 만났을 때 이미 이야기했는데, 너 코코넛 헤드(돌대가리) 가지고 있니? 하니의 말을 듣고 보니 캥기는 데가 있다. 강의 시간에 들은 완톡이며 페이백이니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혹시 완톡들을 데리고 와서 홀라당 빼앗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아무튼 줄 수도 없고 안 줄 수도 없는, 부시 속에서 사내의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하는 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각시와 보낼 첫날밤을 잃고 싶지 않다고. 아직 난 부시라고. 서른 넘어 까지 지킨 부시를 헌신짝처럼 던질 수 없단 말이야. 당신에게는 뒷골목 꽁초보다 못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난 이걸 중요하게 생각해. 마음이 중요한 만큼 몸도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 아무튼 난 각시에게 주어야 될 것은 각시에게 주지 헤프게 아무에게나 주지 않아! 비 맞은 땡추마냥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나의 머리를 그녀는 만지기 시작한다. 좋아! 좋아 ... 뭐가 좋다고 그러나? 하니가 감탄사를 쏭아내며 나의 머리를 위아래로 만지기에 얼굴을 홱 돌리며 내심 기분 좋은 감정을 불쑥 이렇게 내뱉는다. 순간 하니의 숯가루로 문지른 듯 한 얼굴이 더욱 검정으로 변하더니 둥근 두 눈 가득한 흰자가 일순간 멈춘다. 나는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를 슬그머니 피해 연록의 빛을 내는 바다로 돌린다. 이른 봄 돌무덤을 비집고 나오는 쑥의 색깔 넘어 바닷물도 흰 거품을 쉼없이 토해내고 있다. 남태평양의 바다는 푸른색이 아니다. 난 이미 너의 친구가 되었는 데 무얼 망설이고 있니? 옷도 빨고 바나나도 구울 수 있어, 너를 위해! 너무도 예상 밖의 말에 할 말이 없다. 그녀의 굳센 주먹이 나의 뒤통수를 강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일본산 야하마 보트가 잔잔한 바닷물을 뒤집어 솟구쳐 올림과 같다. 나의 가슴 속에서 검붉은 물거품이 일기 시작한다. 바다도 강한 햇살이 물밑 모래에 반사되면서 내는 물빛, 그 물빛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흰 거품을 물고 멀리 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파도마저 쉼없이 야자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을 넘어 나의 몸뚱이 깊숙이 달려와서 전신을 마비시키기 시작한다. 에이즈 환자가 공식집계로는 140여 명이라 했다. 아마 이 숫자의 다섯 배는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는 둘째 문제고, 여기에 잘못 되면 당장 신부 값으로 수 만 키나를 배상하든지 손목을 자르든지 해야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터에 우찌 해볼 재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이르지 않을까 누구도 알 수 없어져 간다. 그 즈음 바다 건너 이웃에서 와 주인노릇 하려던 코 큰 놈들이 둘도 아닌 넷씩 한 방에서 뒹굴다 보니 에이즈로 죽었다는 처녀들이 심심찮게 신문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최근에 와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호텔주위를 서성이는 20키나 여자보다는 투 키나 메리가 배탈이 없어 뙤놈들이 아예 붙어 산다고도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아니 그게 합리적이고 과학적 의지만으로 지킬 수 있을까? 아무튼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도리밖에. 한편, 그 때까지는 아직도 알아야 촌동네 이장 질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혹 하니, 그녀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실수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하니에게 다음을 약속한다. 하니, 미안해. 다음주말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난 하니의 말을 배우고 싶어. 그리고 아직 난 하니네 사람들의 문화, 말하자면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하는 지도 몰라. 다음번 만나면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줄 수 있겠지? 응! 그래 다음에 만나. 안녕! 5. No Problem은 문제있다 미스타 박, 오늘 와이가니에 가 자네가 살 집을 ...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니 내가 살 집을 보러 가야되지 않겠느냐 묻는다. 나는 유엔 볼런티어와 함께 와이가니에 있는 연방정부 재무성 외국인 계약공무원 관리사무실에 간다. 유엔 볼런티어 미스타 웡도 근무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집이 나오지 않아 유엔개발기구UNDP 호스텔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다. 미스타 웡, 이게 당신의 집 열쇠입니다. 주택담당자가 나보다 두 달 가까이 뒤에 온 윙에게 타운에 있는 집을 말하며 주택임대 계약서에 싸인을 한다. 나는 열불이 머리끝까지 오르지만 묵묵히 의자에 앉아 나의 차례를 기다린다. 그러나 주택담당자는 나에게 아무런 말이 없다. 당신은 언제나 문제없다(No problem), 문제없다, 기다리란 말을 수 없이 하였소! 왜 나에게는 집을 주지 않는가요? 난 이제 당신의 그 오랄 웍이나 페이퍼 웍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소. 난 지금 당신의 액션, 방열쇠를 나에게 건너주는 일이 필요하오. 오늘은 당신의 액션을 바랍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새해가 돼서야 파푸아뉴기니 정부로부터 방이 나았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받아낸 아파트는 금성 냉장고와 삼성 에어컨, 호주산 가스 스토브까지 딸려 있다. 창문과 현관문에도 방충망과 지름이 2센티미터 이상 되는 철근을 가로세로로 짜서 만든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일곱 개의 열쇠가 달린 묵직한 꾸러미를 받을 때 가슴이 뿌듯했다? 기다림은 이렇게 나를 부자로 만든 것이다. 한국사람에게 열쇠가 많고 적음은 곧 사회적 신분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던가. 시간을 마음대로 지배하는 사람들로부터 시간에 쫓기며 살아온 내가 기다림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 없을 정도의 열쇠꾸러미를 받았으니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는 열쇠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라스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대사관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 대사관이 모여있는 휴거빌딩 입구 2마일 언덕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살게 된 것이다. 시장은 보로코나 퇴근하면서 타운에서 볼 수도 있고 버스 타는 곳도 가까워 위험한 지역이지만 좀은 안심이 된다.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가면 엘라비취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여 가슴이 시원하기 까지 하다. 출근이나 퇴근 길에는 YWCA에 머물고 있는 시골지방에서 집을 떠나와 이곳 도시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하이, 하이 ... 농을 걸어오기도 한다. 오후 4시 6분에 퇴근 방에 돌아오면 5시쯤 된다. 6시쯤이 되면 어둠이 내리고 옥상에 마져 올라갈 수 없다. 어둠이 내린 후 문밖에 나가는 것은 날 잡아 먹으라고 호랑이 앞에서 용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차가 있다면 그런대로 조심하여 한곳 정도 일을 보기 위해 외출을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차도 없다. TV와 전화 마져 없고 보니 감옥에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국인이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나는 11번 자가용과 혹 완톡(?)의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영국 볼런티어인 미스타 크리스와 함께 출근한다. 나는 그의 친절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한 주일 먹을 빵과 과일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가는 날은 참으로 암담하다. 쌀포대를 손에 들고 한길을 따라 걸어서 집에 오면 백인들과 아시아에서 온 3국인들이 차창 밖으로 목을 내밀며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곤 한다. 나를 더욱 고맙게 한 것은 아파트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이다. 밤낮 그들은 나의 방 앞에서 정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아파트 내에 사는 사람이면 리모콘으로 10미터 전방의 튼튼한 철문을 열어 준다. 3명이 돌아가며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각각 나름의 방어를 위한 공격무기를 갖고 있다. 워슬리는 하일랜드 출신으로 웃옷을 반쯤 입고서 자신의 건장한 체력으로 기웃거리는 낯모른 사람들을 쫓아내는 데 알고 보니 그가 사는 2마일 고로보셀 언덕마을 라스칼 완톡들이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다. 세바세는 나이가 40세쯤 되어 늙어 힘이 없다며 항상 바지가랑이에 짧은 칼과 오른손에는 부시 나이프, 외손에는 새총과 철근을 잘라서 만든 탄알을 가지고 있다. 삐비가 근무하는 날은 자신의 완톡 2-3명과 함께 밤을 지새우든지 아니면 화살과 활, 야구방망이 같은 것으로 무장을 한다. 포트 나이트 격주에 100키나(미화 약 103불)를 받는 그들은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며 자신들의 무기들에 대한 사용방법에 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위슬리에게 퇴근 무렵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까지 오는 500미터쯤 되는 집 앞 퇴근길이 위험한 것 같다고 했더니만 코리아 보이는 내일부터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다 며 나에게 말한다. 나는 그의 말을 믿어야 될지 흘려버려야 될지 종잡을 수 없다. 종종 말은 찰떡같이 잘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일이 없다는 것을 짧은 생활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나는 자신의 완톡이니 마을 완톡들과도 완톡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나는 그의 말동무가 되었고 때로는 밥도 하고 청소도 하는 여자, 하우스 메리가 필요하지 않은지 물어오곤 한다. 이런 그의 제의에 밥과 청소는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하는 여자가 필요 없다고 말하니 남자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충고까지 한다. 며칠 후 다시 그들은 나에게 여자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여자이야기를 했다. 완톡 가운데 예쁜 처녀들이 많이 있는데 원하느냐? 그들의 말에 나는 먼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녀들이 있다고! 정말로 완톡 처녀들이 있느냐 ? 열 일곱 살에서 스물 두 살까지 시집가지 않은 여자들을 소개시켜 줄 수 있다. 웃기지 마라. 파푸아뉴기니에서 남자친구 있는 부시처녀童貞女가 어디 있나 ? ...... 그들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박, 남자친구 없는 처녀는 아무 문제없어. 그런데 남편이 있는 여자와는 절대 잠을 자서는 안돼! 서로가 원해서 한 동침은 문제될게 없지만, 만약 남편이 있는 여자와의 관계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알려준다. 박, 영국친구 손목 잘린 것 알아? 결혼해 함께 잠을 자면 문제가 없었는데 ... 그 무렵 나는 한 영국청년이 여자문제로 손목이 잘린 사건을 듣게 되었다. 파푸아뉴기니 여자와 오랜 기간동안 관계를 가져오다 본국으로 혼자 돌아가려는 그 청년에게 처녀의 완톡들이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천불에서 많게는 2만 불까지 배상을 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만약 아이를 가지면 법정은 아이의 양육비로 남자의 급여 일정부분을 주어야 한다는 판결이나 결혼을 해야 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낙태를 시키기 위해서 여자친구를 호주까지 보내는 서구 청년들도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낙태금지 법에 의하여, 또 그만한 의료기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자를 아는 남자는 3개월, 진짜배기 총각은 6개월이면 이곳의 여자가 여자로 보이게 된다더니 차츰 생활이 안정이 되고 의사교환이 가능하게 되자 처녀들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한다. 건강한 남자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여자가 여자로 보인다. 처음 파푸아뉴기니에 도착했을 때 그 여자들이 아니라 서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여자들과 다름없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며 상냥하게 다가올 때는 현기증이 나곤 한다. 검은 피부에 꼽슬머리 처녀들보다는 황색인의 피와 흑인의 피가 반반으로 혼혈 같아 보이는 여자들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어쩌다 동양여자를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인다. 언어가 통하게 되는 때쯤서부터 방의 천장이 더욱 높아지고 안전철창 사이로 밤바다를 내다보는 시간이 늘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하니가 부아이를 씹어 검붉은 입술만 아니었다면 끝닿는 데까지 날아갔을 것이다. 그녀의 문제없다는 말을 믿고 말았을 것이다. 그 즈음 선녀가 아프다는 연락 왔다. 말라리아로 자카르타의 한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편지 내용으로 보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님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퇴근하면 창살 밖의 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무엇에 넋을 빼앗긴 사람처럼 멍하니 어둠속 희미하게 보이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한판 승부를 걸어! 홀로 서기엔 너무 힘들지. ...... 기다린다고 일이 되나. 제기랄, 해또(머리)가 어지럽군! 아니, 엎친대 덮친 격이 되어서는 안되지 ...... 아-,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 띄우지 못한 편지를 쓰고 또 쓰고, 열대의 밤은 하얗게 빛나가기 시작한다. 야자나무 꼭대기에서 웃고 있는 달이 밉다. 훌훌 털고 인도네시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나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고 못난 놈에겐 편지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선녀, 등신같이 아푸긴 왜 아푸노! 우짠지 저번 주말부터 찜찜하더라 했더니, 결국 니가 아팠구만! 누구 허락 맡고 마음놓고 아푸노? 밥 굶지 말고 물 흐르는 대로 살라 안했나! 그리고 머라캐도 여자는 사랑을 묵어야 탈이 없는 기라. 더욱이 니는 나의 선녀 아이가! 선녀는 나무꾼의 사랑이 세상 제일인기다. 일은 머한다고 악착같이 할라카노.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 다 일리가 있는 기라. 파푸아로 월경할래 아니면 내가 이리안 자야로 살살 넘어갈까? 마! 사알사알 육일이면 이리안 자야를 넘을 수 있겠지만, 여자가 월경하지 남자가 월경하겄나. 선녀, 내 봐라 말라리아 모기가 얼씬도 않는다구. 내가 아프면 선녀까지 아플 것이란 생각에 입맛 없어도 되는대로 많이 묵고 잠을 푹 자니 ...... 여기에 또 중요한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며 생활하고 일하는 것이야. 아무튼, 원래 일 잘하는 사람은 묵고 자고 묵고 자고 하면서 일 한데이. 전차에 받친 놈처럼 헐레벌떡 뛰다닌다고 안될 것이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몸이 건강해야 지랄도 하는 거지. 광화문인지 종로구에 있는 것인지, 왜 그 문방군지 구멍가겐지 점빵을 보면서 배우지 않고 선 ...... 대강 철저히 말이다. 몸무게도 많이 줄었겠지. 서울에서는 40킬로그램쯤 나가는 것 같았는데. 애초부터 잘못 생각했는지 모르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일백 근(斤)은 되야 얼라도 쑥쑥 놓고 밤낮으로 일도 팡팡 해낼 수 있는 기라. 줄여서 몸무게가 50킬로그램이 될 때까지 소 엉덩이에 주사 줄 생각 말거라이! 그리고 여기 한약 한 첩 보내니 받는 대로 삼키고 아무 생각 말고 편안하게 아침까지 자거라. 여기 동봉한 약에 대한 간단히 설명을 하였으니 한 번 읽어보고 묵든지 말든지 하거라이. 이 왼쑤야! 지난번 내가 보낸 편지 읽고 병 얻은 것은 아니 재? 머, 깊게 생각할 말 아닌께 한쪽 귀로 훌딱 흘리삐거라. 그 일은 그때 가서 결론지어도 충분한기라. 부디 사서 고생 말거라이! 문딩아, 다시는 바보 축구같이 아푸지 말거라. 그럼,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알겠나! 나무꾼으로부터 추신 : 약 이름 - <사랑> 복용시기 - 받는 대로 즉시 주의사항 - 없음 부작용 - 타인이 먹었을 시는 생명 위험 제조원 - 나무꾼 제조일자 - 1994년 2월 21일 *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P.O.BOX 206, KONI, NCD, PNG)로 언제든지 연락주기 바람. 6. 블랙매직과 식인 하이 미스타 박, 컴퓨터가 움직이지 않아. 지금 올 수 있겠니? 수출입과에서 일을 하는 미스 가비의 전화다. 8시 10분, 출근하여 유엔 식량기구가 지원하는 전국시장조사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던 참이다. 몇 개월 전 한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서 원조한 컴퓨터를 설치하면서 내가 컴퓨터 박사(?)가 되고 난 이후 주위의 부서에서 컴퓨터에 이상이 있을 때마다 찾는다. 원래 나의 주된 일은 컴퓨터를 이용한 시장조사 자료분석방법을 현지인들에게 교육하고, 여기에 2주에 이틀씩 현지인과 함께 나가는 시장조사이다. 나는 데이터 베이스 프로그램을 빠져나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의 사무실로 간다. 하이 미스 가비, 지난주까지 이상 없었는 데 ... 박, 보고싶어 전화했어! 내가 컴퓨터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며 의자에 앉자 그녀는 나의 머리를 만진다. 나이스! 나이스! ... 가비, 지금 뭘 하니! 아니, 유 오라이? 나는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일하는 바로 옆건물 사무실에 일하는 그녀는 점심시간이면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녀는 타운 경찰서장의 딸로 남부출신이다. 고산지역에서 온 사람들과는 달리 성격도 부드럽고 긴 머리카락도 윤이 나게 잘 다듬어져 햇살을 받으면 눈부시게 빛이 난다. 여기에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드물게 영국에서 대학을 나온 친구다. 그녀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려운 일 있을 때 자신에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아버지가 도와줄 것이라 했다. 지난달에는 주말에 나의 집에 오겠다며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까지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부아이를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씹지 않아 좋았다. 가지런한 흰 이발과 긴 머리는 타향살이 혼자 사는 남자를 유혹하고도 남았다. 이번 주말에는 내가 박 집에 가도 되지? 우린 사무실에서 종종 만나잖아! 난 박과 함께 김치도 먹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바나나도 삶아 먹고 싶어. 난 이번 주말에 사마라이에 놀러갈거야. 사마라이? 안돼! 그곳에 가면 여자들이 박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거야. 왜? 그곳에 가면 ... 그곳은 카우보이 타운은 아니지만, 박을 좋아하는 여자를 박이 좋아하지 않으면 넌 죽게 되고 그녀가 먹어버릴거야! 식인이란 말이야? 거짓말하지마! 아니, 그녀들은 블랙매직을 갖고 있어! 내가 주술에 걸린다 이 말이니? 파푸아뉴기니에 얼마나 살았니? 박은 아직도 파푸아뉴기니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어제 신문도 보지 않았니. 우린 인구 5백만이 세계언어의 4분의 1일 달하는 867개의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고 있어. 박, 서로 다른 부족은 몇 개나 되는지 알고 있어? 한 천 개쯤 ... 그래 정확한 숫자는 우리도 몰라. 1993년 10월 새로운 유랑부족인 투란비스 (Towlanbis)부족이 걸프지역(Gulp Provinces)과 이스턴 하일랜드(Eastern Highlands)사이의 산악지대에서 인근 부족의 사냥여행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어제 신문에 읽었나. 이 부족은 험한 산악과 깊은 정글로 이루어진 Owen Stanly 산맥에 살고 있는데, 부족의 두 사람이 백인과 비행기와 상점의 물건을 보고 까무러쳤다고 해. 주정부는 이 부족의 정확한 인구조사와 함께 석유와 옷을 공급하고 있으며 또 거의 60년 전에 바깥사회에 알려진 인근의 마라와카(Marawaka) 마을로 이주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어. 고산지대 (Highlands)에서는 1989년에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2개 부족 약 2천여 명이 발견되기도 했지. 1천여 이상의 부족이 제각기 다른 소규모적 원시공동체의 폐쇄적 사회에서 발전한 다양한 언어와 풍습을 가지고 있어 단일 문화권에서 생활해온 사람은 한마디로 복잡다단한 이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올바른 이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 한마디로 모험과 탐험을 갈망하는 세계 젊은이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현대 속의 부시군. 나는 가비의 말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어제 읽은 신문기사를 생각한다. 현대 도시사회와 원시 부족사회가 병존하는 이곳에서는 돌도끼와 부아이 나무로 만든 활을 쉽게 볼 수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가 하면 현대종교를 가졌으면서 전통적인 사고로 뿌리 뿌리만(Puri Puriman) 마법사의 주술을 두려워한다. 또 사람들은 비를 내리게 하는 뿌리뿌리만을 믿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다고 하는 식인풍습이 최근까지 행하여 졌다고도 한다. 그러나 부시 어디쯤에서 인육을 먹고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걸프연안의 여인들은 자신의 아이를 먹곤 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는 수없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가비로부터. 먹어버려! 안돼, 지금은 맛이 없을 거야. 부시에서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좀더 키워야돼! 나도 지금 잡아먹고 싶지만 기다릴 거야. 그럼 얼마나 키워야 될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통통해야 좋아. 살(肉)이 너무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먹으면 힘이 생기고 기분도 좋아질 거야. 지금보다 키워서 먹으면 더욱 맛있을 거야. 언제 먹었지......? 먹은지 너무 오래다 이거지? 몸이 근질근질하다. 아마 그 동안 구경조차 못해서 일거야. 맞아! 나도 그래. 그때 달빛아래 먹은 백인여자 너무너무 맛있었지. 생각만 해도 이렇게 힘이 솟는데 ...지금 먹어버려! 그 여자를 부시에서 먹었던가? 아니 마을에서도 먹곤 했었지. 지금, 생각만 해도 온몸이 짜릿짜릿하단 말이야. 언제 그런 쫄기쫄기 하고 담백하며 기름기 많은 것을 먹지. 아 -, 기차게 맛있었지...... ...... 아무래도 이번엔 그때 보다 맛이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키워서 먹기로 했잖아. 살이 포동포동하게 찌면 맛있을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난 지금 홀딱 벗기고 먹고 싶단 말이야. 지금 먹어도 머리가 한결 가벼워질 거야. 또 힘이 넘쳐흘러 아이도 둘 쯤 가지게 될 거야. 난 아이보다 먹을 수 있다는 게 기쁘다구. 옛날에는 튼튼한 남자아이를 많이 갖고 싶었기 때문에 매일 밤 아무거나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은 달라. 그래 먹는 순간이 기쁘단 말이야. 먹고나면 어질어질하지 ... 기름기가 넘쳐서 그럴지도 몰라. 아무래도 야자나무 꼭대기에 달이 뜨면 좋겠지? 낮에 먹어도 그런 대로 맛은 있겠지만 달빛아래 먹어야돼. 그래야 힘도 많이 생기지. 난 오늘밤 와이프와 함께 부시에서 잘거야. 그녀도 좋아하거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집에서 잠을 잘거야. 보이친구와 함께 자는 게 몸도 머리도 좋아져. 그럼 저들을 야자나무 꼭대기에 달이 걸리면 잡아먹기로 하자. 잊지마! 며칠이 지나서 대낮같이 밝은 보름달 아래서 그들은 기분 좋게 먹었을 것이다. 인육을! 나의 이런 상상은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다. 식인풍습은 지금으로부터 약 36년 전 뉴기니 고원에 위치한 하일랜드 도청소재지 고로카(Goroka)의 정부병원의 의사들에 의해서 정확하게 알려졌다. 원주민 가운데 중추신경의 마비로 인한 무도병舞蹈病처럼 신체의 밸런스를 가누지 못하는 증세를 가진 환자를 자주 보게 되어 이 괴질의 병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쿠루(Kuru)라는 말은 이 지방말로 <웃는다>는 뜻인데 이 병의 말기 환자는 안면신경의 마비로 표정이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병을 <쿠루>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한다. 관찰을 계속한 결과 이 병의 진행은 매우 느리며 자연 치유되지 않고 치사율이 100퍼센트로, 걸리면 모두 죽고 마는 무서운 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병은 4개의 언어족言語族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했는데, 타종족과 혼인관계가 있는 가족에서만 발병하기 때문에 일종의 유전병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결과는 이곳 주민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식인의 풍습이 이 병의 원인으로 발표되었다. 연구반의 한 사람인 미국의 의학자 가주섹 박사(Dr. Gadjusek)는 1957년 이 치명적인 퇴행성 질병의 병원체는 번식이 느린 소위 <슬로 바이러스>이고 이 바이러스가 사람의 중추신경 조직을 침입하며, 감염된 환자의 뇌(腦)를 나누어 먹을 때 경구적經口的으로 재감염 된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밝혀냈다. 가주섹 박사는 이와 같이 잠복기가 길고 번식이 서서히 되는 이른바 <슬로 바이러스>에 관한 일련의 연구로 나중에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유행성 출혈열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이다. 천신만고 후에 병의 원인과 감염 경로는 밝혀졌지만 이 병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쉽게 세울 수 없었다고 한다. 워낙 지방민의 풍속에 관련된 병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전파로 차차 식인풍습이 없어짐에 따라 이 병의 유행도 쇠퇴되어 거의 소멸되었다. 사람을 도살하여 먹는 과정을 묘사한 기록에 의하면 시체를 토막내어 큰 대나무통 속에 살.내장.골 등을 빽빽이 채운 뒤 돌을 불로 달궈 만든 소위 스톤 오븐(Stone Oven)에 몇 시간 구워 어지간히 살이 익으면 먹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철제의 취사 도구가 전혀 없었던 석기시대인의 취사법에 의해서 인육을 먹었다. 지금의 무무와 같은 셈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인육을 처리할 때 열이 불충분하여 병원체가 완전 살균되지 않음으로써 인육을 나누어 먹은 사람은 쿠루병에 걸리게 됐다. 또 한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환자의 성별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병원체가 적게 들어있는 육질은 대부분 남자 어른들이 먹고 나머지 병원균이 가득 찬 뇌나 내장을 부인들이 먹었으며, 또한 부임들은 시체를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먹기 전에 이미 바이러스가 피부를 통하여 감염될 기회가 많았다고 해석되었다. 이와 같이 시체를 먹음으로써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서서히 번식, 병리작용을 일으키는 데 임상 증후가 나타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잠복기가 1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이러한 끔찍한 식인풍습이 생겼을까? 뉴기니에 오래 살았던 호주 출신의 정신과 전문의는 일종의 의식적 행위라고 해석하였다. 식인풍습이 그저 인육의 맛과 단백질 부족을 보충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 자기의 근친이 죽었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 죽음을 애통하여 시체를 먹음으로써 죽은 사람의 혼과 그 육신을 간직한다는 믿음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인풍습은 이에 관한 보다 깊은 인류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 선교사와 식민지 정부의 끈질긴 노력에 의하여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식인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식인이 있어야 했던 배경이 무시된 채 좀더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단지 서구 사람들의 관점에서 편견으로 식인을 말한다는 점을 불평하는 인류학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어떤 부족에게는 식인은 식량과 영양 면에서 하는 수 없이 자행되었고, 아니면 상징의식의 면에서 의의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솔로몬 출신의 한 의사는 몇 세기 동안의 심한 단백질의 결핍이 아마 식인 풍습을 낳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멜라네시아에는 원래 대륙으로부터 이동해 온 네 발 달린 짐승이 없었다. 돼지나 개는 모두 최근세에 외부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사람의 식용이 될 포유동물로는 큰 박쥐와 몸집이 작은 캥거루와 왈라비라는 동물이 있었고 식용이 되는 조류로는 카소와리라고 불리는 타조가 있었을 뿐이다. 소와 말도 극히 최근에 들어온 동물이며 그 증거로 이 지역의 모기는 사람의 피만 빨던 버릇이 남아 소의 피를 빨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식용동물의 결핍설이 식인을 합리화 또는 의식화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가령 어떤 부족에게는 적을 잡아먹었다는 것은 부족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의 큰 복수의 수단이기도 했다. 약 80년 전의 어떤 선교사가 쓴 뉴기니에 관한 기행문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어느 서양인이 식인종에게 <사람 고기를 먹는 것같이 천하고 악한 습관은 없다>고 이야기했더니 그 식인종이 반문하기를 <당신들이 먹는 양이나 소나 닭은 모두 하등동물인데 우리들은 사람을 먹는다. 사람처럼 훌륭한 것이 없는데... 천한 것은 오히려 하등동물을 먹는 당신네들이다> 이렇게 그들은 식인을 정당화 시켰을 때가 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문명인에게는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대개의 식인종들은 그들이 잡아먹는 희생자들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태고 때부터 다른 세계와 격리되어 살아온 탓으로 같은 말을 쓰는 동족끼리만 사람으로 알고 다른 부족들은 모두 동물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 험준한 지형에다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아 다른 세계와 격리된 채 20세기 말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식인종은 이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예도 있다. 그들이 잡아먹던 부족은 인간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전술과 용맹을 가진 종족인데 그런 우수한 종족을 잡아먹으면 그들의 정령(精靈)이 자기 몸에 들어와 자기도 그러한 우수성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사고는 다른 문명사회의 인종간에도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깨끗한 것을 먹고 자란 동물은 깨끗하게 생각하는 따위이다. 동물은 더러운 배설물을 먹더라도 신진대사에 의해 자기의 신체 일부로 동질화하는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어 더러운 먹이를 먹고 자라는 동물도 결코 불결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인육의 실화는 많다. 선교사의 수난도 하나의 대표적인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선교 활동 중 식인으로 희생된 선교사가 많았다고 한다. 1870년대에 뉴기니에 처음 들어온 런던 성서협회의 선교사 두 명이 파푸아 지방에서 선교 활동 중 어느 부락에 머물다가 부락민의 습격을 받아 둘 다 잡혀 먹혔다고 한다. 이것을 응징하려고 포트 모르스비에 주재하던 젊은 영국인인 경찰간부가 토벌대를 조직하여 그 부락민들을 붙잡아 처형하였다. 이를 안 런던의 성서협회는 크게 반발했다. 선교사는 신의 복음을 전하려다 순교한 것인데 선교사를 살해했다 해서 그 보복으로 토인들을 살해한 행위는 기독교의 정신에 크게 위배되며, 또한 토인들이 늘 자행하던 보복을 위한 부족 싸움과 다를 바가 어디에 있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그 토벌대장은 경찰서 앞의 영국기 게양대 밑에서 자책에 못 이겨 권총 자살을 하였다. 또 한가지 식인과 관련된 실화가 전해지고 있다. 포트 모르스비에서 100킬로미터쯤 떨어진 해변에 난파당한 중국 무역선의 선원들이 먹힌 이야기다. 선원들이 허둥지둥 해변에 기어올랐다. 그런데 이들 모두 토인에게 잡히고 말았다. 며칠 동안 부락에서 매일 음식도 주고 쉬게 해 주니 토인들이 고맙게 생각되면서 살(肉)이 제법 붙게 되었다. 그런 어느날 하루는 부락민이 별안간 달려들어 한 사람만 살려 놓고 모두 죽인 다음 큰잔치를 열고 먹어 버렸다. 그리고 살려둔 단 한 명의 중국 선원에게는 그 부락의 과부 한 사람과 함께 살도록 강요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파푸아쪽에는 곧은 머리카락이 뉴기니쪽 사람들 보다 많고 피부가 희다. 7. 예측할 수 없는 땅 너희들은 보복이라지 만 그런 것이 아니라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는 것 이것이 페이백이라오 불쌍한 異놈들아 - 페이백(PAYBACK) - 우린 부족한 것은 없어! 하니의 말대로 예측할 수 없는 땅(The Land of the Unexpected)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파푸아뉴기니는 그만큼 환경, 인정, 문화, 언어, 자원 등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전혀 개발되지 않은 원시림 상태의 국가여서 잠재력이 무한하다. 그러나 파푸아뉴기니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문제가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로 알려졌고, 그만큼 치안상태가 부재하며 부족간 보복전쟁, 도덕의식과 시민교육의 부재, 대규모의 실업자 등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들어오면서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인들이 상권을 장악하면서, 호주인의 기득권 상실로 인한 그들의 충동질 등으로 인하여 아시아인들이 집단폭행을 당하는 일도 간간이 발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야간에 외출 등 활동은 매우 위험하며, 집에서 거주할 때에도 반드시 안전장치를 완벽하게 설치해 두어야 한다. 라스칼이라고 불리는 떼강도들이 수도 포트 모르스비에만 10여 개 조직이 활동중이며, 강간, 방화, 살인, 약탈행위가 빈번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손재주가 있는 아시아인들이 문을 따며 호주인들이 총을 공급하고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몸으로 때운다는 식이다. 그리하여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외국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한다. * 사람이 없는 지역은 피하라. * 해가 진 뒤에는 혼자 외출하지 말라. * 집에는 안전장치, 경호견, 현지 고용인을 두어라. * 문단속을 철저히 하라. 만일의 위험한 경우에는 즉각 000번을 통하여 경찰이나 엠블란스를 불어라고 하지만, 경찰 그들 자신들의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수가 허다하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파푸아뉴기니는 독특한 방어기재가 있다. 완톡체계(Wantok System)가 그것이다. 완톡끼리는 서로 해치지 않으며, 완톡이 피해를 당하면 즉각 보복(Pay - back)하는 습관이 주민들의 일상이기 때문에 부시에서는 현지인들과의 완전한 동화와 친분 유지만이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는 유일한 방책이다. 내가 파푸아뉴기니에 발을 내디딘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이미 1년 전부터 베레나 지역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활동하고 있던 성백주에게 갔었다. 그는 한국청년 해외봉사단원으로서 91년 9월에 뉴기니섬에 왔던 것이다. 수도 포트 모르스비에서 트럭으로 약 4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베레나(Berina)지역은 중부지방의 중심지로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집중 투자하고 있는 벼농사 재배지역이다. 전 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은 자가소비를 위한 노동에 종사하며 유통과 판매시설은 거의 전무하다. 또한 수자원이 부족하여 생활용수는 물론 식수도 빗물을 저장하여 쓰고 있는 지역이다. 성백주, 그가 검은 피부의 현지인들과 함께 서 있으면 한국에서 온 황색인이라 알아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검게 탄 얼굴에다 목덜미와 팔에 흰 반점이 나 있었다. 눈가의 주름살 또한 작렬하는 태양의 직사광선 덕택으로 풍부했다. 빛 바랜 T셔츠에 눌러쓴 모자,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랑의 눈빛은 마치 태양처럼 빛났다. 연인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한 체조와 집 주위에 심은 토마토며 무와 배추에 물을 주지요. 한국에서 종자를 가져와 실험적으로 씨를 심었는데 매일 아침 저장해 놓은 저 빗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7시 30분쯤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근합니다. 오전 8시부터 일과가 시작되는 데 바로 저곳 마을 입구에 쌀 생산 시범농장 사무실이지요. 하루 일은 업무계획 및 문서 정리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논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양수기도 돌리고 농약도 살포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지요.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지어먹은 후 영어 공부도 하고 편지를 쓰곤 합니다. 그런데 밤 9시가 되면 전기가 끊어지므로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답니다. 이곳에는 떼강도가 많아 밤에는 매우 위험하므로 외출은 꿈조차 꿀 수 없답니다. 한 달포 전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팩스며 전화기 심지어는 하찮은 사무용품까지 모두 가져갔지요. 또 지난주에는 이 집에도 라스칼이 침입하여 식칼이며 라디오와 운동화까지 ...... 부엌칼이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벌써 이 방에만도 11개월 사이에 네 차례나 침입 했었지요. 베레나 주민들은 대체로 부지런한 편이지만 남자들은 좀처럼 일을 안하려고 든답니다. 평상시에는 매우 착하지만 SP맥주가 조금만 들어가면 행동을 자제할 줄 모른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인근의 메케우(Mekeu)부족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와의 성행위에 대하여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점입니다. 따라서 외국인 여자들은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대부분 6-8명이 한 가정을 이루어 자급자족하며 살아 간답니다. 대가족 생활에서 어느 한 사람이 돈벌이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냥 놀면서 사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에게 일할 수 있는 동기만 부여해 준다면 이들의 생활이 더욱 풍요롭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처음 이곳에 오니 농사를 지를 도구가 거의 없었지요. 낫 하나 곡괭이 하나 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경운기, 동력 양수기, 농약 살포기 등의 농기계는 꿈도 꾸지 못했답니다. 심지어는 주민들이 두엄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파푸아뉴기니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농민이라지 만, 국민의 80퍼센트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기에 원시 농경인 이라 부르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우리도 조선시대에 와서 이양법이며 경작방법이 혁명적으로 개발되었지만 말입니다. 벼농사 경험이 전혀 없는, 애써 땀 헐려 일하지 않아도 배불리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골치 아픈 병충해 예찰이니 셈을 해가면서 짓는 농사일을 기대한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신의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3-4가지의 언어를 불편없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고 쓰기를 못하는 것은 나이를 셈할 줄 모르는 점과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넘께 영어를 배웠지만 가난 하잖습니까. 특히 추장 대관식이나 장례식 등의 전통적 의례는 과히 충격적인 문화적 사건이랄까요. 그때 나는 말로만 듣던 부족싸움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토요일이라 관공서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성백주와 그는 시장에 갔다. 시장은 한국의 5일장과 흡사했다. 부아이, 타로, 얌, 땅콩, 고구마, 감자, 망고, 바나나, 삶거나 구어 먹는 바나나, 아이비카, 호박잎, 미나리, 옥수수, 파인애플, 물고기, 왈라비(캥가루와 매우 닮음), 돼지고기 등을 땅바닥에 바나나 잎을 깔고 그 위에 놓고서 하루종일 앉아 있는 것이다. 인근의 여러 마을에서 모인 4-50명의 물건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가슴을 내놓고서 배회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는 준비해간 고등어 통조림 하나와 마우 바나나 한 번치와 교환했다. 물물교환인 셈이다. 실제로 바나나 한 펀치로 고등어 통조림 10개를 충분히 사고도 남았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렇게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건의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서로가 필요하든지, 아니면 가지고 싶으면 가격에 관계없이 교환이 이루어 진다.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쯤 서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비단 물물교환뿐만 아니라 그날 본 싸움, 아니 부족전쟁이 그러했다. 싸움은 오전 11시 30경 시장(Public Market)에서 일어났다. 베레나 쌀 생산 시범농장이 있는 마을과 인근의 와이마(Waima) 부족 사이에 벌어졌다. 양편 모두 1개 완편소대 병력쯤 되었다. 말 그대로 싸움은 가관이었다. 우선 무기부터 손으로 만든 총과 밀림 속을 헤쳐 나갈 때 쓰는 부시 나이프가 주된 무기였다. 활과 창, 돌멩이, 고무줄로 만든 새총, 탄환을 가는 돌 막대기, 쇠창살, 병, 심지어 돌도끼까지 동원하여 한바탕 싸우는 것이었다. 그는 와이마족이 열세여서 경찰서로 피신하였고 경찰 또한 다칠까봐 아예 경찰서 담 안에서 문을 굳게 잠근 채 철창 틈으로 구경만 했다. 꼼짝없이 경찰서 철창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싸움이 시작된지 2시간쯤 지나서 마을이 조용하기에 경찰서 밖으로 나가보니 이번에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베레나 사람들이 쫓겨 부시로 도망쳤다. 와이마 사람들이 추격을 했지만 깊은 숲 속에서 그들을 찾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전투는 일단 휴전으로 들어갔다. 이 부족 싸움은 와이마족 출신의 한 청년이 시장(엄밀히 말하면 시장이라기보다 물물교환장소다.)의 울타리를 부수자 베레나족 출신 한 사람이 와아마에서 온 차량유리를 파괴 한데서 확대된 하나의 부족전쟁 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베레나에 살고 있던 노인, 어린아이, 부녀자 할 것 없이 1천여 명 모두가 모두 출동한 것이다. 전날의 무기에다 장대에 풀과 헝겊 등을 달고 와이마부족 마을로 진격해 갔다. 집을 불사르고, 돼지, 닭 등을 보이는 대로 창으로 찔러 죽이는 등 마을을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와이마 사람들은 전날과는 달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을 버리고 부시로 도망치기 바빴다. 그 날밤 포트 모르스비에서 많은 경찰이 온다고 했다. 말하자면 진압경찰이 온다는 것이 였다. 진압경찰은 전투 3일째 되던 날 오후 늦게 나타났다. 그러나 부족전쟁은 2차 휴전에 들어간 후였다. 집은 재로 변했고 많은 돼지와 닭이 죽었다. 환금 나무인 부아이 나무도 거의 잘렸다. 이미 폐허가 된 마을에 마치 점령군의 진주처럼 경찰은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약간의 외상 정도로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4일째 되던 날 그때서야 경찰은 라스칼을 잡는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다녔다. 모두가 익사한 후 50분이 지나서 구조대가 달려온 꼴이었다. 그리고 그날 일간신문 Post Courier지에 중부도(Central Province) 도청소재지 베레나에서 두 부족간의 싸움이 이틀간 벌어졌다고 짤막하게 실렸다. 수 천년간의 부족전쟁이 이와 같았을 것이라 생각 되었다. 그들의 성격은 양철냄비 보다도 쉽게 달아 오르고 또 그만큼 쉽게 식었다. 뒷날 알았는데 그때 그가 피한 경찰서가 결코 안전한 곳이 못되었다. 여러 지방의 경찰들이 그들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데도 힘들었다. 매일같이 경찰관이 라스칼이나 부족전투의 틈바구니에서 돌도끼에 맞아 몇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다 시피 했다. 1994년 9월 현재도 심심찮게 부족전쟁 소식이 TV나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중앙정부도 부족전쟁의 종식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나 힘이 모자란다. 1975년 파푸아뉴기니 중앙정부가 더욱 격심해지면서 규모가 커지고 있는 고산지대의 부족전쟁을 제지하느라 골머리를 앓던 나머지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장경찰을 투입하여 부족전쟁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그후에도 정치적 그리고 행정력을 동원하는 등 부족전쟁을 억제하려고 온갖 애를 쓰며 노력하고 있지만 중단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른 선진국의 폭동진압 기동경찰과 거의 비슷한 복장과 근대장비를 갖춘 기동경찰은 헬리콥터로 공수되기도 한다. 부족전쟁은 단순한 사건에서 시작되는 게 대부분이다. 사상이나 계급, 종교적 원인에서 전투가 시작되는 게 아니다. 물론 단순한 사건에서 싸움이 시작한다고 하지만 부족전쟁은 뿌리깊은 역사에서 시작한다. 전통적으로 호전적인 부족에게 싸움은 거의 일상생활의 일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고산지대의 심부(Shimbu)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수도 포트 모르스비에 심부출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사바나 언덕의 주말은 언제나 싸움이다. 이들의 싸움은 선전포고를 하고 시작할 때도 있고 또 불시에 기습하고 포위하고 공격하는 등 가지가지의 양상이 있다. 싸움에는 일정한 금기(禁忌) 또는 규칙이 있어 이 금기가 제지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전사자는 그리 많지 않다. 금기, 즉 터부를 지키는 예를 살펴보면 동물은 독을 묻힌 화살로 죽이지만 사람을 상대할 때는 절대로 독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페어 플레이는 문명세계의 사람들이 배워 핵확산 금지조약 같은 것이리라. 어떤 부족은 적을 죽이고 그 시체를 먹는 것을 최고의 보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 인육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죽은 자가 생기면 이것이 또 새로운 불씨가 된다. 한 명이 죽으면 꼭 한 명을 죽여야 하는 것이 진리다. 특히 고산지역의 부족간의 전투는 대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싸움으로 전투의 규칙은 엄격히 지켜져 적과 이쪽이 같은 수의 사상자를 내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휴전이 된다. 혈연적으로 가까운 부족과 부족 사이에도 분쟁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항상 적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부락은 대개 방어하기 쉬운 산등성이에 짓는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일반적인 전쟁에서는 반드시 구실이 필요한 법인데 이들의 경우 정치.종교상의 이유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가령 한 부족이 인근 부족을 정복하고 그 부족을 노예로 만든 일은 있었어도 그것으로 그치지 정복이 무슨 정치적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부족마다 추장이 있으나 이들 추장들이 지배범위를 넓힐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 추장은 당대로 끝나고 세습되지 않는데 이점은 오늘날의 파푸아뉴기니인들의 의식구조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갖는다. 즉 저축이란 단어를 모르는 것과 연관되며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배움의 생각이 없는 점과도 직결된다. 최근에 와서도 싸움의 동기가 되는 것은 경제적 이유로 토지의 소유권 문제, 남의 땅을 통과할 필요성, 무엇을 훔쳐오기 위해서 또는 여자를 약탈해 오기 위해서, 자기들의 농토를 넓히기 위해서 등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벌목과 광산,석유개발 등의 활발한 경제행위로 땅의 소유문제로 자주 싸움이 일어난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이런 직접적인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보다는 무료한 부시 속에서 싸움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정신상태가 그 근본 원인일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부족싸움의 가장 흔한 동기는 자기 동족의 어느 누구가 이웃의 부족으로부터 상처나 강간과 살해 등을 입었을 때 그 보복으로 일어난다. 피해자 측이나 가해자 측에는 대개 자기들의 긍지와 대의(大義)를 지켜 주는 활을 잘 쏘는 호걸들이 있어 이들이 자기 부족을 몰아세워 싸움을 시작한다. 싸움의 시초는 서로 대치한 채 입씨름으로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모욕을 주거나 한다. 그러다가 점점 쌍방의 증오심과 불쾌감이 높아지면 드디어 열전이 시작된다. 활을 잘 쏘는 호걸이 지휘자가 되며 작전참모도 있어 전투는 진퇴가 정연하다. 또 부족싸움은 이들 나름의 판단으로 정(正).부정(不正)의 시비에서 발단하기도 한다. 부정이라고 판단될 때는 살인으로 보복하게 되고 따라서 전투가 시작된다. 부시인들에게 있어 보복은 가치 있는 행위이고 이것을 범죄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부정의 기준은 간통.도둑질.살인에 대한 배상의 불이행 등이다. 그러나 때로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령, 갓난아기가 갑자기 폐렴으로 죽었을 때 부시인들은 이웃 마을의 누군가가 마술(블랙 매직)을 써서 갓난애를 죽였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리하여 이웃 마을을 습격하여 마술을 썼으리라 짐작되는 사람의 집에 불을 지른다. 이런 식으로 싸움이 붙게 되면 두 부족간에는 자손 대대로 피로 피를 씻는 원한관계가 생긴다. 서양문명이 기독교를 통하여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원수를 지는 일과 원수를 갚는 일로 쫓고 쫓기는 생활을 하였다. 따라서 원수를 갚으러 쫓아오는 적을 피하기 위하여 외딴곳에 숨어사는 풍습으로 부족이 늘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현재까지 늘 무력투쟁과 휴전이 교대로 되풀이 된다. 싸움이 일단 끝나면 전쟁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보다 양측은 비공식적으로 절충을 거듭하여 화해를 한다. 강화가 성립되면 돼지를 잡고 잔치를 열고 춤을 추며 돼지를 교환함으로써 분쟁의 종료를 확인한다. 정부군과 솔로몬 군도 북엔빌 반군 사이도 이와 같이 화해를 서로 바라지만 죽고 죽이는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아마, 이들의 삶은 피를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이들의 중요한 무기는 대나무를 예리하게 깎아서 만든 화살과 부아이 나무로 만든 활, 창, 부시나이프, 돌도끼나 철로 만든 현대도끼, 새총 등이다. 최근에는 집에서 혹은 공장에서 만든 총이 등장하여 사상자가 늘고 있다. 만약 싸움에서 사상자가 나면 도마다 운영되고 있는, 가까운 국립병원으로 후송을 하기도 한다. 정부병원은 식민통치 시대 이래 지역주민들의 질병과 부상을 무료와 마찬가지(1회 진료시 40토야 약300원)로 치료해 온 터라 이런 싸움의 부상자도 으레 무료로 돌봐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중앙정부는 부족싸움과 각종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때는 외국으로부터 용병을 들여오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한다. 20세기 말 한 나라의 수도 중심 시가지에서 일어나는 부족간 전투!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타운에서 일어난 부족간 싸움도 구경할 수 있었다. 부족 싸움의 지휘자는 주로 부족의 우두머리가 된다. 지휘자의 지위는 세습이 아니고 활을 쏘는 기술과 부(富)에 의해서 정해진다. 그러나 큰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동원하는 힘을 갖고 있을 뿐이다. 부시인들은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책임과 리더십을 몇 사람에게 분담시킨다. 한 사람은 전쟁참모, 또 한 사람은 수렵과 고기잡이의 지휘자, 세 번째 사람은 농사 지도책임자가 되며, 네 번째 사람은 주술 전문가 등 이들 모두가 부족을 이끌어 가는 책임을 각각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도자에게 특권이 따르는 것이 아니고 부족원이면 모두가 평등하다. 다만 중론을 펼 때 경험 많은 노인들의 발언 영향이 클 뿐이다. 부족의 지배 영역 주변에는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망을 보는 감시대가 있다. 감시대의 높이는 7-8미터쯤 되는데 늘 전사(戰士)가 올라가서 주위를 살핀다. 남자는 부족을 지키는 전사로 초소에서 망을 보고 집을 고치고 무기를 만들며 사냥을 한다. 할 일이 없을 때는 낮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며 힘을 기른다. 하여간 남자들은 게으름뱅이로 보이나 서구문물을 맛보면서 차츰 바빠지고 있다. 이제 부시인들은 더 이상 부시인이 아닌 것 같다. 총을 집에서 만든다. 연일 신문에서는 집에서 만든 다량의 총을 찾아냈다고 흥분하고 있다. 부족간 싸움에도 총이 등장한다. 이러니 이제 부족전쟁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문명이 가져다준 술은 부족간 전투와 더불어 크나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부시인들에게 있어서 SP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나도 돈 많은 빅맨(백인 = 외국인)이 마시는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소위 스테이터스 심벌(Status Symbol)이라는 것이라고 외국인들은 말한다. 남태평양에서도 미크로네시아인과 다른 많은 종족들이 야자나무에서 알코올 성분이 있는 음료를 만들어 마셨지만 웬일인지 멜라네시아인만은 술을 빚을 줄을 전혀 몰랐다. 술과 인연이 전혀 없던 이들이 서양인과 더불어 들어온 술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고, 술의 정체를 모르고 되는 데로 마시다 보니 그 폐단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깡술을 몇 날씩 계속해서 마신 뒤 행패가 심하다. 폭행, 패싸움, 부인 구타 등으로 나타난다. 봉급생활자는 매 2주마다 받는 봉급날이면 그날 모두 술로 소비해 버린 뒤 월요일 출근을 위한 버스 요금 40토야를 완톡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금요일 밤은 시내 구석구석에서 싸움판이 벌어지고 또 일요일까지 춤판이 계속된다. 따라서 외국인들은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는 은행이나 상점 등 외출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부에서는 맥주 판매 금지령을 검토하기도 하고, 또 보로코 유니이티더 교회의 신도 수백 명이 맥주공장 앞에서 시위를 하곤 했다. 1962년까지 부시인을 보호하는 뜻에서 법으로 부시인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규제하였으나 인종차별이라고 맹렬히 반대하는 부시인들의 정치적 압력에 못 이겨 금지법이 철폐되었지만 다시 정부에서는 맥주 판매 금지령을 검토하다가 최근에 술 판매를 중앙정부가 직접 통제하기로 법령을 바꾸었다. 부시인들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술주정꾼을 구경하는 것 보다 재미있다. 처음에는 부시인들이 맨발로 다니는 점에 착안하여 호텔의 식당 앞에는 <신발과 양발을 신지 않은 자는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표지를 붙여서 부시인들이 호텔에 올 때는 이렇게 점잖게 제한 하였다. 그러나 외국 기업들에 의한 자원개발이 시작되면서 관습적 토지소유자들은 큰돈을 만지게 되면서 호텔에 올 때는 신사(?) 차림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런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규칙은 무색해졌다. 금요일 밤 디스코 장에 가기 위해서는 구두와 칼라가 있는 상의를 입어야 한다. 그러나 소매상에서의 맥주 판매 방법이 법에 의해 낱개로는 못 팔게 하고 24개들이 한 상자 단위로만 팔게 하였다. 원래 이 법은 상자 단위로 팔게 하면 돈이 넉넉지 못한 부시인들이 덜 사리라는 계산에서 만들어 졌으나 이제 와서는 악법이 되고 말았다. 술의 매력에 못 이겨 상자로 사는 부시인이 많고 한 자리에서 다 마시고 마니 폐단이 더 커서 최근에는 여섯 병짜리 작은 상자를 만들어 팔도록 규정을 고쳤다고 한다. 올해 들어 하일랜드에서는 카톨릭 교회가 중심이 되어 술 판매 및 마리화나 등 약물사용 금지를 촉구하여 2만여 명의 서명을 받자 주정부에서도 싸움의 직접적 동기가 되는 술 판매금지령을 내렸다. 마리화나를 비롯한 백인들이 가져온 약물남용 또한 심각하다. 이웃의 심부 사람들은 그를 만날 때마다 약(마리아나)과 여자 그리고 술을 원하느냐며 진력이 나도록 물어온다. 만나면 일상의 인사처럼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세 가지는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잡은 것 같아 보인다. 도시에서는 봉급생활자가 증가하면서 금요일 봉급을 받는 날은 술마시는 날로 마을마다 떠들썩해진다. 그래서 2마일 언덕에 사는 나는 금요일 밤이면 하일랜드 심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싸우기도 하고 아니면 이틀동안 밤낮으로 춤판이 벌어지는 통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식으로 중얼거리며 밤을 새하얗게 지새운다. 어둠의 빈 공간은 음산한 소리 가득하다 술 취한 부시마을 질주하는 도요타 929 고독의 소리 듣는다 밤 바람 속에서 깊어 가는 어둠 속에 꽃잎이 떨어진다 단말의 비-명 왁자한 숲 속 언어 이밤도 나는 두려워 이중문을 잠근다 8. 신부값(Bride Price) 하니는 나를 이끌며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대나무로 둘러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지상에서 약 2미터쯤 되는 높이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마루와 방바닥은 대나무 사이로 흙이 내려다 보인다. 간간이 돼지가 흙을 파며 돌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집이라 하기보다는 한국의 시골 원두막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문이라도 내어놓았다면 방안이 밝아 돼지우리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간단한 구조지만 빗물은 안 새고 통풍이 잘되어 그런 대로 살만 해 보인다. 고산지대의 한심할 정도로 보잘것 없는 집에 비하면 해안지대의 집은 좀 낫게 짓는 편이고 여기에 그녀의 집은 훌륭한 편에 속한다. 늪이 많은 지역의 사람들은 새집과 같이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짖는다. 판잣집, 도시의 언덕빼기에 양철로 사방을 둘러싼 집은 창고 같아 보이는데 사람이 들락거린다. 이 양철집은 한낮의 햇살을 받으면 찜통 같다. 그래서 도시의 사바나 언덕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토록 거리를 어슬렁거리거나 야자나무 밑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무슨 이야기인지 쉼 없이 재잘거린다. 그래도 그녀의 집은 칸막이로 두 개의 분리된 방을 가지고 있다. 2미터쯤 되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바나나며 타로를 굽는 화덕이 나타나고 이어 마루라고 할 수 있는 거실이 있다. 천장에는 씽씽 때 치는 쿤두가 있고 그 옆에는 짐승의 이빨이 몇 개 가지런하게 걸려 있다. 일곱 명의 식구가 그런 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마미(어머니)는 동생들과 함께 타로 밭에 갔어. 그곳에 갈려면 얼마쯤 걸어야 할까? 너무 멀어.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거야. 하니는 나에게 아침에 부시로 떠난 가족들이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것이라 한다. 해는 하늘 가운데서 쨍쨍 빛난다. 축구공 만한 코코넛이 바람에 떨어지자 돼지가 놀라 숲 속으로 달아난다. 그녀도 빙그레 웃으며 나의 손목을 잡아끈다. 그녀의 힘은 남자인 나보다도 센 것이 분명하다. 나는 하니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부시인들은 이렇게 집의 구조가 반개방적이어서 그런지 남녀간의 사랑은 대부분 집에서 하지 않는다고 하니가 말한다. 부부는 오로지 마을에서 떨어진 그들의 밭에서만 사랑을 나누는 데 고구마 밭이나 토란 밭에서 부부가 같이 나와 일을 하다가 틈틈이 대자연 속에서 유유히 사랑을 즐긴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희박하기 때문에 깊숙한 숲 속에 있는 그들의 밭에 아무도 찾아올 리도 없을 것 같다. 더구나 부시에는, 돗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바나나 잎과 잎이 넓은 식물들이 많아 사랑의 보금자리는 어디서든 또 아무때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바나나 숲은 결혼전의 처녀와 총각들이 즐겨 애용하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된다. 하니도 다른 소녀들과 같이 열 두 살에 초경(初經)을 하였고, 초경을 본 어머니가 자신의 배와 가슴과 팔 등에 여러 형태의 상처를 입히고 자연에서 채취한 검정색 물감을 넣었다고 한다. 성년의식은 초경 전에 성교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오늘날에는 자동차 타이어를 태운 가루로 문신을 새기기도 하는 데, 이 의식이 끝나면 소녀는 비로소 성인으로서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란다. 박, 심심하지 않아? 난 이곳이 시원해서 좋아. 넌 어때? 하니의 싱긋한 물음에 나는 방에서 시간을 좀 더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좋아, 그런데 우리 뭐하지! 그녀는 노골적으로 나를 원한다.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그녀가 강하게 요구할 수록 이성이 지배하는 힘은 크게 나타난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그녀의 방을 나온다.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등골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린다. 날씨탓으로 돌리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야자나무가 그늘을 만들었기에 바람이 살갗에 와 닿자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 말 그대로 남국의 야자나무 밑 바람은 달콤하고 또 짜릿하다. 봉우리를 맺은 바나나 꽃 모양은 꼭 여문 남자의 그것 같다. 귀두 부분은 연분홍으로 남자인 내가 보아도 만져보암직 하다. 또 꽃잎을 하나하나 벗겨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보아도 막 피어 나는 바나나 꽃봉오리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노랗게 잘 익은 바나나도 남자의 그것과 같지만 꽃봉오리는 꼭 그것과 닮았고 그것의 신비스럼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 이래저래 그래서 그런지 부시의 처녀들은 바나나를 남이 보는 거리에서 먹는 것을 삼가고 있다. 하니는 나를 자꾸만 찝쩍거린다. 때로는 자신의 부족말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녀가 중얼거리는 부족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다만 조금은 두렵다. 그녀가 요구하는 일을 치를 수 없다며 거절했기 때문에 내심으로 무슨 보복이라도 되돌아올까 두려운 것이다. 아니면 그녀가 반강제적으로라도 일을 벌린 뒤 부시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를 요구하며 그녀의 완톡들을 동원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이들은 배우자를 자기와 같은 혈연 집단 내에서 구하지 않고 다른 혈연 집단에서 고르기도 한다고 하니가 지난번에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들의 결혼이란 것에 대해 나에게 말해 주기도 했었다. 결혼은 개개 남녀의 결합이지만 동시에 부족 집단의 결합을 의미한다. 결혼은 이와 같이 부족간의 연합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는데, 정략 결혼의 뜻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신랑은 신부집에 큰 선물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 신부값이 엄청나서 좀처럼 장가를 들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 완톡의 도움으로 신부값을 마련하기도 하나 그래도 본인 스스로 돼지를 잡고 얼마간의 지참금을 낼 수 있어야 장가를 갈 수 있다. 이러한 신부값(Bride Price)의 액수는 양가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일정치 않다. 최근에는 많게는 최고 2만 키나까지 내기도 한다. 이 신부값은 이제 더 이상 부족 공동체를 결속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자는 공산품의 가격을 매기는 것처럼, 서구적인 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값이 결정되어져 간다. 물론 신부값이 없는 부족도 있다. 반대로 남자가 신랑값을 받는 부족도 있다. 외국인도 똑같이 신부값을 내야 한다. 만약 처녀와 잠을 잤는데, 이때 처녀가 결혼을 요구하게 된다. 결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신부값을 치러야 한다. 신부값을 내지 못하면 완톡들의 폭력으로 신체의 일부라도 잘라 내어야 한다. 서양인들은 이곳 여자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혼 전에 여자는 이처럼 퍽 대우를 받지만 결혼 후에는 출산 외에도 혹심한 가정일에 얽매여 산다. 남자들은 무사로서 외적의 침입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어 평소 마을 주변의 감시소에서 망을 본다든지 집을 짓는다든지 수리 등의 일을 한다. 반면에 여자들은 밭일 뿐만 아니라 땔나무를 해 오는 일, 물을 길어 오는 일, 아기며 돼지를 키우는 일 등등의 많은 중노동을 해야 한다. 특히 여자들은 남자와는 달리 결혼생활 중에 남편을 잃었을 경우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많은 고초를 맛보아야 한다. 남편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부락의 남자들이 과부에게 과부집을 지어 주면서 시작된다. 이 집은 월경 중에 있는 여성이나 아기를 낳은 여성이 격리된 생활을 하는 월경집과 같이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곳에 짓는다. 마을 여자들은 이 집을 방문할 수 있으나 남자는 얼씬거릴 수 없다. 과부가 이 집에 머무는 동안은 부락에 들어오는 것과 밭에 가는 것이 금지되고 음식은 마을 사람들이 날라다 준다. 이렇게 과부를 격리시키는 것은 죽은 남자의 혼이 과부를 찾아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 해서다. 젊은 과부는 그 얼굴을 마을 남자들에게 보여서는 안되며 다른 여자들처럼 떠들어 서도 안된다. 또 재혼할 때까지 엄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모든 정해진 절차가 끝날 때까지 다른 남자와 성교를 해서도 안되며, 재혼을 해서도 안된다. 만일 과부가 이 규칙을 무시하면 오명을 남기며 또 재혼 의식 때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매질을 한다. 반면에 늙은 과부는 짧은 기간의 격리생활이 끝나면 그런 엄한 규칙에 따를 필요가 없다. 혹 어떤 남자가 그 과부를 강간하면 과부의 집안 남자들이 강간한 남자를 때리며 그 여자와 결혼을 하도록 강요한다. 과부가 강간당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죽은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 남편의 영혼이 강간하려고 드는 남자를 쉽게 죽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과부는 남편의 시체가 완전히 썩어서 백골이 될 때까지 과부집에서 지내야 한다. 시체가 백골이 되면 과부는 긴 뼈와 손가락뼈를 가져와 햇빛에 말린 뒤 빨간 진흙으로 색칠을 한다. 그런 다음 다시 뼈를 말려 쥐를 태워서 얻은 재로 문지른다. 이렇게 하면 냄새가 가신다고 믿는다. 과부는 이 뼈들을 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찬다. 간혹 이 목걸이가 시장에서 팔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이 과부의 격리 기간이 끝나게 되며 비로소 재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결국 이와 같이 인내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지내지 않고 또 남편의 시체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죽은 자의 망령이 과부뿐만 아니라 가족과 부락 사람을 해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부가 재혼할 때는 상대방이 죽은 남편과 혈연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는 대개 남편의 형제가 대상이 된다. 보통 죽은 남편의 동생과 재혼하게 되지만 만일 죽은 남편에게 형제가 없을 때는 사촌 형제가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결합에는 당사자간의 희망이 기본이 된다. 과부가 언제 누구와 재혼하느냐 하는 것은 마을의 지도자들에 의해 비밀회의에서 결정되기도 한다. 재혼한 과부는 새 남편의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새 남편이 과부의 전남편의 망령이 꺼림칙하다 생각되면 계속 마술의 풀을 태우는 의식을 치른다. 이런 의식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 여자를 과부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어떤 남자들은 과부와의 결혼을 꺼리기도 한다. 특히 그 과부가 전에 둘 또는 그 이상의 죽은 남편을 가졌을 때 그러하다. 그 남자들은 그러한 과부를 남편 잡아먹는 여자(Man Killer)라고 부르는데 이는 과부의 전남편들이 그녀의 비정상적인 성행위의 결과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그 과부가 자기 남편 이외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남편들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하니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서로 마음이 통하면 부시에 들어가서 사랑을 나눌 수 있다지만, 어디 부시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 자유로운 사랑을 즐길 수 있을까. 그녀가 나를 꼬집으며 법석을 떨 때, 마침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밭에서 돌아왔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그리고 훗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사바나 언덕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며칠 후에 안 일이지만 하니는 이미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날 내가 일을 봤다면 그녀의 남자친구와 완톡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열대의 밤에 한기를 느낀다. 한 살 아래 그녀의 동생 이름은 하니 코코다. 그녀의 이 이름은 부족말로 꽃을 의미하는 어머니의 이름 하니와 그녀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 코코다를 합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이 이름보다 언젠가 딱 한번 TV에서 본 에밀레를 줄인 에마라 불러 주길 바랬다. 그래서 그녀의 다섯 번째 남자친구 다알린은 코코다를 불러낼 때마다 언제나 에마라 불렀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에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의 성姓이 제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코코다 사람들은 아들이나 딸의 성(?)은 어머니의 성을 따오고 이름은 어머니의 형제자매 중에서 따온다. 때로는 아버지의 친척 중에서 따오기도 하는데 근래에 와서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나 백인들의 이름을 그대로 쓴다. 여자들의 이름에서는 부족의 지명을 성으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름은 산, 강, 새, 나무, 별, 달, 꽃 등의 이름을 부족말로 빌어 쓴다. 물론 지방이나 부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성과 이름의 개념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굳이 조상과 성이 같아야 된다는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자신의 나이마저 알아야 할 이유도, 족보를 따질 아무런 필요가 없다. 다만, 조상의 이야기가 간간이 입으로 전해질 뿐이다. 에마의 반 곱슬머리는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코코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고산지대의 사람들에 비하면 직모나 마찬가지지만, 에마의 머리는 이들 가운데서도 머리를 길게 따 길을 수 있도록 곧았다. 야자기름을 발라 윤기 그는 긴 머리는 코코다 남자들을 밤마다 불러들였다. 남자친구가 많은 것은 에마의 긴 머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얀빛이 감도는 얼굴이 예쁘기도 했다. 백인이나 아시아 사람들보다는 검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 흑인과 같이 아주 까만 부겐빌이나, 그녀의 마을 사람들과도 달랐다. 여기에다 그녀의 상처자국 하나 없이 말끔한 다리와 무릎 위를 보면 100년 전쯤 황금을 찾아서 건너온 야망의 서구인과 추장의 딸 사이에 낳은 그 후손의 자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까지 했다. 한마디로 동양여자의 신비함과 서양여자의 섹시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에마, 그녀 본래의 이름 하니 코코다는 코코다 부족어다. 그러나 에마라는 이름은 부족어와 피진어 그리고 영어를 각각 3분의 1씩 가졌다고 볼 수 있으나, 아무래도 TV를 보고 생각해 낸 이름이므로 영어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겠다. 에마의 남자친구 다알린은 서양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왔다. 성경번역사인지 인류학자의 이름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릴 적 마을에 살았던 서양사람을 다알린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언어학자인지 성경번역사인지 그가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돌도끼에 찍혀 죽은 다음부터 평소에 그를 따르던 에마의 친구 그는 다알린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에마가 네 번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물론 네 번째 남자친구와 아직까지 부시에서 사랑을 나누곤 하지만 다섯 번째 다알린을 좋아하게 된 것은 5개월 전 씽씽이 끝나던 날 밤에 다알린이 내민 부아이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을 느끼고 부터 였다. 그가 준 부이이를 다카에 감반을 찍어 어금니로 씹자 이상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에 둘은 부아이를 나누어 씹으며 부시로 들어가 다음날 저녁까지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 별을 헤아리며 사랑을 나누어 오고 있다. 에마는 다알린과 결혼을 하려 아이를 가졌다. 무엇보다 다알린이 부아이 나무가 많아 결혼지참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데 이끌렸다. 다알린도 그런 그녀와 결혼을 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뚱뚱한 다리와 허리는 아이를 많이 놓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혼은 주로 부족 안에서 이루어지나 종종 인근의 부족간에도 이루어진다. 부계의 가까운 친척간에는 결혼을 인정치 않는다. 그러나 외가나 처가의 인척과는 무방하며 교차결혼도 흔히 있다. 또 절대적으로 부족 안의 결혼을 금지하는 부족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파푸아뉴기니에서 그 어떤 것도 일반적인 것은 없다. 한국의 옛 전통풍습처럼 자녀가 결혼 적령기가 되기 전에 양부모들 간에 약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결혼 지참금, 결혼시 남자의 부모가 여자의 부모에게 건네주는 돈을 미리 받을 수도 있다. 이 결혼 지참금은 대개 1,000키나에서 많게는 20,000키나 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총각들은 이 거금인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완톡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지참금은 현금과 함께 일부는 부아이, 돼지, 조개팔찌, 짐승의 이빨이나 뼈를 엮어 만든 장식품 등의 현물로 주기도 한다. 예식은 거의 부족마다 교회가 있는데, 대부분 교회에서 전통적 차림으로 한다. 식이 끝난 후 완톡들과 함께 성대한 파티와 함께 씽씽이 따른다. 그리고 곧바로 신부는 6개월 동안의 허니문에 들어간다. 이 기간은 여자의 삶에 있어서 최대의 귀빈 대우이며 행복한 시간이 된다. 신부는 6개월 동안 낮에는 대나무로 만든 플랫포옴에서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고 아래는 글라스 스커트(Grass Skirt)만을 걸친 전통적 의상으로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다. 어떠한 일도 하지 않으며 날라다 오는 음식을 먹는다. 때로는 시누이, 올케, 처남, 매부, 고모부, 이모부 등을 지칭하는 땀부(Tambu)나 완톡들과 담소를 나누지만 남편과는 함께 있지 않는다. 비로소 밤이 되면 모기장을 쳐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고 남편과 함께 지내게 된다. 이러한 기간이 지나면 처녀 적에 날씬하던 여자는 살이 찌게 되고 모두들 이를 좋아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가정과 농사일을 해야 하며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된다. 한편 남편은 거금의 브라이드 프라이스를 주고도 평생을 처가의 크고 작은 경조사에 씽씽과 현물과 현금을 부조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에마와 다알린, 그들도 이렇게 결혼하기를 바란다. 예식장은 용궁이 아닌 교회에서, 지참금은 금목걸이 대신 부아이, 첫날밤은 호텔203호 옆의 부시에서 맞이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미 추장에게 결혼식 날을 정하도록 말을 해 두었다. 9. 사랑은 자유라지만 8시 10분 전에 출근 타임카드를 찍고 모니트 앞에 앉아 하루일을 계획하면 어김없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가비의 전화인사를 받는다. 오늘도 아침에 출근해서 돈보스코의 한국 수녀님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가비의 전화가 온 것이다. 박, 어젯밤에 어디서 잠을 ... 무슨 소리야? 보로코에서 수녀님들과 함께 있었지. 박, 정말 수녀님들과 잠을 잤어! 어제 위층에 일하는 미스타 아르레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가비에게 들어간 보양이다. 수녀님들이 돈보스코에 계시다 보로코의 신축중인 학교로 이사를 왔는데 주위의 젊은 아이들이 울타리를 넘는다는 소리에 지난주말 부터 수녀님 세 분과 한지붕 밑에서 밥도 먹고 울타리 보수도 하고 밤에 때아닌 야간 보초근무를 선 것을 두고 말한 것이 이렇게 홍두깨가 되어 날아 온 것이다. 박, 난 상관없어! 내가 지금 네에게 갈게. 가비, 난 매우 할 일이 많아! 수화기를 채 놓기도 전에 가비가 나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박, 얼마나 더 여기서 근무하게 돼? 무슨말이야? 난 2년 계약으로 여기에 왔으니 아직 1년 조금 넘게 남았어. 그래. 난 농담아니야. 너와 함께 오래오래 일하고 싶어. 내 마음 알겠니? 아니, 다가오는 주말에 우리 둘이 만나? 그리고 사무실에서 이러면 난 한국으로 돌아가야돼! 난 연애할 수 없어. 한국 볼런티어는 활동기간 가운데 여자를 사귀면 귀국조치를 당한다 말이야. 무슨 소리야? 서로 좋아하면 사랑은 자유야! 그래. 알어! 그런 이야기는 내 방에서 하자. 난 이해할 수 없어! 좋아. 그럼 다른 이야기 해? 가비, 넌 영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데 ... 아니 오늘 신문에 농목축부 수상의 글을 읽었어. 남태평양의 종주국인 우리 파푸아뉴기니는 1975년 호주의 식민 통치에 벗어나 국제연합의 한 의석을 차지하는 멜라네시아인의 국가로 등장했어. 그러나 파푸아뉴기니에 본격적인 사회.경제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50년대 이후부터야. 독립 10년 전인 1965년에 전 인구는 2백 50만이었는데 그 가운데 93퍼센트가 문맹이었지. 이런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은 1960년 이후 지방자치 단체로서의 지방의회의 설립과 하일랜드에 알 맞는 환금작물 즉 커피와 차의 도입 및 파푸아뉴기니 국립대학의 설립되었어. 특히 백인과의 접촉이 채 30년이 되지 않은 하일랜드 고산지대의 부시인이 커피.차.제충국(除蟲菊) 농장개발로 경이적인 지역경제 발전을 하게 되었어. 그러나 오늘날의 파푸아뉴기니는 호주의 재정원조와 유엔 및 선진국들이 원조하는 인적자원에 의지하여 천연자원 개발을 국가의 중점시책으로 서두르고 있지만 재정적자는 늘어만 가고 사회문제 또한 증가하고 있지. 기본적으로 전통적 경제와 현대경제가 공존하는 데, 인구의 75퍼센트가 전통적 경제체제에 의하여 돼지와 바나나 그리고 타로 등을 생산하며 생활을 한다. 농촌인구의 약 8퍼센트가 시장경제에 참여하여 GDP의 15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박도 알고 있을 거야. 지난주에 만들어 낸 나의 보고서에도 인구의 25퍼센트가 참여하는 현대경제는 독립이후 금.코프라.커피.코코아.나무.조개.원유.새우 등의 수출을 담당하면서 의식주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 생활용품을 수입하고 있다,고 했지. 시장조사를 하면서 알았는 데 재래시장에서는 아직까지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나 한편 슈퍼마켓에서는 닭고기 하나를 14등급으로 나누어 팔고 있었어.재래시장은 파푸아뉴기니인에 의하여 파푸아뉴기니인이 생활에 필요한 고구마.감자.얌.타로.바나나.배추.물고기.사냥고기.바빠야.파인애플.사탕수 수.각종 열매 등 무려 200여 가지 이상이 거래되었어. 그러나 서울의 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슈퍼마켓은 외국인에 의해 외국인과 국민의 2퍼센트 미만의 고급 공무원이나 관습적 땅 소유자들을 바라보고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따라서 물가도 지역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지만, 인구 20만이 사는 포트 모르스비의 생활비는 일본을 앞서, 호주산 쌀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와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 주로 수입되는 모든 일상용품의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물론 재래시장에서도 고로카에서 생산된 중국 배추 1 킬로그램 한 포기에 한국 돈으로 2천 3백 원 이상이었지. 최근 들어 외국인이 사는 주당 500카나에서 350키나로 집값은 내려가고 빈 집이 많으나 내국인이 사는 집은 부족현상을 빗고 있다고 신문에 났더군. 박의 생각에 동의해. 올해 파푸아뉴기니에서 최초로 공장 같은 공장으로 불리는 레이시에 한국의 한라자원과 파푸아뉴기니 정부가 반반 투자하여 만든 시멘트 공장을 제외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술과 담배 같은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 호주인들의 철저함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근래에 처음으로 호주원조금으로 대규모 쌀 농장을 계획하고 있어. 풍부한 수산자원을 가졌기에 있어야 할 고기잡이 배는 없고 외국인들이 즐기는 물놀이를 위한 배는 어느 곳에든 볼 수가 있다. 농사가 가능한 국토의 5퍼센트 가운데 97퍼센트가 화전과 수렵 채집 등 전통적 농업이며 나머지는 정부에서 수출을 위한 대규모 농장으로 개발되고 있어. 나는 가비의 말과 같은 이야기를 아르레로 부터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아르레는 파푸아뉴기니대학 농업경제학을 공부한 파푸아뉴기니 친구다. 나는 아르레와 함께 한 보고서를 공동으로 준비한 일이 있다. 그때 단편적이나마 파푸아뉴기니 경제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 1987년 총수입 가운데 채소와 과일 등의 식량과 육류가 16.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점점 식량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나무는 파푸아뉴기니의 주요 수출품이다. 나무를 팔 수 있는 2백 5십만 헥타르 가운데 1백만 헥타르가 채벌할 수 있도록 허가가 났다. 그러나 백 십만 헥타르 이상을 개발할 수 있어나 국제 환경단체의 규제가 심하다. 1987년 111백만 키나의 나무를 수출했다. 한편 수산자원은 최근에 와서 본격적으로 외국인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8천 3백 킬로미터의 연안, 6백여 큰 섬이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새우잡이 선단이 큰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걸프연안에서 조업중이다. 참치가 주 어종이나 고등어, 바다가재, 조개 등이 매우 많다. 2백 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하였어나 연안 3마일까지 외국어선들이 바다새우와 가재, 참치 등을 잡고 있다. 특히 광산은 세계적이다. 1992년 90톤의 금과 375천 톤의 구리가 수출되었다. 최근 세계 최대의 북엔빌 팡구나 광산이 그 동안 분리주의자들의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을 일단 무마시켜 조업재개를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94년 3월 독립을 주장하는 반군의 공격으로 식량수송을 하던 군인과 민간인 등 20여 명의 사장자가 발생하여 다시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구리와 금의 수출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남반구 최대가 될 금광이 개발단계에서 땅문제로 시간을 끌고 있다. 1992년 처음으로 35백만 배럴을 일본으로 수출하기 시작한 원유는 현재까지 1,680백만 배럴, 24백만 큐빅 피트의 가스가 매장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계속적으로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는 새로운 부족과 같이 원유와 가스도 발견되고 있다. 머잖아 일산 10만 배럴의 석유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또 한 번 놀라는 것은 약 1천여 개 이상의 활주로가 있다는 것이다. 맨발의 부시인들에서 구두를 신은 백인까지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방의 도시에서 도시로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형이 매우 험준해서 도로를 만드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 소형 비행기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하일랜드에 생산되는 커피와 홍차 등을 항구까지 수송하기 위한 도로망이 약 4백 킬로미터 길이의 전천후 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타운에서 가까운 부시는 트럭을, 연안은 배, 먼 부시와 지방정부가 위치한 타운 사이에는 비행기로 다닌다. 부시인들이 맨발로 타는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다. 최근 윙거티 정부는 포트 모르스비와 레, 걸프 등을 연결하는 도로건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호주인들은 사회 간접투자 보다는 자본회수가 빠른 3차 서비스산업의 소비적인 데 투자를 유도하였으나, 최근 들어 북방정책과 더불어 도로.농산품 가공공장. 의류공장.나무의 일차가공 등의 기간산업부문에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투자를 환영하고 있다. 10. 바나나 숲 속에서 사바나 언덕에 내리는 비 언땅 녹여 꽃씨를 재롱이는 봄바람처럼 잉걸의 땅을 일구며 적도의 태양을 조롱하네 나도야 그리움 끝에서 사랑걷이 할거나 - 바나나 숲 속에서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부시인들의 생각과 행동, 관습과 의례 등 문화에 최소한 따라야 한다. 파푸아뉴기니에 와서까지 한국사람 행세하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뭘 좀 안다면 돈 빼앗기고 몸까지 주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지 않으려면 그 나라 문화를 알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처녀와 총각 사이의 밤행사도 이들에 따라야 목숨을 보지保持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나라의 성性은 자유롭다. 그들 사이의 섹스는 하루 두끼 먹는 식사와 다름없다. 결혼전의 남자 여자 사이에 언제 어디서든 서로 통하면 즐길 수 있는 것이 성이다. 여자들은 11-12세가 되면 초경이 있고, 그때 어린 여자의 어머니가 딸의 팔이나 다리 얼굴 등 되는대로 문신을 넣어 주는데 부족이나 지방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이지만, 문신은 어린이가 아니라 결혼을 할 수 있는 처녀라는 표시이며 결혼한 여자의 문신과 다르다. 물론 문신을 새기지 않는 부족도 있다. 결혼한 여자의 문신은 남자로부터 받은 결혼지참금을 얼마나 받았는지 기록하는 장부인데 이는 남자가 죽을 때까지 분할하여 지참금을 내기 때문에 팔뚝의 기록을 보면 앞으로 얼마를 더 받아야 하는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자가 없다. 대부분의 처녀들은 14-6세가 되면 가슴이 달덩이같이 부풀고 남자관계를 가지며 17-9세가 되면 결혼을 하게 된다. 도시에 사는 처녀들은 서구문물을 받아 외국인이나 그들 마을의 남자친구와 지내다가 25세쯤 되어야 새로운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경향이다. 한국처럼 숫처녀에 대한 관념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이들은 화이트펠라 만메리들(백인 남녀들)은 프리걸(Free girl)과 플레이보이(Play boy)즘으로 믿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유부인이나 해방처녀가 아니라 많은 관습적인 것을 따라야 한다며 말하는 것은 재미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카락은 노랗고 피부가 검은 혼혈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용키댐 주위에는 유독 동양인과의 혼혈아이들이 많은데 아마 한국의 한 기업이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뿌려 놓은 듯하다. 용키 댐은 한국인이 건설한 파푸아뉴기니 최초의 수력 댐이다. 동생 에마가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하니는 날이 갈수록 더욱 나의 곁에 머물기를 바랜다. 어떤 날은 예고도 없이 나의 아파트를 들어서곤 한다. 아파트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은 아예 그녀가 오면 용건을 확인하지도 않고 들여보내 준다. 사바나 언덕은 더욱 검붉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하니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는 선녀가 보고 싶다. 그리움은 다시 그리움을 불려 일으킨다. 어떤 날은 하니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하니가 선녀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솔직히 말해 하니가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는 선녀를 잠시잠간 잊기도 했었다. 여기서 내가 선녀를 깜박깜박 잊는 것은 남자들의 속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 또한 세상 남자들처럼 이기주의자요 절반은 바람이라고 믿고 싶다. 하기사 내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또 미래를 조금은 확실하게 약속한 일도 없기에 여자친구를 만들 수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동양적 윤리관이나 서구의 행태로 보아서도 아무런 구속이 없다고 판단하고 믿고 싶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니 하면서 나이 서른이 넘어도 여자친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말이 난 김에, 그 즈음 동방예의지국을 잘도 노래하는 대한민국 남자의 물보다 진한 피가 아니라, 피보다 진한 물 이야기를 외교관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예보세요? 박 사장님이시죠. 예, 그렇습니다만 어디신지요? 예, 여기 B대사관입니다. xx전투(공사현장)에 참가하셨지요. xx전투니 공사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의 말이 부시 나이프 혹은 돌도끼가 되어 날아든다. 죽어도 xx에 간 일이 없소! 결혼해 잘 살고 있는 데 무씬 쏘리요! 대사관에서 그렇게 할 일이 없쏘이까! 경재를 살리자는 돼 ... 그래도 내가 사는 주의의 서구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핏줄을 찾아가는 이가 많다. 때로는 양육비를 꼬박꼬박 송금하고 일년에 한 번은 얼굴을 보고 가곤 한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나는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을 보고 한국의 역사는 말의 역사지 행동(실천)의 역사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내가 왜, 무얼 망설이는가? 대한민국이 파견한 볼런티어이기 때문인가. 봉사자는 생활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찍 소리 하지 말고 나누고 섬김에 온 힘을 쏭으라 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만의 선녀가 적도의 오지에서 덕석 깔고 소 엉덩이에 주사를 주고 있기 때문인가. 아무튼 아직은 선녀가 비록 멀리에서 살기는 하지만 나의 몸과 가슴을 꽁꽁 묶어두고 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은 보다 자유롭기를 바라오. 아직은, 사랑하므로 그대에게 구속을 줄 수 없소. 사랑으로 인한 당신 스스로 가져온 구속이 그대에게 머물 때까지 기다리겠소. 흠, 내가 선녀를 생각하고 느끼는 것 이상을 선녀가 나에게 주기를 바랬는지 모른다. 그때 나는 이별의 이유를, 부시로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단을 이렇게 말했었다.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때나 이때나 나는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래 결혼이라는 것은 나이 더 먹기 전에 홀딱 해버리는 게 현명한거야. 그래도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또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세상물정 이것저것 보고 깨달은 후보다 좋지. 이리 재고 저리 맞추는 것도 모자라 두 근이니 네 근이니 하면서 저울질까지 하는 그 사이비 비법을 알기 전에 말이다. 어차피 혼자 살기로 작당하지 않았다면 20대 초반에 일단 하고 보는 게야. 나는 어서 빨리 각시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눈이 밝아지고 덧셈 뺄셈 곱셈까지 다 알고 나면 혼자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총알을 맨손으로 막으며 거리를 달리는 삶이고 보니 자연히 나는 육신이 멀쩡한 채로 폐쇄병동에 갇힌 환자가 된 꼴이라 마냥 따뜻한 남의 체온과 숨결이 그리워져 갔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에 들어가면서 사바나의 언덕이 황톳빛으로 짙어갈 수록 육체적 욕망도 함께 검붉다 못해 새파란 불덩이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욕망은 어떻게 해서든 물 건너가기 전에 선녀를 잡아야 한다는 지상최대의 과제로 줄달음 친다. 다시 나는 선녀에게 편지를 쓴다. 선녀, 저녁을 먹고 나니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찾아 드는군요. 작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매우 큰 나비입니다. 나만의 방을 날아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 꽃밭 속으로 날아가게 할까 생각하다 좀더 두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꽃밭도 좋지만 나의 방이 보다 따뜻하며 밤바람을 피하기에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비가 자유롭게 나래를 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직은, 사랑하기 때문에 구속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서도 말입니다. 완전하게 하나 하나로 서기 전에 구속이 먼저 따른다면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보아도 다른 처소보다 이 작은 방이 편안한 밤이 되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면서 창문을 빈틈없이 잠가 둡니다. 하얀 나비도 감지했는지 다른 곳을 찾는 일을 단념한 듯 나의 어깨에 살그머니 앉았습니다. 나는 혹시나도 상처를 주는 등 불안한 밤이 안되게 조심조심 바라만 봅니다.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나만의 하얀 나비, 다시 선녀를 찾아갑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진정한 남자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지 조건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분명히 나무꾼은 흔히 세상살이에 으뜸으로 치는 것 보다는 따뜻한 가슴을 소유한 사람을 존경하고 이성보다 감성이 풍부한 여성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삶의 제일로 여길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 말하지만 이는 믿음과 소망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차대조표를 바탕으로 한 사랑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또 사랑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고 어떤 이물질이 낄 때 참사랑이니 하면서 참임을 강조하곤 하지요. 이는 믿음과 존경이 없는 만남에서 자갈과 돈을 섞은 콘크리트로 만든 사랑이지요. 우린 이미 서로를 신뢰하며 존경하고 또 신비로움까지 서로 발견하고 있잖아요. 이런 마당에 뭘 망설여야 합니까? 선녀, 우리는 이제 누군가 한 사람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면 기름을 준비하고 밤을 새워야 합니다. 예비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실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뒤돌아 서도 아니됩니다. 당당하게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사랑을 가꾸어 가야 합니다. 선녀, 선녀는 내게 있어 하늘이요 땅이요 산에 산새이며 들의 풀꽃입니다. 아니 한편의 아름다운 시詩요 그림이요 음률입니다. 오늘 선녀의 카랑한 목소리는 이른 아침 두렁의 풀잎 끝 맺힌 이슬방울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소리로 달려 왔습니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지요. 환언하면 무한한 자유는 곧 구속이 되므로 사랑은 구속이 따른다고 할까요. 땅과 하늘이 만나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해선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향기롭고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선 땅은 어머니와 같이 또 하늘은 아버지처럼, 이렇게 힘을 합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때론 세찬 비바람에도, 꽃샘바람의 시샘과 질투 등 여러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되겠지요. 이제, 선녀와 나무꾼은 건너야 할 강을 주저함이 없이 힘을 합해 힘써 건너야 하겠습니다. 둘 사이 흐르는 강을 양편에 서서 바라보면 혹 건널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강을 건너려 물가에 서면 강 저편이 아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신神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맨몸으로 강물에 뛰어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이 아닐까요. 만나고 싶소! 밤 깊은 사바나 언덕에서 추 신 : 나무가지가 흔들리면 바람이 분다는 증거라나요. 나는 이렇게 밤새도록 편지를 쓴다. 지난주에 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으며. 애련(愛戀)한 선녀, 요즘 들어 밤기온이 차갑군요. 적도의 가을인가 봅니다. 그대 계시는 인도네시아는 어떠합니까? 밥은 챙겨 먹습니까? 건강하지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는 어떻게 잘됩니까? 혹, 사내들이 성가시게 하지는 않나요? 나처럼 ...? 총.칼의 위험은 없습니까? 시장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살 수 있습니까? 잠자리는 어떤가요? 설마, 비야 새겼습니까 마는. 아니, 편지는 제때에 받아 볼 수 있습니까? 라디오는 있습니까? 약품이 있어야 동물들을 돌볼텐데 뭐가 제대로 있습니까? 일은 있습니까, 아니면 만들고 있나요? 자전거라도 있습니까? 일터의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거긴 비는 자주 내려 수돗물은 공급되겠지요? 전기는 공급이 됩니까? 보고 싶은 사람은 있습니까? 시간이 잘 가나요? 동료들과는 가끔 만납니까?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읽을 책이라도 있습니까? 라디오가, 한국방송이 잡히나요? ...... 제기랄, 궁금한 게 왜이리 많노! 그래 한마디로 우찌사노? 누나야, 나 안보고 싶나? 누나 니는 지금도 내 밥그릇 두 개 가슴에 잘 간수하게 있재! 나는 니가 보고싶어 죽겠꼬망! 다 파방 시키고 그리로 갈까? 난 지금 절실하다고! 밥그릇이 있어야 밥을 묵제. 내 밥그릇 빨리 돌려다고! 기가? 기다,를 기다리마. 선녀, 오늘밤 이렇게 멀고도 가까운, 가깝고도 먼 곳에서 선녀가 날 부르네요. 그래, 모든 것 다 잊고 사이소! 괜히 해본 소린기라요. 생각을 깊게 하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게요. 물 흐르는 대로 함께 가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 들어 살아가는데 한限이라는 게 절실히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요. 한을 쌓고 한을 푸는 일련의 연속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도 하나의 한이 아닐까요. 그리움을 쌓고 또 그리움을 풀며 살아야 하는데, 오로지 쌓고만 있다면 보다 완전한 삶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애련愛戀한 선녀가 나무꾼의 가슴에 한을 쌓고 있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죄(?)입니다, 죄! 선녀는 천형을 받을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럼, 여기서 횡설수설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서로 얼굴 맞대는 날, 아니 니 가슴에 달고다니는 내 밥그릇 내게 되돌아 오는 그날까지 무조건 건강해야 합니다. 안녕히! 1993년 ??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선녀를 그리워하는 나무꾼이 밤새 선녀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튼튼한 창살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하니가 왔다. 하니는 나를 자신이 사는 완톡마을에서 가까운 검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해변으로 데리고 간다. 야자나무숲은 마을과 바다 사이의 검은 모래밭을 따라 꽤 길게 뻗어 있다. 우리 둘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수줍은 듯 웃는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바라본다. 어린 바나나 숲으로 둘러 쌓인 마을이 해설피 웃고 있다. 뭍으로 뭍으로 쉼 없이 달려오는 파도에 이미 반바지가 젖고 있다. 그녀는 햇살이 따갑다며 야자나무 숲 속을 가리키곤 한다. 그러니까 지난 3일 동안 내가 하니로부터 배우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마을의 말뿐만 아니라 하찮은 관습이나 풍습 그리고 남녀관계 등의 결혼풍습까지 듣고 보고할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열 아홉의 나이답지 않게 결혼풍습을 이야기하면서 성性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때 나는 하니의 후리후리한 눈과 수 없이 마주쳤고 그럴 때면 그녀는 살며시 웃음을 보이면서 야자나무 숲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 하니는 나에게 마치 견딜 수 없는 형벌을 주고 있다. 그녀가 자꾸만 아름답게 보인다. 몸에서 나는 싸한 냄새가 어느 날 같지 않게 하얀 처녀내음으로 건강한 사내의 가슴으로 깊이깊이 파고 들어온다. 풍만한 가슴이야 출근길에 흔히 보아 온 것인데도 그녀의 가슴은 유별하다. 사내의 숨은 가파 오는데 태양은 짖꿋게 빤히 내려다 보고 있다. 구름이 태양을 훔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바다마저 파도를 앞세우고 우루루룩- 소리까지 치면서 훼방을 놓고 있다. 박, ...좋아해? 하니가 피진어로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얼버무린다. 미 싸베Mi Save ...!" 나의 대답은 네가 질문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 나의 얼굴을 주시하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하니가 내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환한 미소와 함께 더욱 나의 곁으로 다가온다. 파도소리 사이사이로 그녀의 숨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아마 하니도 나의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둘은 하얀 거품을 내면서 달려오는 파도에 휩싸인다. 순간 둘은 서로를 필요(?)했고 집채만한 파도에 밀려 하나가 되어 모래밭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동안 서로를 멍하게 바라만 본다. 둘을 넘어뜨린 파도는 모래밭에 닫자마자 쉬 부서지며 힘을 잃더니 다시 태평양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둘 사이의 못 볼 것을 훔쳐보다 들켜 발길을 돌리는 아낙 같아 보인다. 하니는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야자나무숲을 가리킨다. 아직 내가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속 시원히 생각을 영어나 피진어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소위 바디랭귀지로 의사전달을 해 오곤 한다. 그녀의 몸짓은 둘이 100미터쯤 앞에 반도처럼 생긴 야자나무숲으로 가자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자나무 잎은 햇살을 완전히 가렸고 바람 또한 적당히 불어와 기분이 더욱 좋다. 우리는 잠시 통나무에 걸터앉아 검푸른 바다를 바라본다. 흥얼거림과 침묵이 계속된다. 나는 바다내음이 무엇보다 좋다. 한때 부산에서 생활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광안리 해변을 달리며 바다내음을 즐겼었다. 수산대학 옆에 살았기 때문에 아침운동을 겸사하여 바다내음을 찾아 모래밭으로 나서곤 했었다. 산골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바다내음이 갯비린내로 매스꺼웠지만 금새 그 내음은 아름다운 여인에서 나는 향기 이상이 되어 부산생활의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로 달려갔던 것이었다. 바다내음이 나에게 없었던 날은 경험 많은 여자의 홀로 지새는 동짓달 밤과 같았었다. 나는 야자나무숲을 출발하여 눈 가는데 까지 달려간다. 먼바다 그 어디쯤의 내음은 어떨까? 어딜가? 하니가 나를 보며 활짝 웃더니만 마을 쪽으로 가려고 한다. 곧 돌아올 테니 여기 가만히 않아 있어! 무슨 일로 어디에 가는지 물었는데 하니는 되려 명령조로 나에게 말한다. 하니는 그렇게 한마디 던지더니 곧장 마을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한다. 기쁨에 찬 얼굴로 뛰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나는 목을 길게 빼어 하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다시 바다가 나를 부른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평화의 부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별과 달과 산의 산새와 강의 물고기뿐만 아니라 바람과 물소리와 더불어 살고 싶다. 나는 베드로와 같이 물위를 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에서 나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빨주노초 파난보, 일곱 색깔 무지개가 손짓하고 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곳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서울발 부산행 고속버스 속력보다 빨리 달려간다. 그러나 달려가면 갈수록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은 야자나무 숲 속에서 처음 본 거리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힘을 내어 달려오면 잡을 수 있다고 손짓하고 있다. 그때 하니가 나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진다. 바나나 잎을 한아름 안고 돌아온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왜- 바나나 잎을 가져왔느냐? 하니는 나의 물음에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나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가장 큰 바나나 잎을 들고서 바닥이 비교적 평탄한 곳으로 간다. 하니는 가로세로 1미터쯤 되게 바나나 잎을 두 겹으로 깔기 시작한다. 잎의 등 쪽을 땅으로 가게 하나하나 정성을 쏟아 가며 깔고 있다. 나는 궁금하여 묻고 싶지만 하도 하니가 정성을 쏟길래 두고 보기로 한다. 그녀의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얼굴에 미소를 활짝 피우고 선 바나나 잎을 이리저리 재 보며 제자리를 찾아 주고 있다. 바쁘게 그러면서도 신명나게 바나나 잎을 가지런히 깔고 있는 그녀를 바라다 볼 수록 의문을 더해 간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니, 무엇 하려 그래? 제발 설명을 해 다오. 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돼! 하니의 대답은 간단하다. 웃음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의 웃음은 멈추질 않는다. 좋아,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 지금 알 수 없을까? 나는 조급해서 기다리라는 하니의 대답을 무시하고서 다시 찡얼찡얼 되묻는다. 모래가 너무 뜨겁잖아! 난 상관없지만 박은 아니야. 그리고 모래가 우리들의 놀이를 방해하게 될 거야. 그래서 바나나 잎으로 방을 만드는 거야...... 이제 알겠니? 갈수록 태산이다. 그녀가 무엇인가 설명을 했는데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어설프게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 게 찝찝하지만 이 마당에 이해를 못했으니 다시 설명을 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0kay, Mi Save!", 영어와 피진어를 짬뽕해서 알겠다는 말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몸으로 말한다. 그러나 나의 머리는 더욱 혼란스러워만 간다. 제기랄! 영어 한가지라도 똑똑하게 알아야 ... 10년 이상 영어와 씨름했는데 이게 무엇이고! 나도 모르게 긴 한숨과 함께 중얼거린다. 영어와 피진어 그리고 모투어로 막힘 없이 말하는 그녀가 대단하게 보인다. 그녀가 마지막 바나나 잎을 제자리에 찾아 주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온다. 말은 하지 않지만 하니는 나의 무릎에 앉으려 한다. 나의 얼굴을 바라다보더니만 두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왜 자꾸만 내게 다가와! 나-안 모른다고! 퉁명하게 말을 하려 했으나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의 흔한 억양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는 막힘 없이 피진어로 내뱉은 것이다. 젠장, 이렇게 쉽게 나오는 말인데 사무실에서는 왜 안되지! 하니는 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더 나에게 다가온다. 하니의 풍만한 가슴이 나의 가슴에 닿으면서 나는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번개가 머리를 스치고 지난다. 안돼! 난 그거 몰라!(Mi no save em, ya!)" 고함을 내지른다. 놀란 하니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될 뿐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니는 더욱 화를 내면서 다시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안 줄려고 빼니 문제가 되지, 달라면 훌딱 주면 그만인기라! 선배단원이 한 말이 불현듯 스쳐지나 간다. 그래 그 말이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상황이 다르잖아! 제기랄! 가는데 까지 가봐! 지금 내가 멀 망설이고 있지? ...... 이렇게 나의 머리는 삐거덕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생각이 겹치면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그때 그놈은 2키나 밖에 없다는 나의 말에 자신의 바지가랑이 속에 총이 있다고 위협을 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만세를 하늘 높이 내질렀고 그리고 애무의 손길 마냥 그놈의 손길은 나의 몸 샅샅이 훔쳐내려 갔었다. 그때 나는 한낮의 큰길에서 퇴근하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딱 벗고 말았었다. 새총인지 엽총인지 그놈의 총이라는 말에 당한 것이었다. 그놈은 분명히 무릎과 무릎 사이에 물총 하나는 가지고 있긴 있었다. 11. 엎친대 덮친 격, 사랑 그리고 그 이후 몸살 핵무기 단 한방에 수 천을 죽여야지 화살과 돌칼 들고서 사냥 나선 원시인아 사람의 사람이라면 핵무기를 사거라! - 뱀의 꼬임 - 미스타 박, 마프릭 완톡 전화 받아! 여보세요? 완톡!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화인데 당분간 연락이 안될... 여긴 지금 살벌... 모든 상점과 관공서가 문을 내리고 ... 그래, 신兄은 아무일 없고? ...... 문마프릭 벼재배 시범농장에 살고 있는 신을용이 나에게 한 전화다. 인공위성에 의해 연결되는 전화목소리는 맑고 깨끗하게 들렸는데 어딘가 불안해 하는 것 같다. 혼자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떠난지 3개월이 지나서 처음 듣는 목소리라 무척이나 반갑다. 그는 보름 전에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건강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그는 라스칼이 경찰 현금수송 차량을 습격하여 그 지역 경찰 책임자가 총에 맞아 중상이며 모든 관공서와 상점이 문을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은 지금 농장 사무실을 떠나 집으로 가는 중으로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게 되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전화연락이다. 비상 연락망의 수단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다음날 신문에 사건이 자세히 보도되었다. 금요일 급여를 위하여 운송 중이던 현금을 털려는 라스칼의 총질에 수명의 경찰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돈은 빼앗기지 않았지만 피해를 당한 경찰이 인근 마을을 불지르고 있어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신문에는 라스칼이 경찰을 다시 공격했다고 했다. 물론 범죄가 없는 부시마을도 있다. 그러나 파푸아뉴기니에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일반적으로 말한다. 지난 12월초에는 내가 근무하는 농목축부 중앙청사 앞에서 칠레 출신 정책기획실 국장이 라스칼에게 차를 빼앗긴 일이 있었다. 그날 그는 점심시간에 6명의 무장강도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더구나 5-60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오전 12시에 당했다. 며칠 뒤에 차는 찾았지만 그는 얼마 후에 칠레로 돌아갔다. 나 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파푸아뉴기니에 도착한지 보름째 되던 날 베레나에서 성백주와 모르스비로 돌아오는 길에 라스칼의 총구에 목숨이 걸렸었다. 2차선 포장도로를 덮개가 없는 1톤 트럭 짐 싣는 곳에 함께 탄 5명 모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다행히 그때는 성백주가 1년간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수 차례 그러한 류의 상황을 경험하였고 또 부시인 완톡과 동행했기에 진땀 한 번 내는 비상非常으로 끝났었다. 그 이후 그 해 12월까지 두 번에 걸쳐 돈을 빼앗겼다. 내가 여기서 잔돈 몇 푼 빼앗긴 이야기를 한다면 성백주가 비웃을 것이다. 그는 3일간 감금상태에서 끌려 다니다 용케도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결국 방에까지 찾아오는 라스칼의 위험에 활동종료 7개월을 남겨 두고 레이지역으로 임지를 옮겼다. 아무래도 여기서 내가 당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어느 날 지체 높으신 분의 부인이 윤간을 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혼자만이 간직하기에는 주체할 수 없는 짐이었지만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만약 이웃에서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은 이만저만한 망신거리가 아니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여자가 얼마나 풍기고 다녔으면 당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속앓이를 앓고 있던 어느 날 다시 지난번에 자신을 윤간한 한 녀석과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녀석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느 호텔로 가는 게 좋은가? 녀석은 그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때 다시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지난번 기분(?)은 ... 녀석은 그녀를 강간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그날 밤에 지체 높으신 분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아이의 간이라도 빼먹은 듯 문둥이 같은 입술에서 고약한 냄새와 함께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일단 나는 피진어로 만나서 반갑다 는 말을 뱉었다. 그리고 다시 영어로 완톡,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담배 하나 줄까? 그런데 그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그의 부족 말과 피진어 밖에 몰랐다. 지난번에 호스텔에 가다 당한 경험이 있기에 따돌려 보려는 생각에 잔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내나! ... 총... 쏘아 죽이겠다! 얼굴을 잔득 찌푸리고 선 피진어로 말했다. 순간 나는 하늘 높이 두 손을 들어 만세를 불렀다. 사실 그때 내가 허공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놈들이 일을 다 마친 뒤 길 건너 언덕으로 서라질 때 알았었다. 버스가 지나가고 퇴근하는 공무원들이 지나갔다. 그놈이 나의 바지 주머니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마음의 안정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눈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 지체 높으신 분의 부인이 자신을 강간한 녀석을 따돌린 솜씨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군! 생각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래! 총알은 하나님도 피할 수 없제. 제기랄! 주라 할 때 주었어야 하는데 ... 바지가랑이에 오른손을 쑤셔 박고 있어 정말 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고약한 놈은 나의 윗도리 주머니에서 2키나 짜리 지폐 한 장을 끄집어 냈다. 그제야 퇴근길 승용차 안에서 웃거나, 더러 얼굴을 찌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의 시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알통을 앞차부수기로 단번에 깨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 이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래 한 놈이 아니군! 야자나무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패거리 한 놈을 발견했다.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 다시 가방을 뒤지는 놈이 나에게 말을 했다. 정말 돈이 이것밖에 없냐? 완톡, 난 돈이 없어 버스 타고 다닌다고! 잠깐만 ... 나는 다이얼 표지 속에 비상금으로 숨겨 다니던 10키나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고약한 놈은 동전과 열쇠꾸러미가 든 작은 지갑을 가지고 뒤돌아 서는 게 아닌가. 헤이, 완톡, 거기 돈 없다니까! 열쇠만 돌려줘! 음- 그놈도 나를 따라 피식 웃더니 아파트와 사무실 열쇠 7개가 달린 꾸러미를 던져 주고서는 길 건너 언덕 아래로 달아났다. 그날 나는 4번 버스를 타고 와 3백 미터쯤 떨어진 한국대사관으로 가는 길 초입 버스정거장에서 놈들에게 잡혔던 것이다. 그렇게 1토야 짜리 동전까지 돈이란 돈은 다 빼앗겼었다. 다행히 그날은 금요일이라 아침 출근하면서 몸값을 확인까지 하였고, 몇 푼의 돈은 제구실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집까지 2백 미터쯤 거리를 걸어오는 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또 분하기도 했다. 괜히 다른 외국 볼런티어와 달리 차량지원을 하지 않는 파견기관인 본부에 대고 십원짜리를 허공에 대고 쏘아 붙였다. 자갈치 시장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는 격이었다. 안전지역(?)인 집에 무사히 돌아왔으나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약 2백 미터의 거리를 안전지역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의무가 떨어졌다. 지난번 아파트 정문을 지키는 존이 부아이를 파는 곳까지는 자신의 완톡 구역이라며 코리아 보이에게 자유지역으로 선포했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부아이 파는 곳까지 100미터가 문제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앞으로 20개월 동안 매일 그곳을 한 차례씩 통과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곳을 어떻게 해서든 안전지대로 만들어야 했다. 라스칼의 직접적 공격권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나는 고로보셀의 하일랜드 심부 출신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방문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호랑이로부터 안전을 위협받는다면 호랑이 굴을 찾아가 안전을 모색하는 것이란 생각에서 토요일에 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 하던가, 하여튼 사무실에서 티 보이로 일하는 심부 사람과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한길 밑에 사는 심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담배와 1키나 짜리 동전을 준비했다. 얼굴을 익히려면 뭔가 주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페이백이니 완톡문화에서 얻어냈다. 물론 그날 나는 코리아에서 왔는데 돈이 없어 버스를 타고 다니니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며 궁상을 떨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사나워 보이는 청년 한 명을 집에 데리고 와 나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화이트만인 내가 자신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또 TV와 전화마저 없이 산다는 사실에 동정까지 했다. 그런데 나는 가면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며 함께 잠 잘 수 있는 하우스 메리(가정부)를 소개시켜 준다는 그의 말을 거절하는 데 또 한 번 땀을 흘려야 했다. 그리하여 토요일 이후 나는 그들로부터 퇴근길에 보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완톡으로 받아 주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나는 모스(Moss)라는 이름을 가진 하일랜드 출신의 현지인 친구들이 만든 조직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안전에 대한 충고와 함께 여기서 이야기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했다. 신문은 연일 경찰이 몇 명 죽고, 라스칼을 몇 명 잡았다는 식의 기사가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범죄를 뿌리뽑기 위하여 외국의 용병을 수입하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호주 인이 경영하는 상점 앞에는 잘 훈련된 호주산 개가 지키고 있다. 한편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 시민들로 인하여 술판매 금지령이 내려지기를 강력히 주장하는 단체도 있다. 한편으론 낙원이라 불리면서도 빈번한 범죄가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에덴의 서쪽이다. 조직적인 범죄라기보다는 상습적으로 또는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사고형태로 발생하는 듯하다. 아마도 본능적 충동에 따른 소유욕과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심이나 질시 때문에 범죄가 다발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 상대적 빈곤감이 범죄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는다. 이러한 생각에 나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손목시계는 아예 보이지 않도록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 필요하면 꺼내 본다. 최대한 그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행동해야만 하는 데, 이 또한 간혹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번잡한 범죄는 서구의 침입이 시작되면서 탄생했다는 게 한결같은 이야기다. 해방전후만 하더라도 쇠창살 문화라고까지 불리는 창살이 없었다고 한다. 서구인들이 총을 밀반입 하여 부시인들에게 팔며 심지어 마약까지 몰래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호주로부터 무기와 마약이 공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파푸아뉴기니의 일부 지식인들은 외국인들, 특히 호주인을 마냥 좋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1994년 6월 前미스 피엔지가 호텔에서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4명의 라스칼로부터 윤간을 당했는데 이 20대의 피해자는 칠순에 가까운 백인 할아버지와 결혼을 해 화를 불러 일으켰다는 여론이다. 하니와의 일이 있고 선녀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길 대로의 한길에서 권총으로부터 혼마저 빼앗겼기 때문인지, 나는 뒤늦게 신고식을 톡톡하게 치르게 되었다. 부족과 부족. 현대와 석기. 기독교와 마법. 남과 북의 경제사이의 문화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터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돌도끼나 뿌리뿌리만의 마법과 돈을 내놓으라는 총알뿐만 아니라 여자와 마약을 저마다의 재주대로 막거나 피해야 겠고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달라붙어 피를 말리는 학질모기로부터 말라리아 벌레를 몸 속에 들여놓지 않도록 세심한 주위를 기울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말은 것이다. 어줍잖은 사랑 그리고 그 이후 몸살로 나는 하마터면 서울로 실려갈 뻔 했다. 발병당시, 월요일 아침 경쾌한 마음으로 현장에 출근했으나 오전10시부터 윈지 몸이 나른하고 피곤함을 느꼈다. 그런데 아마 지난밤 잠자리가 불편했던 탓 일 것이라며 가볍게 생각했다. 게다가 그날은 이틀째 시장조사를 나가야만 했다. 전날 하루종일 시장조사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에게 늑장부리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피곤함을 내색할 수가 없었다. 이미 열대의 뙤약볕에 내성이 있는 그들과는 달랐다. 그들과 똑같이 열대의 태양을 견디어 낸다는 것은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몸이 무거워 옴을 느꼈으나 뙤약볕에서 무리한 탓에 피곤함 일거라 생각하며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끝내고 일치감이 잠자리에 들어갔다. 더구나 두 달째 매주 거르지 않고 말라리아 예방약 클로로킨을 복용해 왔기 때문에 말라리아 일 것이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 갈수록 피곤함은 몸살기운으로 전환되면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잠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이미 체온은 39도가 넘었다. 체온계의 눈금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준비한 구급상자에서 진통제 두 알을 먹은 다음 날이 새면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약효가 강한 판시다를 복용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동틀 무렵엔 고열과 두통이 더욱 심했다. 동이 트자마자 보로코의 개인병원을 찾아갔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면서 피검사를 의뢰했다. 의사는 강력한 열대성 말라리아라고 내게 통고하면서 우려했다. 그리고 나에게 비교적 약효가 우수하다고 평판이 나 있는 신제품 말라리아 치료약인 을 주었다. 8시간마다 2정씩 1일 3회복용 하라며 친절하게 메모까지 해주었다. 그때까지는 입맛이 없어 먹지 않았지만 소화기능의 장애는 없었고 간단한 음식물을 먹을 수 있었다. 둘째 날은 그렇게 집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지나갔다. 셋째 날은 약을 복용한 탓인지 첫날밤처럼 심한 두통은 없었으나 체온은 여전히 38도를 웃돌고 이었다. 두통으로 몸을 일으켜 움직일 때마다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무엇이든 먹어야 하는데 도저히 먹고 싶지가 않았다. 주스나 초코렛을 입에 대도 달지가 않았다. 그러니 밥이나 빵을 혼자 구워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체내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약기운에 소화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밤이 되면서 호전되는 듯 싶더니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39.4도의 고열과 심한 두통, 관절통, 오한에 배고픔까지. 게다가 피부색도 말도 먹는 음식 마져 큰 차이가 있는 남의 나라 땅 오지에서 홀로 병마와 싸운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고통의 시각시각이었다. 이렇게 나는 더욱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하룻밤 사이 극단적인 생각이 수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살아서 고통스럽다면 죽음이 백 번 좋을 것 같았다. 이상한 것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먹을 것을 찾았다. 그러나 물을 마셔도 곧 토하기 시작했다. 어떤 음식에서도 말라리아 치료약 냄새가 진동했다. 구토증세까지 가세해서 한잠도 자지 못하고서, 또 그렇게 새날을 맞이했다. 사바나의 밤은 하이얀 꽃가지에 목매달고 / 야자수 열매 같은 남국의 달 / 고향은 달빛 아래서 눈부시게 빛난다. 어째든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땅과 하늘이 뒤죽박죽 엉켜 도는 가운데서도 칼라나 병원길을 찾아갔다. 생각하면 그때는 인간의 초능력이 내게 나타났던 것이다. 하나님만이 나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2차 피검사 결과는 아직 체내에 말라리아 균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의사는 두통약 아스피린과 퀴니네정을 주면서 결과가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누구와 함께 사느냐고 의사가 묻기에 혼자라 하니 그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미 약효에 대한 신빙성을 믿지 않았고 다시 밤이 온다는 사실이 엄청난 공포로 느껴 오기 시작했다. 다행이 오후 늦게 가비가 나에게 왔다. 사무실에 연락도 없이 며칠 내가 보이지 않자 퇴근하면서 그녀가 나의 집으로 찾아 온 것이다. 가비는 그 날밤 내내 나의 곁에서 차가운 물수건으로 나의 고열을 식히려 노력했다. 박, 유 오라이? 그래. 좀 괜찮아! 가비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계속해서 가비는 냉장고의 차가운 물로 나의 온몸을 훔치며 열기를 식혔다. 나는 가비가 선녀로 그리고 하니로 보였다. 가비가 너무나 예쁘게 보였다. 그녀의 정성을 다한 따뜻한 손길에 나는 밤이 깊어 가면서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가비는 한국국제협력단의 파푸아뉴기니 현지사무소 코디네이터에게 연락을 하고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식비인지 생활비인지 그 돈으로 전화며 털레비전을 보며 살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일본이나 영국에서 온 볼런티어 친구들 집에 가서 TV며 전화까지 사용하곤 했다. 차도 없이 걸어다니는 판국에 전화를 놓는 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또한 서울의 본부에서는 사고의 위험을 내세워 손수 운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푸아뉴기니에서 운전을 하지 않고 봉사자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다새째 밤도 아니나 다를까 전날 밤과 별 차도가 없이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지새웠다. 다시 의사를 찾았다. 그놈의 피검사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그 신물나는 약이란 약은 허공을 향해 던져 버렸다. 국립병원에서는 먹는 약 대신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때마침 토.일요일로 공휴일인지라 병원방문이 불가능했다. 동료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데서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구토증세와 두통이 지속되긴 했지만 진짜 완톡의 보호아래 오는 밤은 그렇게 무섭지가 않았다. 그럼 이 병의 원인이 고립감과 고독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진짜 완톡을 바라만 봐도 금새 완쾌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병 여드레째 보로코(Boroko)의 한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에게 그간의 병세를 알려주었다. 나는 간단한 소변검사와 진단을 통해 주사를 주었다. 소화기관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주사처방은 곧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은 별 고통 없이 잠을 잘 수 있었다. 물론 두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날이 새면서 머리가 무거웠지만 그 정도는 참을 만 했다. 아흐레 째부터 말라리아 균이 죽어 가고 있었다. 두통과 현기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체온은 정상보다 약간 높았으나 산사람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울타리를 따라 걸어도 보았다. 슈퍼마켓에 가서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았다. 무엇이든지 맛이게 보여 푸짐하게 이것저것 사 왔다. 그러나 집에 와서 바스켓을 먹어 보았지만 단맛을 느낄 수 없었다. 열흘째가 되면서 두통이 사라지면서 정말 살 것 같았다. 의사가 지시한대로 그날은 판시다(Fancider) 두 알을 다시 먹었다. 약에 대한 혐오감으로 전혀 내키지 않았으나 혹시 하나라도 재발의 우려 때문에 약을 먹은 것이다. 역시 그 강력한 약효로 특유한 약냄새, 소화기능이 다시 악화되는 듯 했지만 이제 회복기에 들어갔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발병한지 열흘째가 되어서야 그 동안 먹지 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말라리아는 게을러 밥을 제때에 먹지 않았던지 무리하게 일을 한다든지 하여 몸의 균형이 약간만 흐트러져도 체내에 잠복중이든 원충이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소홀한 식사에 장시간 직사광선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말라리아는 매주 복용하는 예방약만으로 절대 안심하지 말며, 피곤함을 느끼면 무엇이든 많이 먹고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서울을 출발한지 3-5개월이 지나면 살이 빠지고 몸의 균형상실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때 고른 음식물을 먹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왜냐면 그 동안에 언어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을 빼앗겼기 때문에 정신적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식생활에 소홀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말라리아 모기에게 물리지 않는 게 최상의 방법이다. 그러나 어디 서울에서 가져온 모기장 치고 그 안에서 마을 사람들과 밤을 지새우며 모기, 그놈들에게 피를 빼앗기지 않고서 뉴기니섬에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 몸이 무거움을 느끼면 잠복 중이던 말라리아 원충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는 신호이므로 의사를 찾고 정확한 진단과 함께 가능한 주사처방을 받는 게 좋다. 말라리아라고 판명되면 그 즉시 24시간 함께 있어 줄 사람을 찾는데 현지인이 아니 동료단원이 바람직하다. 병이 약화되었을 때는 물을 마셔도 토하게 되므로 평상시 규칙적인 생활 속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모두들 각 지방에 흩어져 살아야 되기 때문에 체온계를 늘 가까이 두고 몸의 이상시 수시로 체온을 체크하여 스스로 신속하고도 정확한 판단에 의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아무튼 말라리아는 부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몸살감기처럼 일년에도 수 차려 지나가지만 어린이와 외국인들에게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파푸아뉴기니의 야당총수 잭 기니아가 말라리아 합병증으로 93년 7월에 45세의 일기로 호주의 병원에서 갑자기 죽기도 하여 정치적 혼란까지 몰고 왔다. 간혹 어떤 부시 사람에게도 가혹한 병이 되기도 한다. 나와 함께 일하던 이곳 사람이 말라리아로 퇴원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부족마을로 돌아가기도 했다. 수 차례에 걸쳐 말라리아를 앓고 난 후 말라리아 합병증인 피부병으로 서울에서 한 달 넘께 병원신세를 진 동료들이 있다. 성백주의 경우 농장을 경영하던 교민의 집에서 말라리아를 퇴치하였으며 또 다른 한 단원도 서울로 후송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또 다른 한 단원은 말라리아 합병증과 위궤양으로 서울에서 치료를 받아 오던 가운데 단원활동을 포기하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말라리아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으나 단지 그 후유증에 간호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합병증 또는 후유증은 정신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국제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국정부가 청년들을 해외에 파견한다면 국가 지정병원에서 말라리아를 연구토록 하여 해외근로자가 보다 안심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말라리아로 현지에서 또는 서울로 후송되었지만 환자의 상식보다 못한 의사의 치료, 혹은 의사들의 호기심을 푸는 데 혈액원이 되기만 했다. 세계화, 국제화를 부르짖으면서 국가적 사업의 현장이 동네 구멍가게식 관리방식이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봉사자이기 때문에 활동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수해야 하고 스스로 인내하며 극복해 나가기에는, 지게를 질 수 있는 어깨가 무한히 큰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파푸아뉴기니 보건부의 일차적 목표는 말라리아의 퇴치다. 그러나 말라리아는 아직도 가장 무서운 질병인데, 보건부 예산의 약 10퍼센트가 이 병의 퇴치에 사용되고 있다. 만약 말라리아가 퇴치된다면 인구는 수 연내에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말라리아 통제 프로그램은 전 인구의 58퍼센트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다행이 최근에 고로카의 연구소에서 말라리아 퇴치에 주효한 약을 개발했는 데, 그러나 임상실험을 거처 보급되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빈번히 발생하는 말라리아로 파푸아뉴기니는 세계에서 열대병 다발지역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집중 관심지역이다. 말라리아는 보통 지방오지를 여행할 경우 거의 걸리게 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고 있다. 각 지방에는 한 개씩의 병원센타가 있는 데 포트 모르스비, 고로카, 레 그리고 라바울에는 각 지방병원을 지원하는 종합병원이 있다. 각 지방에는 중앙병원 이외에 마을마다 치료소가 광범위하게 설치되어 있다. 중앙정부는 각 지방의 병원 센타를 중심으로 하위센타와 치료소를 통하여 질병의 퇴치에 역점을 두고 있다. 1985년 통계를 보면 병원센타는 190개, 하위센타는 269개, 크리닉이 23개, 치료소는 2천 231개, 종합병원은 19개나 있다. 또한 각 교회들도 보건과 의료의 지원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고로카에 있는 의료연구소와 파푸아뉴기니 대학교에 있는 의과대학에서는 질병과 보건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병원의 의사 수는 2천 459명이고 정부 보건부의 의료관계자는 4천 428명, 교회의료진이 1천 353명이다. 개인병원은 치료비가 매우 비싸나 국립병원은 50토야 약 400원만 내면 간단한 치료가 가능하다. 말라리아뿐만 아니라 폐렴은 사망률이 가장 높은 병이 될 뿐 아니라 병원입원 환자의 가장 많은 수가 폐렴 때문이다. 영향부족은 단백질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데 이러한 영양부족은 체내의 저항력을 약화시키며 이로써 말라리아나 폐렴 등의 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최근에는 성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보건당국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밖에 뱀에 물려 죽는 사람도 많으며 각종 기생충의 전염도 많다. 그러나 아직도 영아 사망률은 천 명당 72명인데 말라리아가 주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12. 아이를 가지고 싶어! 도시처녀 자궁 속은 깜깜하다 아스팔트에 쓰러진 시간 오래 매연, 나일론 공장의 굴뚝같다 만약 부시 자궁이라면 고향 미루나무 끝에 서성이다 별들 따라 훌쩍이다 사라지리. - 부시여행 11 - 하이? 박, 유 오라이! 몸살, 말라리아를 앓은 후 근 한 달만에 출근하니 가비가 가장 기뻐한다. 사무실에 함께 일하던 현지인 동료들도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나는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않아 가비와 이야기만 하다 가비와 함께 퇴근한다. 낮에 오늘밤 가비와 함께 작은 파티를 열기로 약속, 둘이 저녁을 먹기로 한 것이다. 가비와 나는 퇴근길에 곧바로 타운의 슈퍼마켓으로 간다. 가비, 지난번 정말로 고마웠어! 먹고 싶은 것 있니? 가비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아니, 좋아하는 것 사줄께. 다시 묻는 나를 가비는 바라볼 뿐 말이 없다. 이 목걸이는 어때? 참 아름답다. 내가 조개로 만든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걸어주며 웃자, 가비는 나의 볼에 키스를 한다. 여기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상관없어! 박,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조개목걸이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 왜, 무슨의미가 있어? 이 목걸이 정말 나에게 주는거야! 아름답다. 그래, 내가 가비에게 주는거야! 나는 하일랜드 감자, 호주산 돼지고기와 양파 그리고 쌀 1킬로그램, 뉴질랜드산 사과와 아이스크림 한 통, 자유중국에서 수입한 간장과 캔에 넣은 다진 마늘과 이태리산 포도주 한 병, 파푸아뉴기니 하일랜드에서 생산되어 비행기로 수송된 중국배추와 목걸이를 계산한다. 가비와 화이트 만인 내가 먹거리를 손에 손에 들고 5번 버스에 타자 부아이를 씹던 일을 멈추고 나를 본다. 한동안 조용하더니 뒷좌석에 앉아있던 여자아이들이 웃는다. 가비와 나는 아무말 없이 묵묵히 차가 멈추길 기다린다. 차에서 내리자 그제야 가비가 말문을 연다. 박,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니? 음, 6개월쯤 후. 서울도 런던과 비슷하겠지? 그래, 난 런던에는 가 보지 않았지만 도쿄에 가봤는 데 그곳과 비슷해. 서울에 한 번 가고 싶어. 도시는 사람 살 곳이 못돼! 왜? 런던은 어땠니, 사람에 치고 차에 치고 매연에 시달리고 ... 좋은 곳만은 아니야. 아파트 정문을 지키는 삐삐가 리모콘으로 문을 연다. 나와 가비는 재빠르게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리고 시장봐온 것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아이스크림을 티테이블로 가져가자 가비가 나의 옆에 앉는다. 박, 나 좋아해? 가비는 나에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키스를 하려한다. 미 오라이! 나 배고픈 데 가비는? 조개목걸이는 청혼을 의미해! ...... 이렇게 시작된 가비와 함께 한 파티는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난다. 가비는 여기 나의 침대에, 그리고 나는 거실의 소파에 자는 게 ... 박, 난 너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1??? ... 놀라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서울에 함께 가? 나의 머리는 순간적으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린다. 비는 점점 늦가을 장대비로 변하여 먼동이 틀 때까지 내린다. 가비, 지난 밤은 미안해! 지금 출근시간이야! 평소때보다 일찍 출근한다. 사무실에 오니 7시 35분이다. 나는 가비와 헤어지면서 신문을 읽으며 8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가비는 오후에 다시 만날 것을 말하지만 바쁘다며 나는 거절한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여기는 미스타 박입니다. 박xx씨, 나 선녀! 여기 잭슨 공항에 막 도착... 어디? 잭슨! 호주 통계국에서 사온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는 데 선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차에 선녀의 목소리는 정말 반갑다. 그런데 잭슨 공항이라니! 그러면 선녀가 지금 파푸아뉴기니에 왔다는 것인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달려간다. 뜻밖에 선녀가 파푸아뉴기니로 날아와 나는 놀랐지만 무척 반갑다. 선녀, 선녀, 정말 내 앞에 온거야! 선녀와 나는 가슴을 맞대고 두 팔로 서로의 허리를 꽁꽁 묵었다. 화이트 만메리가 하는 뜨거운 포옹을 맨발의 현지인들이 우리 둘 보다 더욱 뜨겁게 바라본다. 선녀는 그 동안 더욱 야위어져 있다. 눈가의 선명한 주름살이 나를 더욱 가슴아프게 한다. 2년이 채 못되는 그 동안의 세월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선녀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처럼 얼굴도 옷차림새도 변해있다. 선녀는 정기휴가 2주를 받아 쟈카르타에서 단숨에 날아 온 것이다. 그 즈음 다른 동료들이 휴가기간 동안 인접국 여행으로 인도 호주 중국 등을 여행한다는 소식을 듣곤 하였다. 나의 아파트로 돌아온 우리는 그 동안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로 밤을 밝히기 시작한다. 인도네시아는 13,6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또 여기에 섬의 수만큼이나 문화와 언어 그리고 생활방식이 다양한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흡사한 것도 있다는 이야기에서 어느 나라에나 있는 사소한 바가지 요금으로 다툰 이야기까지 한다. 그러한 무수한 이야기들 속에 결론은 동료를 만날 수 있는 날, 한국인을 먼발치에서 본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웠다는 것이다. 다음날 나도 3주간의 정기휴가를 내고 선녀와 함께 가까운 바다나 바리라타 국립공원, 아니면 수영장에라도 조심조심 다녀올 계획을 세운다. 아파트 철창 안에서 탈출, 짧은 휴가를 즐기고 싶다. 선녀가 낸 용기의 절반만 가지면 파푸아뉴기니 어디든지 가고도 남는 것이다. 나는 주말동안 영국친구로부터 차를 빌리기로 하고 시내에서 4킬로쯤의 거리에 있는 블랙비취에서 주말을 함께 보낼 계획을 세운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국에서 온 유엔볼런티어가 싱가폴 여자친구와 블랙비취에 다녀오다 떼강도를 만난 이야기를 들었지만 말로만 들어온 그 바닷가에 가보고 싶다. 그같은 위험은 언제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었고, 또 연인들이 마음놓고 나다닐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밤으로 아파트 철창 안에 갇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유엔봉사자의 여자친구는 이마에 다섯 바늘 뀌매는 사고로 거치고 집단강간을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지만 ...... 어때, 함께 갈 마음 있습니까? 검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해안이지요. 나의 말을 선녀는 말없이 듣고만 있다. 아니 가기 싫으면 ...... 수영장은 어때 ... 먼저 시장이나 봐오지요 뭐- 침묵만 지키고 있던 선녀가 말문을 열었을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난다. 거기 누구세요? 나는 토요일 이른 아침에 누구일까 생각하며 문으로 다가간다. 가비! 나 여기 ... 피진어가 날아든다. 하이? 가비,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비가 거실로 들어선다. 가비, 여긴 내 친구 선녀. 그리고 여긴 가비라고 ... 나는 선녀와 가비를 인사시킨다. 가비는 선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피진어로 나와 선녀가 어떤 사이인지 묻기 시작한다. 나의 동료야! 인도네시아에서 이틀 전에 여기 왔어. 다음주에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거야. 나는 가비와 선녀에게 냉장고의 콜라를 꺼내 컵에 따라 내민다. 그런데 가비와 선녀 둘 모두 컵만 바라볼 뿐이다. 가비는 한 달 전쯤 만났어요. 이번이 두 번째로 ... 선녀가 피식 웃다.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가비가 선녀에게 영어로 직접 묻기 시작한다. 미스타 박의 여자친구니? 아니 ... 그럼 여기 왜 왔어... 난 미스타 박의 친구로 ... 박은 어제 나에게 조개목걸이를 주었고, 그 목걸이는 ... 정말인가요? 아니, 어제 ... 지난번 말라리아 ... 고맙다고 선물... 선녀가 나의 말을 가로챈다. 알겠어요! 그만두어요! 이제 ... 선녀는 다시 나에게 얼굴을 붉히며 묻는다. 박xx씨,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군가요!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이게 내가 여기까지 온데 대한 선물인가요? 선녀는 울먹이며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선녀는 문을 나선다. 여긴 인도네시아가 아니야! 가도 내일 아침에나 갈 수 있어! 여자들에게는 직감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선녀와 가비는 만나는 순간 직감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신경전을 벌인 것인가. 이제 나에게는 선녀도 떠나가고 가비도 없다. 엘라비취 언덕을 넘어오는 바닷바람만이 나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 뿐이다. 먼바다에 정박중인 배에서 나오는 불빛이 가물거린다. 선녀의 그 당황스런 얼굴이, 국내훈련기간 동안 함께 했던 자리들이 가물거린다.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는 선녀를 따라 공항까지 갈 때만 해도 선녀가 믿어주길 바라지만. 자신의 활동임지로 돌아가겠다는 선녀가 야속하기까지 하다. 잘사세요! 선녀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 한마디 ...... 그즈음 정기 건강점진을 받기 위해 파푸아뉴기니 한국청년 해외봉사단원 동료들이 함께 모이면 누구 누구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탈수기에 강아지를 ... 우리는 정신병원에서 이 머리를 검사해야지 ...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오지에 사는 동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로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폐쇄공포증, 고립감과 고독이 도시인을 환자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하철문화에 적응해 살 수 있는 방법을 교육을 받아온 도시인이 부시의 부시에서 오랫동안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나 역시 부시의 도시에 살지만 제정신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물음을 가진 적이 있다. 지금 나와 선녀는 제정신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가비는 나무꾼과 선녀를 이렇게 무무(Mumu)로 만들어 먹고 말은 것이다. 무무는 파푸아뉴기니의 별미다. 원래 이 무무는 고산지대에서 즐겨 먹었는 데 지금은 어디서든지 특별한 손님이 오든지 행사가 있을 때에 만들어 먹는다. 무무를 만드는 방법은 옛날 우리가 감자를 달군 돌무덤 속에 익혀 먹는 것과 비슷했다. 먼저 1-1.5미터 가량의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장작불을 지펴 주먹 크기 만한 돌을 달구어 낸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타피오카, 옥수수, 바나나, 아이비카, 고구마, 양고기, 닭, 돼지고기 등을 한 켜씩 섞어 놓는다. 또 그 위에 지방질이 많은 코코넛 과육즙을 부어서 바나나 잎으로 여려 겹 봉하여 돌을 달구어낸 구덩이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잘 달구어진 주먹만한 돌을 얹은 다음 흙으로 봉한다. 이러한 작업이 끝나면 함께 모인 사람들은 구덩이에 넣은 음식물들이 익을 때까지 4-5시간 맥주를 마시며 여러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기다린다. 비로소 한나절이 지난 후 구덩이에 넣은 음식물을 꺼내어 뷔페식으로 먹는다. 이 무무는 코코넛기름 때문에 고기도 연하고 담백하여 그 맛이 일품으로 모두들 그 맛을 즐기며 하루해를 마감한다. 퇴근 후에 문화와 경제에 관한 자료를 읽고 메모를 하며 선녀와의 이별 이후의 시간을 달랜다. 낮에는 근무시간 내내 파푸아뉴기니 데이터 베이스에서 농업정책 수립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거나 아니면 시장조사를 나가곤 한다. 컴퓨터와 씨름하는 날은 퇴근하면 두통을 느끼곤 한다. 그런 한편 나는 돌도끼에서 컴퓨터까지 가며 오며 현대 속 부시로 성큼성큼 보다 깊숙이 발을 옮겨 놓는다. 문화여행이랄까 아니면 시간여행이랄까, 아무튼 현대문명에서 출발하여 석기시대 부시로 떠나는 여정동안 나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삶과 견줄 수 있을 만큼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나의 이런 여행을 당신들은 결코 해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문명의 거대한 늪에 빠져 남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말에 서울 근교의 가까운 인수봉이나 지리산에 조차 떠나지 못하고 있잖은가. 이러한 말에 허튼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속물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 지난여름에는 경포대를 다녀왔고 다음 주말에는 밤 열차를 타고 부산의 해운대 겨울 해변을 홀로 걸어 보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겨울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향기 그윽한 한 잔의 커피도 마시리라고 다짐하며 나의 사랑 막줄리아의 전화번호를 생각해 볼지도 모를 일이다. 아서라 천만의 말씀, 당신은 다음 주가 지나가고 그 다음 주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북한산이며 겨울바다로 떠나지 못한다.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신의 저주다. 여행에서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늙고 병들어 죽는다. 다만 스무 살의 나이라고 젊다거나 청춘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기사 요즘은 삼삼오오 떼지어 휘파람 불며 이곳저곳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 ......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일상으로부터 훌쩍 떠나지 못하는 그런 당신을 위하여 5년 전의 지나간 이야기를 한 토막 하려한다. 신간센을 잘못 탄 것이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 오사카를 가기 위해 고속열차에 무거운 배낭과 함께 몸을 실었다. 그런데 그날 밤 10시가 넘어서야 계획에 없는 어느 낮선 도시, 그 열차의 종착역에 내리게 되었다. 지도를 펼쳐 보니 오사카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였다. 곧바로 공중전화로 달려가 유스 호스텔을 확인했다. 이미 방은 여행자들로 만원이라며 상냥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하룻밤을 자야 하는데 호주머니의 여행경비로는 여관이나 여인숙조차 꿈꿀 수 없었다. 50만원이 채 못되는 여비와 사전 두 권 여기에다 한 달 간 여행에 필요한 초소한의 것들만 준비해 갔었기 때문이었다. 20분 이상의 입국심사 끝에 계획대로 30일 비자를 받았는데 여관에서 하루 이틀 자고 나면 일주일도 못 견딜 판이었다. 싸구려 숙소를 찾아 뒷골목을 얼마쯤 돌고 나니 배낭이 얼마나 무거운지 어깨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벌써 부산에서 시모노세끼를 통해 난생 처음 남의 나라 땅에 발을 디딘지 4일째 였고 일본말을 전혀 못하여 이만저만한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낯모른 밤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아차! 서울역 대합실을 생각 못했구나. 언젠가 본 역구내를 하룻밤의 안식처로 삼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다시 지도를 펼쳐 처음 내린 곳을 찾았다. 역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하룻밤 묵을 만한 곳을 물었더니 서너 평쯤 되는 곳에 거지들이 움끼리고 있는 곳을 안내해 주었다. 새벽 1시가 넘었는데 문딩이들이 커피를 마시며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배낭에 비스듬히 기대어 그들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머리는 남은 여행에 대한 두려움 반 설레임 반, 혹시 저 거지들이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생각들로 가득 찼다. 그때 이런 고생을 왜 스스로 불러 일어 켰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여행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여행이라 하면 주된 생활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일이나 산천구경을 목적으로 떠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장사꾼들은 여행이라 하면 관광을 목적으로 한 공간적 이동을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단순히 산이나 강가에 가서 배불리 먹고 노래하며 춤추는, 또는 동남아시아 같은데 가서 싸구려 오입이라도 즐기는 것이 여행이라고 떠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단체관광 여행꾼들을 모집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행의 참뜻은 그러한 류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떠날 자유, 공간적 이동뿐만 아니라 시간과 일상으로부터 떠남의 자유를 의무이자 특권으로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여행이란 하나님의 선물의 참뜻을 잊고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여행을 일상으로부터 탈출이라며 그 여정에서 일탈의 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소박한 행위라고 시로써 노래하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오늘에서 내일로 떠나는 삶의 여정을 여행이라 말하지 않고 또 느끼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늘 고통스러운 나날이다. 소위 경제대국의 자랑스런 시민이라는 사람들이 1년 혹은 수년동안 부시 사람들 속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란 것도 있다. 탐구여행은 국민학생이나 아니면 선생들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떠남은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는 이는 떠나지 못하며 평생 남이 쓴 여행기나 읽으며 살아 갈 것이다. 용기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웅덩이의 고인 물과 같이 냄새를 내며 동내방네 목소리를 높이고 다닌다. 물은 흘러서 강으로 가고 다시 바다에 모여 하늘로 올라가 산과 들로 돌고 돌아야 물이 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은 물의 존재의미를 한 층 높이고 있지 않는가. 이와 같이 인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떠날 자유를 포기하는, 아니 이미 잃어버린 사람들은 웅덩이의 고인 물에서 자라는 말라리아(학질) 모기 같은 벌레보다 무서운 질병을 유포하며 나 자신 또한 앓고 있다. 총체적 부정부패라나 불감증 시상이라나! 떠남을 위해선 그다지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옷 한 벌,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아무 책이나 두 권쯤을 넣고 갈 수 있는 배낭 하나면 족하다. 떠날 땐 깊은 첫 키스의 여인을 버리고 훌쩍 떠나는 남자, 어느 뒷골목에서 피우다 진물이 빠진 사랑의 꽁초를 팽개치듯 일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하룻밤 풋사랑의 여인을 뒤로하며 돌아오는 데도 조금의 미련이 있겠고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여행이라 생각이 될지라도 떠나고 보는 것이다. 지리산에 1박 2일 가고 싶지만 그 시간에 영어단어 수학공식 하나 더 외우기 위해, 한 두 푼의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발목 잡히는 조무래기야 커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내놓아라 하는 권좌에 않은 사람이 쇠고리를 차거나 총알에 배창자 구멍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더러 그 반대의 사람도 있지만 그는 그들에 희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시간여행이니 역사여행이니 문화여행이니 하는 좀은 거창하게 들리는 단어들일랑 집어치우고 그저 홀가분하게 발 닿는 대로 어디든 떠나는 것이다. 단지 일상으로부터 떠난 길이 힘들고 고달플 때 한 번쯤 떠날 자유와 같이 일류 시인이나 철학자들의 전용물 같은 말들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생각이 횡설수설이라면 죽일기가 어쩔기가! 13. 총각김치 있다면 처녀김치 왜 없노! 기쁨과 슬픔 모두 함께 하며 살고파 스치는 풀잎소리, 별밤을 헤아려도 지지리 못난 삶이기에 내 마음 열 길 없어라 당신의 여윈 가슴 고독같이 아리어도 해맑은 얼굴은 꽃잎으로 눈부시다 세월은 덧없이 흐를 수록 더없이 서리는 애련 날밤으로 빛나는 별빛 같은 그 대 바람불면 꽃잎 하나에도 그대가 아른거려 내일은 그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섭리의 축복으로 만세전 예정된 마주선 그대와 나 각시와 신랑이라면 이젤랑 애련의 그대와 하나됨을 주소서 건기가 4개월 째 접어들면서 나의 가슴도 사바나 언덕의 풀잎처럼 검붉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이어 검붉게 변한 사바나 언덕에는 불이 나고 검게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철창문 사이로 달빛에 환한 검붉게 타 덜어 가는 사바나의 언덕과 그 언덕 아래 밤바다를 내려다보면 어김없이 선녀와 가비가 나타나고 또 어머니와 김치가 나타난다. 여기서 선녀는 고독이요 어머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며 김치는 사바나 언덕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 어떤 날 밤은 어머니며 선녀보다 김치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게 하곤 한다. 冬김치만 김치냐 神김치도 김치다 神김치가 김치냐 辛김치가 김치지 총각김치 있다면 처녀김치 왜없노 열무김치 깍두기 한가지로 김친가 밭두렁콩 콩이요 논두렁팥 팥인데 서울사람 콩팥도 한가지로 콩이라 누른안경 봉사지 봉사자가 봉사가 自知라면 晩知요 補知라면 早知라 히로시마 원자탄 타산지석 補知야 서울사람 국제화 공장김치 못따라 반도남한 세계화 팩김치가 최고니 반도이북 생존권 핵무기가 최고라 남남북녀 사랑에 총각김치 최고여. 아마도 머잖아 우리 어머니들이 담근 김치가 우리의 소원, 지구촌 식탁을 통일하리라. 나의 이러한 믿음은 그 즈음 영국과 뉴질랜드 볼런티어 친구들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부터다. 한 달 전쯤 부시워킹(Bush Walking)을 하면서 김치와 생선회를 준비해 갔는데 이때 김치맛을 본 친구들이 만나면 김치-김치- 하더니 결국은 주말에 김치 담그는 방법을 배우겠다며 나선 것이었다. 사실 내가 먹기는 잘해도 만들지 못하는 게 바로 김치다. 파푸아뉴기니에 2년 가까이 살면서 직접 김치를 담아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김치 생각나면 아이스크림통 하나 들고 수녀님이나 대사관 사모님들께 찾아간다. 그래서 친구들에께 강의에 앞서 내가 먼저 강의를 받아야 할 형편이었다. 김치 담글 수 있느냐는 물음을 받을 때마다 당당하게 큰소리 쳐 놓은 죄가 있기에 이제 와서 모른다고 딱 잡아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요리사가 아닌 다음에야 사내가 김치 담근다는 게 말이 쉽지 직접 배추를 소금에 알맞게 절인다는 것이 어찌 가능한 일인가. 결국 나는 볼런티어 친구들에게 김치가 아닌 생선회 뜨는 법을 알려주었다. 우리의 사물놀이를 배우고 단군 할아버지를 새삼스럽게 들먹인 다음 한국청년 해외봉사단원으로서 파푸아뉴기니에 왔는데 말이다. 김치와 불고기는 한국 음식의 대명사란 것을 적도를 넘어와서야 알았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서울 하우스》에서 김치와 불고기를 한 두 번 맛본 서양 사람들은 일본.중국.인도.스페인 등의 음식보다 세배이상 비싼 한국음식을 다시 찾았다. 이곳 현지인들도 처음 김치를 먹을 때 매운맛에 눈물을 흘린 만큼 다시금 먹고 싶어 했다. 김치를 처음 맛본 사람 중 열에 일곱은 한국사람도 그렇게 맵냐고 물으며 어떻게 김치를 먹을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서울 하우스에서 PNG의 장관도 자기 돈주고는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김치를 한국사람과 함께 식당에 가면 좀 싸게 마음껏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그들 생각을 알고나면 괜히 한국사람인 나도 김치는 맘대로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아니라고 큰소리 치곤 했다. 지난 광복절 날 총각김치를 먹는 행운(?)을 가졌었다. 통무우는 둘 혹은 네 조각으로 나뉘어졌지만, 작달막한 무우청이 두세 가닥 달려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한국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총각김치 그대로 였다. 사실 무우가 자란 밭만 적도의 뉴기니섬이지 씨앗을 서울에서 가져왔고 또 씨를 뿌려 가꾸고 김치를 담근 사람도 우리의 한국인이라 맛 또한 말 그대로 둘이 먹다 하나가 자리를 떠도 모를 지경이었다. 과부가 어쩌다 터벅머리 총각을 만나 이웃집 기둥뿌리까지 들석이며 먹는 맛갈난 소리, 세상모르고 세번 식이나 밥그릇을 비웠다. 젊은 총각이라며 한 그릇 가득 담긴 밥그릇이었지만, 육백 일이 넘게 구경조차 못한 터에 열살 배기 사내아이 오줌줄기만 보고서도 잠 못 이루는 밤을 얼마나 울며불며 지새던 시간이던가 고작 3회전으로 만족하다니 ... 나이 서른이 넘은 노총각이지만 각시될 사람, 볼따귀와 눈탱시가 예쁜 낭자를 만나기보다는 열무김치를 먹고 싶다. 찹쌀 풀을 쑤어 담근 열무김치 한 사발 먹을 수 있다면 이곳 사바나 언덕에서 평생 혼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에 점심으로 고구마와 함께 먹곤 했던 동김치보다는 보리밥에 풋고추를 생된장에 찍어 입에 넣고 열무김치 국을 훌-훌- 소리내며 먹고 싶다. 살얼음이 언 동김치의 무우조각을 씹는 맛보다는 열무김치 국을 이 사바나 언덕에서 소리내어 마시고 싶다. 에라! 무슨 타령이냐? 깍두기도 구경 못하면서 동김치니 열무김치니 하며 입맛을 다신다고 김치가 낙하산이라도 타고 내려올 리 있나.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꿈꾸는 어리석은 인간인 주제에! 남자의 반은 바람이라 더니 마파람에 봄바람 물바람 치마바람 춤바람이 봉바람 사바람을 불러 걸신들린 사람처럼 바람 되게 일으키네. 서울 1994년,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도인 앞에 토끼타령인들 어떠하리. 신세타령이 아닌 다음에야 바보 천치 등신 축구인들 김치타령 못하란 법 있나. 활활 타는 열대의 밤에 하얀 거품을 입에 물고 새까만 재가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타령이라도 멋들어지게 해야 신새벽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군! 내 사랑, 김치는 그래도 내가 제정신으로 하는 생각이다. 비가 더욱 그리워 지면서 파푸아뉴기니에 사는 한국사람 가운데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처럼 나 역시 상념은 또 다른 상념을 불러 일으켜 더욱 깊은 고독 속으로 추락한다. 18-9세기의 지구 사회의 인간생활은 자본주의 열강의 사냥터의 싸움이었다. 약육강식에 의한 쫓고 쫓기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사회였다. 서구 몇몇 나라는 산업혁명을 통하여 얼마간의 기술과 자본축적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 각지로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 가까운 이웃에서 바다 건너 먼 곳까지 힘이 뻗치는 곳이면 어디에나 칼과 총질을 내둘려 정원을 넓혀갔다. 그러나 1917년 제정러시아가 소비에트 러시아로 건국하면서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시작되고 자본주의 열강은 더 이상 제맘대로 정원을 넓혀갈 수 만은 없게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소비에트 러시아를 또 다른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이렇게 분활 그리고 통합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동구를 중심으로 공산권 세력을, 미국은 그 밖의 지역에서 자본주의 세력을 넓혀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되고 북은 소련 남은 미국의 세력권 안에 놓이고 남과 북은 각각 이들 두 체제의 옷을 달리 입게 되었다. 남한은 근대국가에서 현대국가로 넘어오는 가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 지원은 남한이 미국의 국경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변방에 위치한 남한에 대하여 군사적 원조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까지 이식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를 입은 국가들은 무역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결속과 함께 경제발전을 도모하였다. 무역은 시장개념을 도입한 것으로써 공산국가에 비하면 얼마간의 성공을 거두게 됐었다. 여기에서도 남한은 일본 식민지와 내전의 아픔을 씻어가며 후진국들이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소비에트 러시아의 등장이 있었기 때문에 해방과 함께 약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숨가쁜 경제성장은 자본주의 세계의 모범으로 미국은 적당하게 공산주의 국가에 선전 광고하게 되었다. 이는 바로 88올림픽 개최로 동구권이 대거 참가하게 이르렀다. 소련을 비롯 중국 동유럽 공산국가는 서울 올림픽을 통하여 자신들이 입고 있는 체제를 벗고 새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물증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급기야 1989년부터 종주국 소련의 묵인하에 동유럽은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흐름은 가속이 붙어 종주국 마져 자본주의 옷을 갈아입는데 앞뒤를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북한 마져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게 되었지만 체제의 혼돈은 여전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지원하에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나일론 옷을 전보다 수월하게 시장에서 골라 입게 될 것이다. 중국이 가장 빠르게 무기공장을 나일론 생산공장으로 교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자본주의 국가는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시장개념을 도입하는 동안 이른바 경제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는 최전선의 전투에 유형무형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방식이다. 이는 지역별 블록화 하는 추세에 있는 오늘날의 세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선진국의 경제전쟁은 무역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따라서 이들 정부는 분쟁해결을 위하여 이념과 종교와 국가를 초월하여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중심의 공동체 결속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날의 공산주의 국가들 모두가 시장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시기까지 지속될 것이다. 2000년까지 이러한 두 진행은 계속, 시장원리는 더 이상 세계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또 다른 혼란이 발생 할 것이다. 미국과 같은 부의 안정, 미국과 같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아프리카의 르완다와 같은 참상이 공존하면서 세계의 불균형은 여전히 남께 될 것이다. 따라서 잘 살든 못 살든 모두가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면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하여 전쟁과 같은 물리적인 힘을 쏟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세계통일 국가건설을 서슴없이 내건 종교집단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2000년대에 도래하게 될, 동서의 대립질서의 와해 이후에 올 새질서는 어떤 형태로 또 무엇이 세계인류의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될까? 세계역사에서 우리는 이념과 종교가 갈등 투쟁하면서 문화를 달리해 왔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념이나 종교보다도 경제력이 우위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최소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아서 말이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의 경제력에 역사의 뒤로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도 경제력을 축적하면서 무수한 잡음으로 종교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결국 문화의 이질성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갈등으로 역사는 다시 한바탕 피바다를 이루겠지만 이는 역사에 바탕을 두면 앞으로의 세계도 당분간 종교와 경제이념(활동)이 혼합된 종교집단 혹은 경제집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 둘의 양면성을 가진 흐름 속에 세계통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2차 대전에서 죽은 생명의 숫자만큼 소비하게 될 것이다. 세계통일 국가를 위해 지불할 현금은 인간의 생명이 될 것이다. 세계통일의 기치를 내건 종교집단 혹은 경제집단이 이미 종교+경제로서 전위적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한반도를 성지, 즉 세계통일 국가의 수도로 건설할 준비에 이미 들어갔다. 물론 인적자원도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발전시켜 세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실천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구상에 이와 같은 집단은 곳곳에서 꿈꾸고 있다. 이들 집단이 통합하는 과정에 피는 물보다 진하지 못하게 되는 점에 우려를 낳는다. 한반도에 비가 내릴지 꽃이 만발할지는 피와 물의 질량에 의하여 결정되어질 것으로 보인다. 14. Mi Save와 Mi no Save 팔백여 언어에다 일 천여 부족이란다 금 은 동 석유 가스 돌도끼에 인공위성까지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땅 파푸아 뉴기니 - 예측할 수 없는 땅 -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하나의 세계정부 건설!이란 믿음 속에 오늘날의 강대국가에 메시지를 보내는 게 함께 잘 사는 지구촌 건설이란 검은 바탕에 굵직한 흰 글씨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내용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또는 돈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따라 합법 비합법으로 덮어놓고 양분하는 것은 어딘가 모순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학사 박사 육사 의사 등등의 사자들과 여기에 봉사奉仕까지 더한 이런저런 死者들이 이야기하면 검은깨도 흰깨가 되는 세상의 눈으로 우주의 현상을 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면 기술문명 조직문화 속에서 나눔과 섬김이란 외침이 이상한 문화(Bizarre Cult)가 아닐는지? 한마디로 겨떡을 개떡으로 만드는 이는 누구인가. 그럼 여기서 개떡과 겨떡 이야기를 잠깐이나마 하고 다시 부시 워킹을 계속 떠날까 한다. 돈보스코에서 바바로코의 새 학교로 낮 동안 이삿짐을 나른 뒤라 얼굴이 확확 그렸지만 새로운 방에서 첫날밤에 이야기는 깊어만 갔다. 개떡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개떡이 뭣이다요! 보리겨떡이라면 모를까. 나의 응수에 발비라 수녀님이 다시 보리겨떡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개떡과 겨떡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방금 수녀님이 말씀하신 <개떡>은 지금 굽고 있는 빵이 맛있게 구워지기를, 또 혹시나 피엔지PNG에서 처음으로 실력을 발휘하는 빵이 잘못될까 하는 등등의 희망과 겸손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원래 개떡은 보리겨떡을 말하지요. 밀찌울.소나무껍질인 송구.칡뿌리 등으로 생명을 부지하며 보리고개를 넘던 시절이 있었지요. 언덕 핏기 잃은 찔레꽃은 더욱 새하얀 얼굴로 하늘을 향하여 아우성 치고 송화가루가 빈 장독뚜껑에 소복이 싸여갈 때 채 익지도 않은 풋보리를 베어다 마을 앞 디딜방아에 보리껍질을 쿵더쿵 쿵더쿵 벗기곤 했었지요. 이때 처음에 나오는 거친 왕겨는 돼지의 사료로, 좀 부드러운 속겨는 다시 썩혀 떡을 만들어 사람이 먹었답니다. 마치 개에게나 던져줄 개떡인 보리겨떡을 사람이 먹고 굶어죽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겨떡이 개떡으로 불렸지요. 돌이켜 보면 보리고개 시절에 겨떡은 이렇게 인간의 생명을 구원한 살림의 떡이요 역사의 밥이지 않았습니까. 요즘도 종종 <개떡같다>란 말을 듣곤 합니다. 이 말 속에는 질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개에게나 던져줄 음식을 만들었다던가, 뭐가 밸별 꼬여가고 뒤틀어져 가는 상황의 비꼼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개.돼지나 먹을 보릿겨를 가지고 사람이 먹을 떡을 만들어 죽음을 뛰어 넘어도 모자랄 판에 인간이 먹을 향기로운 쌀을 가지고 개에게나 던져 줄 떡을 만든다면 이게 바로 <개떡 시상>이지 뭡니까. 남북한 모두가 힘을 합하여 잘 살아 보세에 힘을 쏟아도 넘어야 할 고비가 고개고개 가로놓여 있는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형제끼리 총질로 서로 죽이려 날밤을 깐다면 또 이게 바로 <개떡 나라>가 아닌가요. 노다지로 나는 자원을 개에게 던져주고 그 개똥을 사다 먹는 자가 또 <개떡같은 사람>이지요. 이러한 나의 개떡론에 스텔라 수녀가 자신에게 겨떡인지 개떡인지 하여간 떡타령이 옮겨 붙을까 두려웠는지 오늘밤은 한 지붕 밑에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밤이 깊었고 또 여자들만 잠을 자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함께 잘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나는 얼쑤좋다 미소를 지으며 내뱉었다. 기가? 나의 이야기를 쑥떡 같다던 마당 보이 미스타 권이 큰 소리로 되받았다. 기다! 난생 처음으로 수녀님들과 나흘 밤을 보냈다. 설걷이는 내가 도맡아 했지만 여자의 손길이 가야 향기와 모양새가 나는 일은 발비라 수녀님이 도맡았다. 십자가와 열두 제자의 상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 나는 망치를 힘있게 두드렸다. 집주위의 꽃나무를 심기 위하여 내가 구덩이를 파면 수녀님은 물을 나르고, 밤에 자는 데 개가 목청을 높여 경계비상을 걸면 내가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숙소 주위를 살펴보았다. (한 날 밤에 실제 비상이 걸렸을 때는 경비원과 다섯 마리의 개, 순찰 중이든 경찰이 총으로 무장한 라스칼을 물리쳤는데 이때 나는 2마일 언덕에서 세상 모르고 잠만 자고 있었다.)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꿈만 같은 나흘간의 시간이었다. 나는 주말에 다시 수녀원을 찾아갈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 왜냐면 강한 남자, 코리아 보이가 지키는 숙소에 라스칼이 결코 침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수녀님들의 믿음에서다. 치마만 두르면 모두가 여자라고 덤비는 떼강도는 정말 개떡같은 사람이다. 이같이 밥 팔아 똥 사 먹는 개떡같은 나라가 지상 어디에 또 있을꼬. 그런데 옛말로 등잔불 밑이 어둡고, 요즘 말로는 형광등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개떡이 겨떡이 된 것인지, 아니면 겨떡이 개떡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이 내가 그만 떡방아를 찢고 ... 마른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지르던 날이었다. Hi? Park, (영어 : 안녕? 박,) Yu orait? (피진어 : 너 괜찮아?) Mi orait! (피진어 : 나 좋아!) Okay! (영어 : 됐어!) Mi laikim tupela Buai na wanpela Daka. (피진어 : 나 부아이 두개와 다카 하나를 좋아해.) Yu have em? (영어와 피진어 : 너 가지고 있니?) Mi no Save na no gat Daka. (피진어 : 난 몰라. 그리고 다카를 가지고 있지 않아.) O-, Don't tell a lie! (영어 : 오-, 거짓말 말어!) You have a Mau Banana, ya! (영어와 피진어 : 넌 마우 바나나 하나 가지고 있잖아!) Mi gat gutpela Kekeni bilong mi! (영어와 피진어 그리고 모투어 : 나는 질병이 없어 좋아!) 하니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때는 그녀의 말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었다. 영어와 피진어 거기에다 모투어까지 섞어 말하는 그녀가 단지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곳 하일랜드의 고로카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집으로 초대했다. 하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의 뒤를 따라왔다. 그런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빨리 언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며 말을 많이 듣고 또 해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듣기에 언어는 이불 밑에서 배우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지만 퀑되신 닭이라고 ... 그런데 하니는 나를 화이트만 남자로써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마우 바나나 껍질을 벗기듯이 나의 정염을 통제하는 이성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마우 바나나는 삶거나 구워먹는 쿠킹 바나나와 달리 껍질만 벗기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마우 바나나와 쿠킹 바나나를 구별 못하는지 껍질을 거의 벗길 때까지 여기저기를 확인했다. 심지어는 꼬집어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나의 마우 바나나는 실날같이 남은 마지막 하나 남은 껍질을 남겨두고 극도의 긴장으로 만지면 딱- 소리를 내면서 부러질 것 같았다. 너는 남자친구 없니? 으으음- No! 하니가 대답으로 무슨 말인가 했다. 드디어 그녀는 마지막 껍질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달콤한 것일수록 두고두고 보아가며 먹는다더니 그녀는 냉큼 바나나를 입에 넣고 돌려가며 깨물거나 씹지를 않았다. 아니 입술에 조차 갖다대지도 않았다. 단지 그녀는 두 손으로 바나나를 꼭 잡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바라보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만약 그때 그녀의 친구가 있었다면 그녀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는 바나나를 자랑했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배고파서 먹으려는 바나나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먹는 즐거움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먹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향기와 맛까지 느끼며 먹고자 했음이 분명했다. 언젠가 한국의 농촌진흥청에서는 향기 나는 쌀을 개발하였다,고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의 현대인들은 절대적 빈곤 속에 배를 불리기 위해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칼로리를 생각하고 맛과 향기를 찾아서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어 향기 나는 쌀을 연구, 생산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니는 바나나를 입에 가져갔다. 나는 이미 이성理性이라는 바지를 벗겨버린지도 알 수 없었다. Yu gat Condom, ya? 하니가 말했다. 콘돔이라니? 그제야 나는 처음 만날 때 그녀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카는 마우 바나나와 같이 남자의 심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개의 부아이는 불알, 다카는 자지 그리고 감반은 여자의 그것을 말했다. 한편 캐캐니는 모투어로 여자 또는 문장에 따라서 여자의 샘을 말한다는 것을 추리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유 오라이? 하고 묻는 말에 미 오라이! 하고 대답한 것은 큰 실수였다. 여자가 유 오라이 하고 물을 때는 파인!(Fine!), 기분 좋다며 가볍게 응수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사라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너와 함께 잠을 잘 수 있어! 라는 말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인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 사이에는 서로 <유 오라이?>하고 물으면 <미 오라이!>이라고 대답하는 게 무난하다는 것을 그날 그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겨떡인지 개떡인지를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 먹고 만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부시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찾고자 하던 부시가 그제서야 만나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겨떡인지 개떡인지 내가 먹은 것이 떡임에는 분명했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대로 아직 좀 더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자유의지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나의 떡타령이 자신에게 현실로 일어나리라고는 그래도 미련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나는 오래 전부터 갈망해 왔었는 지도 모른다. 내가 남들 앞에서 생각하고 말하여 왔던 것이 모두 거짓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의 삶 자체가 모두 모순덩이로 뭉쳐진 하나의 결정체였을까? 여기서 굳이 카뮈의 시대의식과 역사의식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순덩이로 가득한 삶, 자살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 누군가 선녀와 나무꾼 사이의 사랑은 옛날과 같이 나무꾼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요즘엔 모든 게 선녀맘이라! 단 한가지 구원의 길은 선녀가 나를 버리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피진어로 하우스 페이파(Haus Peipa : 사무소), 하우스 씩(Haus Sik : 병원), 하우스 모니(Haus Moni : 은행), 하우스 드링(Haus Dring : 호텔), 하우스 쿵(Haus Kuk : 부엌) 등으로 표현되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부시 사람들의 세계에는 원래 사무실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새로 들어온 백인 정부가 오피스를 처음 만들었는데 부시 사람들이 겁을 먹은 채 호기심으로 살금살금 가까이 가서 창문 너머로 오피스 안을 들여다보니 책상 위에 많은 종이가 흩어져 있고 또 무척 많은 서류철이 쌓여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사무실이란 것을 종이 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우스 머니나 하우스 쿵도 재미있지만 하우스 드링은 정말 걸작이다. 어느날 부시 사람들이 백인들이 호텔에 모여 무엇인가 마시는 것을 보았다. 부시 사람들은 백인들이 모여 무엇인가 열심히 마시는 그곳을 다름아니라 하우스 드링으로 생각해낸 것이다. 이런 식으로 피진어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백 개의 언어 가운데 피진어는 각 부족간의 의사소통에 많은 불편을 느끼고 있던 가운데 영어 단어를 발음대로 뽑아서 멜라네시아어의 문법대로 나열하여 만든 것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하나의 언어로 되었다. 공용어로써 영어를 두고 있지만 앞서 교통어로 쓰이던 모투어를 대신하여 피진어가 교통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약 1천 3백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피진어 단어로 약 6천 개의 정식 영어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 있는 양을 구사한다. 시장조사를 나가면 영어로 작성된 질문을 상대에 따라 영어 혹은 피진, 아니면 모투어로 묻는다. 간혹 부족말로 물어야 할 때는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찾곤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대개의 모르스비에 모이는 사람들은 영어, 피진, 모투, 출신 부족어 이렇게 4가지를 말한다는 것이다. 한 대화를 잘 들어보면 한 사람이 영어와 피진어를 섞어 말하면 듣는 사람의 대답은 모투나 피진어로 하곤 한다. 간혹 라디오에서도 한 마디의 말 중에 피진어와 영어를 반반으로 섞어 말한다. 두 가지 심지어는 세 가지를 아무런 불편함 없이 말하는 이곳 사람들을 보면 일본인과 함께 영어 못하기로 이름난 한국인은 마냥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들어 나도 피진어는 문제없다고 큰소리 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미 사베(Mi Save)> 혹은 <미 노 사베(Mi no Save.)>를 때와 장소 등 상황에 따라 알맞게 말하는 것이다. 미 사베는 나는 안다(I know)는 말로써 한 마디로 긍정적인 상황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뭔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알았을 때 몹시 뽐내며 하는 말로, 혹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 때, 그 질문을 알고 있을 때, 그 여자를 안다는 뜻으로 등 그 무엇을 알면 서슴없이 미 사베라 외친다. 이와 반대로 무엇인가 모를 경우에는 대놓고 미 노 사베로 하는 것이다. 이 미 노 세베는 나는 모른다(I don't know.)는 뜻이다. 또 한가지 들면 내가 말을 잘한다고 말하는 것은 문장이 맞지 않는 영어지만 자신 있게 재잘거리면 영어권에서 온 사람은 알아듣지 못해도 이들은 신통하게도 나의 말을 알아듣는 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내가 말을 해놓고 무슨 말을 했는지 아리송할 때도 이들은 미 사베,라고 한다. 현재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867개로 세계 6천 280여 언어의 13퍼센트, 태평양의 1천 341개 사용언어의 64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다. 3개의 언어는 유럽인의 접촉이 있기 전부터 해안을 따라 교역어로서 쓰여 왔는데 피진어(Tok Pigin)와 모투어(Hiri Motud)와 영어(English)가 각각 2백만, 12만, 5만 명이 사용하는데 점점 그 수가 증가하는 반면 1981년 이후 발견된 비나어(Bina)와 요바어(Yoba)는 각각 2명만이 두 번째 언어로 사용하고 있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북솔로몬의 우루아바(Uruava)도 5명만이 사용하고 있다. 한편 하일랜드의 엥가 지방을 중심으로 한 엥가어(Enga)는 16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심부도(Chimbu Province)의 쿤디아와(Kundiawa), 게로우기(Kerowgi), 젬보기(Gembogi) 지역의 쿠만어(Kuman)와 뉴브리턴(New Britain)의 쿠아뉴아어(Kuanua)는 각각 7만 명의 사람들이 첫 번째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100명 미만의 사람이 말하는 22개의 언어, 20명에서 10명 안쪽이 7개 언어, 10명의 사용자가 채 못되는 언어가 10개로 한 언어는 평균 1천에서 1천 5백 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50년 이후 5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36개의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파푸아뉴기니의 윙거티(Paias Wingti) 정부는 사라지는 언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각지방의 학교는 그들 언어를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현재까지 200여 개 언어만이 구체적으로 조사 연구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파푸아뉴기니인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 정확히 몇 개가 되는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보여진다. 서로 다른 말이 수백 개가 있고, 포트 모르스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3-4가지 말을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글文字이 없는데 다시 놀라곤 한다. 오늘날에는 영어의 알파벳을 빌어다 쓰고 있다. 따지자면 문자가 없은 것은 아니다. 굳이 문자라 한다면 완톡으로부터 받은 선물의 기록을 짐승의 뼈와 돼지 이빨 등을 이용한다. 그리고 지참금을 받은 액수를 기록하는 얼굴이나 팔다리의 문신이다. 언어 등 이들의 문화에서 알 수 있듯이 부시 사람들의 세계는 철두철미한 평등사회다. 전통적으로 주인도, 하인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어깨에 힘주는 놈도, 기 못 펴는 놈도, 지주도, 소작인도, 이런 사회계층은 아예 없다. 이러한 평등사회에 백인들이 자신들이 부려먹기 좋게 근대국가의 체제를 입히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백인들은 부시 사람들의 평등의식은 현대국가 체제 밑에서 정부와 공공단체 및 기타 기관의 운영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다 라며 빨리 평등사회를 타파하고 부시 사람들이 일정한 명령계통에 의해서 움직여야 20세기 후반의 기능사회를 달성할 수 있다며 사람이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을 국제기관들이 앞장서서 가리키고 있다. 즉 관리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속셈은 따로 있으면서 말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농목축부 정책기획실 통계사무실의 한 직원은 말라리아로 한 달쯤 앓고 난 뒤 격주에 4백 키나 이상을 받는 봉급을 깨끗이 포기하고 고향 부시로 돌아갔다. 또 다른 동료는 그가 그에게 컴퓨터를 배워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고 하면서 도시생활은 부시생활보다 못하다며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다고 종종 말한다. 말하자면 골치 아픈 현대생활 보다는 부시생활이 좋다는 것이다. 굳이 시간에 얽매여, 또 남이 시키는 일을 하기 싫어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8시 5분전에 출근하고 4시 6분에 퇴근하게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하루 가운데 언제든지 출근하고 퇴근한다. 며칠씩 결근을 하기도 하며 한 곳에서 일을 오래하지 못하고 직장을 떠돌아 다니기도 한다. 대자연 속에서 잘아온 부시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출퇴근을 하고 하루종일 책상 앞에서 일 하기를 바라는 게 무리인지도 모른다. 부시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을 혹 멜라네시안 웨이(Melanesian Way)라고 하기도 한다. 어느 인류학자는 <평등하고 공동체를 의식하는 사고방식으로 모든 결정은 합의로써 이루고 협동으로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주의는 매우 매혹적인 생활철학이며 서양인의 개인주의와 경쟁주의에 환멸을 느낀 많은 멜라네시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PNG Trust는 이의 대표적인 단체로 국제 민간단체와 손을 잡고 파푸아뉴기니 전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문명의 급속한 유입 속에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보호하고 또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활동하고 있다. 호주인들로부터 미개인.야만인으로 천대를 받아오던 1965년 경부터 서양 숭배를 배격하고 모든 일을 멜라네시안 웨이로 처리해야 한다는 사조가 태동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시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인이 하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며 그것을 자명한 이치로 여겨 오다 백인들의 지나친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과 너무도 이기주의적이고 야박한 생활태도에 반감을 가지면서 나타났다. 이에 허버트 머레이(Hubert Murray) 총독 같은 이는 뉴기니인의 생활양식을 좋은 것으로 인정하였으며, 긴 안목으로 볼 때 뉴기니인들이 자기들 본연의 생활양식을 버리고 백인의 것을 덮어놓고 따르는 것이 좋은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고대의 인도나 중국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의 사회는 감독하는 자와 감독을 당하는 자 사이에 신분상의 차이가 존재하면서 감독을 당하는 자는 늘 허리를 굽히며 여기에 얽매여 살아왔다. 이렇게 신분상의 차이에서 오는 권위주의가 서울에서는 통하지만 여기 부시에서는 통하지 않은 법인데도 간혹 훌륭하신 서울분들이 습관대로 나 서울에서 왔는디 이 미개한 놈들아 이거나 먹어라 는 식으로 대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전차에 받친 놈 치고는 정신이 있는 셈이지만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도시 나으리 들이다. 근세에 와서 백인들이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 때로는 부시 사람들을 짐승처럼 대한 결과로 부시 사람들 대부분이 호주인들을 무서워 하면서도 마음속 한편에서는 싫어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부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버리고 백인의 것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전통적 생활양식이 그리워 현대에서 부시 마을로 되돌아 가기도 한다. 15. 나눔과 섬김 바나나 익어가고 돼지가 살쪄 가던 살림의 터- 생명의 땅이 였지 이제는 흰 피부의 땅 골프장이 되었네 바나나 찾아 찾아 숲 속 깊이 들어가니 나무 베는 흰 피부가 수입 쌀 먹으라네 나으리 감사합니다만 바나나가 좋지요 - 생명의 땅 - 부시문명과 현대문명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파푸아뉴기니는 현대문명의 짜가 도시인들을 진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부시를 자원으로 가지고 있다. 백인의 아프리카 침입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포르투칼.독일 등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서 파푸아뉴기니 침입보다 앞서 일어났다. 이들은 제각기 식민지 자원 수탈의 치열한 경쟁을 벌여 부시는 일찍이 외래문화의 충격을 받아 소위 개화의 과정이 일찍 일어났다. 그러나 뉴기니섬의 식민지 역사는 겨우 백년 남짓하고 부시 사람들이 서양인을 처음 만난 것은 40여 년 전에 불과하다. 사실 부시문명과 현대문명 이 두 가지의 이질적인 부시 사람들을 정신없이 방황하게 만들고 있다. 몇백 세기 전의 원시시대와 다름없이 문자 그대로 돌도끼와 목기 그리고 골기骨器를 쓰는 것밖에 몰랐던 이들이 불과 40여 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20세기 후반의 기계문명 앞에 노출되자 의식세계가 크게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타로나 고구마를 주식으로 하며 활과 부시 나이프를 가지고 산돼지 사냥을 떠나는가 하며 부족 전투지역이 선포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제 트럭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한 두 시간 이내면 소형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을 가진 도시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커피나 차를 재배하여 얻은 현금을 가지고 일류 관광호텔의 바에서 컬러 비디오를 보며 맥주를 즐긴다. 현대적 화폐를 사용하는 가운데 다시 전통적인 조개 돈을 중앙은행에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기도 하며 어제 일간 신문에 새로운 부족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는 알고 보니 수년 전 부족전쟁에 패배하여 숲 속으로 피신한 부족이라나. 그래서 한편에서는 백인들이 가져다준 문명이 부시 사람들을 진정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여기서 외래 문화는 문명의 이기를 제공하여 육체상의 고통은 크게 덜어 주고 있으나 반면 정신상의 고통이 커져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대인관계의 범위가 부족 공동체 내의 거의 국한되어 마음이 편했을 것이며 시간이나 나이 심지어 일마저 하지 않아도 구속하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도시인과 같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의 진로란 문명의 진보라고 한다. 여기서 문명이란 인간생활을 위한 자연의 정복이며 이용이다. 맨손을 쥐고 있던 부시 사람들이 돌칼과 창의 도구를 손에 쥐게 될 때 문명은 진보했다고 부른다. 다시 칼을 쥐었던 손에 화약을 되었을 때 자연과 이웃의 정복은 훨씬 수월하게 된다. 화약을 가졌던 손에 또다시 원자력을 갖게 될 때 문명의 진보는 역사의 의도를 배반하고 만다. 역사의 진로에서 우리의 의도가 성취되어 가기는커녕 그가 하는 것을 그가 모르게 되고 도리어 그가 미워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면 이러한 역사의 방향에 무슨 의의가 있을 것이며 어떠한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문명이 역사를 배반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자기분열, 자기모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양으로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대한 관계를 갖게 되고 그 한 자기가 또 다른 자기를 구원하여 보겠다고 모색하게 된다. 부시에 시장경제의 침입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현대사회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다. 한마디로 문명의 진보, 현대사회는 짜가 사회다 는 것이다. 짜가는 어디에서나 판을 치고 있다. 다리도 짜가, 눈꺼풀도 짜가, 콧대도 짜가, 시장에도 짜가, 교회에도 짜가, 집밖에도 짜가, 집안에도 짜가, 땅에도 짜가, 하늘에도 짜가, 가슴 속에도 짜가, 머리 속에도 짜가, 이방저방 사방팔방 지방천방의 모두가 짜가 가짜세상이다. 또 짜가 아닌 진짜도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물도, 바람도, 별도, 대통령도, 믿음도, 밥도, 처녀도, 자궁도, 철학도, 예술도, 선생도, 학생도, 짚신도, 운동화도, 신신신신신神臣新信身도, 그리고 사랑도, 짜가 아닌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부시(비록 순결을 잃어가지만)는 짜가 세상을 먼발치서 바라보게 한다. 자기분열, 이상적 자아와 그 이상으로부터 소외된 자아 혹은 창조된 대로의 자아와 타락한 자아로 분열되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며가며 방황하는 갈색인. 또 무엇이 우리 사는 사회의 진짜고 짜가이며, 우리가 가야할 역사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통념이랄까 고정관념이랄까 걸치레로 입고 있는 바지저고리, 짜가를 벗어버리고 부시로 떠나는 여행이 인간성 상실 시대의 인간성 회복 운동의 시발이 아닐까. 파푸아뉴기니 농업목축부 정책기획실에서 한국청년 해외 봉사단원으로서 일을 시작한지 1년이 넘으면서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89년에 실시된 시장조사 원시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을 할 때는 정말 짜증이 난다. 89년에 조사된 자료를 93년에서야 정리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고, 나의 제안이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는다. 일이라는 게 생산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단지 인력과 장비와 돈을 소비할 목적인 것 같아 보였다. 4년 전의 자료를 지금에 와서 무엇을 위해 정리해야 하는가 물어 보았지만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다. 단지 방글라데시 출신 계약공무원은 미스터 박은 내가 주는 일만 하면 된다. 며 말은 청산유수로 잘했다. 사실 그의 말대로 내가 받은 일만하면 하루 3시간만 일하면 된다. 말 그대로 세월만 보내면 되는 셈이다. 사람 사는 곳에서 창의성을 존중해야지 발전이나 전진이 있는 것이지 새로운 방법이나 색다른 생각을 하면 조직 또는 우두머리를 뭉개려냐고 짓누르는 자가 있는 한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돌도끼시대에 머물 수밖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닉스 386컴퓨터를 책상 앞에 두고 계산기를 이용하여 수천 개나 되는 데이터를 더하고 빼고 나눈다. 컴퓨터는 단지 타자기로 이용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 시간과 정렬을 소비를 위한 일에 받친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의 일에 회의를 품는다. 정책기획실의 일이라는 게 소비 지향적인 일, 옛날 옛적에 한국의 날일 판에서 내일 일을 만들던 못된 짓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하루 노동을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는 날일꾼들은 하루 일을 끝내기 전에 내일 일을 공연스레 만들어 놓기도 했다. 파푸아뉴기니 밖에서 막대한 돈을 주고 앉힌 계약 공무원들에게서 생산적인 일을 기대하는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할까. 더욱이 대다수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그들 계약공무원 밑에서 심부름이나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괜히 사람들이 미워지기까지 한다. 나를 제맘대로 부려먹으려고 한다. 석 달에 한번쯤은 얼굴을 꾸겨가며 그런 일은 당신이나 할 일이다 며 노골적으로 말하지만 영어를 그보다 못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나 파푸아뉴기니인이나 인도 사람이 다 한가지가 아닌가! 격주에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는 20여명 가운데 60퍼센트가 외국의 볼런티어 및 계약공무원인데, 발표를 자세히 듣고 보면 아무 곳에도 쓸모 없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분명히 계약공무원들이다. 이들이 일을 하니 그나마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 공무원들이 잘 사용하는 No problem!이란 말을 믿고 이제 되겠지 하고 기다리다간 대낮에 코 베이는 꼴 당하기 십상이다. 이 말은 다소 부정적인 의중을 나타내고 있다. 딱 잘라 일이 안되거나, 확실히 언제 될지도 안될지도 모를 때 이 말을 사용한다. 이렇게 어디를 가나 공무원들은 부아이나 씹으며 한다는 일은 말뿐이다. 놀랍게도 문서 일은 호주의 방식을 따라 그런지 빈틈없이 이루어 진다. 세월이 문제지만 말이다. 나는 주어진 일을 재빠르게 마친 다음 자료분석 및 처리를 컴퓨터의 로터스를 이용한 또 하나의 보고서를 내놓는다. 현재는 데이터 베이스4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장조사 결과를 단지 기초자료 입력만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지만, 비록 이들은 컴퓨터를 가지고서도 워드 타이핑 기능으로써만 3년 이상 이용하고 있었다. 내가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하여 결과를 내놓자 나에게 주어진 일은 자료처리 과정의 개선과 컴퓨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파일 및 디스켓 관리는 매우 효과적으로 자료집 발간에 쓰인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수많은 한국인들이 노다지 황금을 찾아 파푸아뉴기니로 달려와 돈과 시간과 정렬을 한 떼의 바람에 바지저고리 벗김을 당하듯이 소비하는 것을 본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난 김에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다만 확실한 것은 한국사람 대부분이 뺌 맞고 돌아가는 곳) 파푸아뉴기니를 찾는 한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최근 들어 돌도끼와 컴퓨터가 나란히 공존하는 파푸아뉴기니를 찾는 한국인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는 국제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 신문.TV.월간지가 앞을 다투어 파푸아뉴기니를 소개하고 있는데 연유한 발길로 생각된다. 파푸아뉴기니.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3년 전, 내가 적도를 넘어 이곳에 올 당시만 해도 한국인에게는 인육의 정글로 알려져 있었다. 원주민에 의하면 <예측할 수 없는 땅>.<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파라다이스>로, 호주 사람들은 이와는 달리 <비지니스 천국>로 부르는 동안 우리는 정말 구석기적 지식과 생각 속에 발길을 끊은 곳인 셈이다. 파푸아뉴기니가 휘지.통가.솔로몬.바누아투 등 호주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남태평양 17개 국가의 兄 자리를 지키며 금.구리.석유.나무를 수출하여 놀고먹는 나라라는 것을 알면 우리의 생각과 발길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어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自意든 他意든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너야 살 수 밖에 없다. 밀림 속 인육의 정글이든 태양이 이글거리는 적도의 바다든, 어디로든 밖으로 나가야 지구촌 가족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아니 검은 피부 꼽슬머리 사람들의 말과 음식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면 내 사랑하는 가족의 안녕과 자신의 현 상태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지구촌 문화인으로서 교양을 갖추기 위하여 8백 개가 훨씬 넘는 언어와 천이 넘는 부족으로 이루어진 파푸아뉴기니의 문화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을 돌리고 고기를 잡고 원목을 수입하고 금을 캐고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서 파푸아뉴기니의 1천여 개의 활주로를 나르며 적도의 밤을 밝혀야 하고 말았다. 안탑깝게도, 파푸아뉴기니를 찾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파푸아뉴기니의 노다지 금(수산자원, 원목, 구리 등의 광물)에 눈이 멀어, 돌도끼와 화살을 무기로 한 부족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해서 파푸아뉴기니를 원시의 미개인이 사는 현대 속의 석기시대의 나라로 착각하고 덤비다 이래저래 놀부 밥주걱으로 뺨 맞은 흥부 신세가 돼 훌쩍이며 서울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더욱 아쉬운 것은 왜 21세기를 내다보는 서울 사람이 파푸아뉴기니 부시 사람들로부터 돌도끼에 찍히게 되는지 의문을 가지고 부시 문화를 알려하지 않고 미련만 가지고 다시 부시 속으로 뛰어 드는 것이다. 보다 폭 넓은 문화연구가 앞서지 않고서는 비지니스 천국도 비지니스 지옥으로 다가온다는 진리를 파푸아뉴기니 잭슨 국제공항을 떠나면서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장 잡힐 것 같은 노다지 금을 못 잊어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부시맨이 아닐까. 파푸아뉴기니를 찾는 서울 사람은 최소한 다음 세 가지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전적으로 매스컴으로부터 보고 듣고 한 지식에 의존하여 10여 년 전 한국에서 100원 놓고 하룻밤 지나 수천 만원 움켜지던 시절처럼 원시의 부시 사람들이 사는 뉴기니 섬에서 한판에 벼락 돈을 거머지려 해서는 한마디로 하룻밤 사이 피 보고 돌아가야 한다. 나아가 미개의 부시가 아니라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부시맨의 제모습을 올바로 보아야 밥주걱으로 뺌 맞고 훌쩍이며 돌아가는 흥부신세를 피할 수 있다. 둘째는, 파푸아뉴기니는 엄연히 신생 독립국가이나 호주의 손아귀에 서 돌아가는 세계 속의 한 국가란 사실을 사랑에 눈이 멀듯 金앞에 서 보지 못해서는 안된다. 이는 기득권 행사를 하는 호주정부와 싸워 이겨야 노다지 금광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보다 접근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또 광산을 개발하려면 인근 부족민들을 위한 병원과 학교 등을 운영해야 하는 사회다. 마지막으로, 파푸아뉴기니의 문화를 알려고 하지 않는 점이다. 완톡, 페이백, 철창, 부아이 문화뿐만 아니라 현재도 계속되는 부족전쟁과 땅(토지)이 원주민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등을 알아야 한다. 파푸아뉴기니 정부도 부족민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땅문제를 시원스럽게 풀지 못해 세계적 금광을 발견만 했지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먼저 문화를 알고 난 다음에 파푸아뉴기니의 1천여 개가 넘는 활주로를 달리는 꿈이라도 꾸어보라는 말이다. 혹 이런 말에 언제부터 대사관이 모르스비에 자리잡았는지 모르지만 쓸만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세계평화와 발전을 위한 한국청년의 참여를 목표로 내건 한국청년 해외봉사단 사업은 그 이념과 사업수행에 있어서 순수해야 하며, 현지 주민의 삶과 일체가 되는 실천적 참여를 통하여 사업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말에 의하면 나는 농업목축부 청사에서 일을 하게 된 것부터 잘못인지 모른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파푸아뉴기니는 식민지로 존재한다. 옛날에야 정치적 군사적으로 식민지, 정원을 넓혔지만 경제전쟁 시대인 오늘날에는 경제적 장악으로 식민지를 확보하고 있지 않는가. 누구를 위한 자문이며 누구에게 필요한 자료를 유엔 FAO는 수집하는가? 선진국이 준 돈의 흐름, 세계식량기구의 자료조사에 응하면서 문득문득 생각했다. 이러한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경제협력>과 <나눔과 섬김>의 함께 잘 살기 운동이 얼마나 서로 이질적이고 또 허황된 말장난인가를 생각하면서 봉사단원인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마디로 봉사단원으로서 나를 정리하여 딱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지난 수 개월 동안 지겹도록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외수의 장편소설 <벽오금학도>에 이런 말이 있다. 언젠가 네 할아버지께서 앞날을 미리 내다보시고 이 할머니에게 일러주시던 말이 생각나는구나. 그대로 전하여 줄 것인즉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 두고 부화뇌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네 할아버지께서는 개인과 개인끼리는 서로 온정이 통하는 법이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서로 온정이 통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씀하셨지. 아무리 하찮은 물건들을 주고받아도 종국에는 반드시 손익계산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게야. 대개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에 베풀어주는 아니꼬운 온정 속에는 항시 보이지 않는 낚시바늘이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법이니라. 입질 한번 잘못해서 그 바늘에 걸리게 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힘이 들지. 과거 우리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을 때 무슨 엄청난 자비심이라도 베풀듯이 남의 나라 사람들이 던져 준 미끼를 덥석 받아먹은 결과가 어떠했느냐. 나중에는 온갖 소모를 다 당하고 나라까지 빼앗기지 않았느냐. 중국이 던져준 미끼도 그러했고 일본이 던져준 미끼도 그러했느니라. 그러나 미국은 좀 다를까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오늘 네가 먹는 그 한 봉지의 우유가루가 몇십 년 후에는 엄청나게 큰 빚더미로 불어나서 몇백 마리의 황소로 갚아야 할 날이 오지 않게 되기만을 빌 뿐이다. 네 할아버지께서는 전생에 일어날 것도 미리 알고 계셨고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갈라진다는 것도 미리 알고 계셨느니라. 남쪽에는 장차 바람이 불어와서 장바닥마다 서양 물건이 판을 치고 의식주 일체가 서양식으로 변할 거라고 말씀하셨지. 그때는 더러운 전염병이 흉흉하게 퍼지고 미풍양속은 거지발싸개 취급을 받게 되며 도덕은 땅바닥에 떨어져서 걸레가 된다는 게야. 신기한 기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니라. 그 기계의 모양은 상자곽처럼 생겼는데 단추를 누르면 나라 안은 물론 나라 밖의 소식까지도 눈으로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단다. 그 기계의 이름은 틀애비라고 일러주셨느니라. 유익할 때도 더러 있지만 너무 가까이하면 사람을 천치같이 만들 것이라고 경계하셨는니라. 네 할아버지의 말씀을 소홀히 생각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여라. 왜 남의 소설을 이렇게 옮기는 가는 이미 밝힌 대로 재주 없는 곰이 재주를 부리려고 용을 쓰기 때문이다. 이왕 재주(?)를 부릴 바에야 하나 가지고는 서운할 것 같아 91년 9월 11일자 어느 말 잘하는 변호사가 쓴 조선일보 아침논단을 하나를 더 옮긴다. 정부예산으로 지원하는 <청년해외 奉仕團> 제 1진이 출발길에 올랐다. 40년 전의 6.25動難때 미국 등 유엔 16개국의 도움으로 共産化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구원을 받았고, 초토화된 강토에서 구호물자로 연명했던 우리로서 실로 감개무량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 이해관계 없이 <베푸는 나라>로 일대전환을 하고자 하는 이 청년봉사단 프로젝트는 분명 성공을 거두게 될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그간 세계도처에서 활동을 벌여온 우리 宣敎師들과 태권도 사범들의 선례와 배낭여행을 떠나는 청년들의 기개와 축적된 해외경험들이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따뜻한 인정을 가진 선진 한국인들이 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민족통일도 못 이룬 주제에 무슨 세계적 기여며 봉사냐고 힐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세계를 위한 봉사라는 이 命題는 우리의 종래 감각으로는 다소 생소한 것이다. 이 민족의 특성을 恨과 설움에서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우리의 역사는 곧 苦難의 역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탁월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고난과 역경이야말로 새 문명이 일어나는 터전이라고 역설하였다. 咸錫憲선생은 우리의 수난과 치욕은 세계사적인 것이요, 이를 감내하고 드디어 극복할 때 몰락하는 세계문명을 구원할 소망의 빛이 되리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간에 우리 민족은 역사의 主幸으로부터 버림받은 돌처럼 천대를 받았는데 이제는 어느덧 다가오는 미래의 주춧돌로 쓰일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는 작은 나라, 후진된 민족으로만 생각하였는데 어느덧 영향력이 있는 나라, 진취적인 민족으로 바뀌고 있다. <중략> 그러나 한 시대는 가고, 새 세대 새 世紀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위장과 허세 그리고 모든 이성적 분석은 그 정체가 폭로되고 한계가 드러나며 이제는 정직과 진실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 시대, 곧 진리의 시대가 오고 있다. 南北과 地域, 階層과 당파로 편을 갈라 미워하던 시대는 이제 묻히고 세계의 善한 사람들이 나서서 一家를 만들어 가는 역사가 재촉되고 있다. 이 사회는 지금 너무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그럴수록 과거와의 인연에서 벗어나 옛무리들과 섞이지 않는 것이 급선무 있다. 조용히 물러나 정직과 순결로 그릇을 다시 닦아야 한다. 그러면 믿음이 생기고 소망을 가지게 된다. 새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사랑과 봉사의 일이다. 이 사회의 정의와 우리민족의 통일만 위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世界를 이루기 위한 奉仕의 役軍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다음은 나의 <원조援助>라는 時調다. 사바나 언덕은 회색빛 꽃덤불 문명의 소리에 꽃잎도 떨고 있다. 하햐 비 그림자 가득 몰고 오는 저 발끝! 함께 잘 사는 일류사회 건설을 위한 <나눔과 섬김>이든, 생존을 위한 <국제협력>이든 한국청년 해외봉사단 사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청년 해외봉사단 사업은 먼저 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 나눔과 섬김이란 거대한 이상은 오늘날 세계적 기류의 국제협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미국, 일본, 뉴질랜드, 유엔, 독일 등의 볼런티어는 하나의 직업으로써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봉사단원들처럼 가슴과 머리 등 빈곳이면 어디든지 나눔과 섬김이니 한국국제협력단이니 하는 굵직굵직한 글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국의 볼런티어는 우리말로 봉사자가 영어의 볼런티어로 번역되면서 생기는, 무한한 유형무형의 인내와 극기를 요구하는 일을 봉사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 들려지고 있다. 한계가 있는 것이다. Korea Volunteer와 Korean Volunteer는 마치 콩 팥의 차이만큼, 때때로 이를 혼돈하여 혹은 필요에 의해서 편리한 대로 부르짖지만 엄연히 서로 다른 질량으로 존재하여 간혹 내면의 갈등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밖으로 나타내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국가가 감내할 것을 시민 개인이 감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많다. 국가간 사업에서 볼런티어가 봉사할 것이 있고 파견국가(조직)가 봉사할 것이 있는 것이다. 국내도 아니고 국외에서 공무로 일을 하다 총질의 위협에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가졌다면 최소한 강탈당한 금액은 어디에서 충당해야 할까. 봉사자니까 봉사 한 번 했다고 생각하라는 식이라면 문방구 주인도 웃을 것이다. 돈이야 봉사한다 치더라도 목숨까지 내놓으라는 식의 일 처리는 더욱 곤란하지 않을까. 한국의 봉사자가 세계 각국의 볼런티어와 당당하게 견줄 수 없다면 5년이나 10년 후에 파견하는 것이다. 김치는 김치로 사통팔달 세계로 통하지만 아무리 한국에서 봉사자라 불러도 국제사회에서는 볼런티어로 통한다. 동양적 봉사자와 서양의 볼런티어 사이의 개념차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혹,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이의 헌신적 희생이 필요하다고 할지 모른다. 따라서 물질적인 지원보다 한국인의 근면성과 높은 이상을 접수국 국민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도 모르고, 철학도, 이상도 없는 말단 서생이 하는 말은 아닌가? 1박 2일의 벼 베기 농촌 봉사활동을 가도 봉사단은 벼를 벨 수 있는 도구와 최소한 하루 먹을 쌀도 준비해야 한다. 맨몸뚱이로 논두렁에 서서 나 벼 베로 왔으니 낫과 밥을 준비해 오시오 라고 한다면 과연 봉사활동이라 말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국가간의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당면한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말로만이 아닌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김포공항을 출발한 봉사단원이 몇 명이니 하는 홍보와 광고에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파견 단원이 어떻게 또 어떠한 일을 하는가를 올바로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생색내기식 선전이어서는 더욱 아니된다. 청년의 힘은 무한하여 밀림 속이나 반군이 활동하는 지역, 혹은 도시의 빈민촌 등에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활동을 잘하고 있다며 덮어놓고 떠들어 대서도 안된다. 국제협력이든 나눔과 섬김이든 정열만 가지고는 안된다. 현실적이고도 과학적인 체제를 갖추어 실시해야 한다. 여기에 인간사랑의 정신이 더하여야 한다. 문방구식 경영으로는 주고도 빰맞는다. 현장감 없이 그때그때 순간적 상황에 따라 단원을 파견하고 관리해서도 더욱 안된다. 최소한 이상과 현실이 반반으로 조화를 이룰 때 하는 일이 보다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국제사회의 흐름으로 보면 국제협력은 치밀한 준비와 계산에 따라야 하며, 또 가장 한국적인 나눔과 섬김을 국제적인 것이 되기까지는 철저한(절대자와 같은) 순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티끌만큼의 흠이라도 가지면 아니 부르짖음만 못하다. 강대국 환경단체의 압력에 나무마저 마음대로 팔아 쌀을 사지 못하는 세상이다. 나무, 푸른 하늘과 바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등의 자연이 자원화 되어 수탈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석유나 금이 최고의 자원이 아닌 세상이다. 더 이상 국가간의 국제적 사업이 두 마리의 용을 한번에 잡으려 해서도 안된다. 나눔과 섬김 그리고 국제협력 가운데 하나라도 확실한 색깔을 내야한다. 한국청년 해외봉사단은 방학을 이용하여 떠나는 농촌봉사대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인은 지금 이 거대한 이상을 기치로 내걸고 모두가 땀을 흘리고 있다. 보다 신바람 날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 이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인은 제도와 법보다는 서로의 관심 속에 미래와 용기를 나눌 때 신바람 나게 일을 해치운다. 대차대조표를 너무 따지면 되는 일도 되지 않게 일을 하는 게 한국인이 아닌가. 젊음의 패기와 무식한 배짱을 과학적 합리주의 보다 우위에 두고 있는 게 한국인이요, 그 패기와 배짱을 앞세운 투자의 결과가 오늘의 한국경제를 이끌게 한 원동력이 아니냐 하던가? 그러나 그런 시대는 가고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80년대 후반 노동쟁의를 결과론 적으로 보면 그 동안의 안일한 경영자세를 탈피하고 기술개발과 연구투자를 유도 생산성 향상과 대외 경쟁력 확보 등 세계로 발길을 옮기게 만들었다고 본다. 더 이상 노동집약적 경영이 아니라 기술혁신과 공격적 글로벌 경영만이 살아남는다는 산업의 의식혁명을 불러일으킨 노동운동과 한가지로 나눔과 섬김을 통한 함께 잘 사는 인류사회 건설에 보다 접근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길 바라며 설익은 과일 같은 말을 앞에서 했다. 덧붙이면 우리 산업의 경영자들은 노동쟁의에서 단기적으로 최소한의 대가를 치르고 노사가 다함께 기업의 목표를 향하여 보다 활기 차게 전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봉사단원을 선발하고 교육하고 파견기간동안 지원.관리하는 사람들도 봉사단원으로서의 경험을 가져야 할 것이며, 또 이들도 봉사단원에게 요구하는 나눔과 섬김이란 정신에 보다 충실한 자세로 일의 처리를 해야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모범은 80년대 후반의 병영이나 학생과 선생 사이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요구되는 것이 모범이요, 모범을 타인에게 강조하기 앞서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는다. 16. 뱀의 꼬임수 호랑이 담배 피던 예-ㅅ날 옛적에사 한양땅 갓 쓴 양반이 문디 콧구멍 씻나락 빼 먹더니 여편네까지 훔쳤지 문명인, 아예 싹쓸이니 그 양반이 양반이제 배부른 자는 날로 배부르고 가난뱅이는 날로 가난해 진다 다는 미국속담이 있다. 또한 헨리 죠지는 빈곤의 증가는 진보의 증가한 불가피한 동반자 라 말했다. 배부른 자는 배가 불러 터져 죽고 가난한 자는 배가 고파 죽는다는 말이며, 열을 가진 자가 가난한 자가 가진 그 하나마저 빼앗는 자본주의 현대사회를 두고 말한 것이리라. 절대적 빈곤은 인간을 인간 이하로 만든다. 그래서 인간세상의 절대적 빈곤은 무서운 것이다. 빈곤이란 말에는 또 상대적 빈곤이란 말이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의 상대적 빈곤은 삶을 절망으로 이끌기 때문에 절대적 빈곤과 같이 무섭다. 아니 오늘날의 상대적 빈곤은 절대적 빈곤을 가져오기에 절대적 빈곤보다 더욱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 파푸아뉴기니의 범죄에서 보면, 여러 이유 가운데서도 상대적 빈곤감에서 오는 허탈과 가지고 싶은 욕망 등이 순간적으로 분출하게 되고 따라서 형무소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절대적 빈곤과 싸우다 평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적 빈곤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게 된다고 불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는 경쟁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극단을 치닫는 부익부 빈익빈의 상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발생하는 분배문제가 형평성을 잃은 데에 있다. 이는 곧 한국사회의 30대 전후의 직장인들의 하루살이 소비생활에서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소위말해 일찍부터 어둠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것이다. 물론 적당한 상대적 빈곤은 자본주의 사회에 왕성한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생각이다. 노령화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 못하고 따라서 생기 없는 단조로운 사회로 인간의 활동은 인간의 동물적 습성으로 활보하게 된다. 무기력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살아서 움직인다. 삶의 의미 같은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알맞은 상대적 빈곤은 삶에 적당한 긴장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청년의 패기를 엿볼 수 있는 사회에는 얼마간의 빈부의 격차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흘에 피죽 한 사발도 먹지를 못했는데 하루 세끼 밥을 먹고사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 고 상전노릇 하려는 배부른 자가 가난해 못살겠다며 푸념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팥과 콩은 다같이 콩이라는 사람이 있다면 (엄밀하게 말하면 팥도 콩이라 할 수 있겠지만) 좀 곤란하지 않을까? 팥은 팥이며 콩은 어디까지나 콩일 뿐이다. 그래서 콩꽃에 팥 안 열리며 팥꽃에 콩 안 열린다는 말도 있다.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 나눔과 섬김은 팥꽃에 콩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까. 소설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 시인이 될 것을 강요하면 시인이 된다 해도 사이비 시인으로 시인의 흉내만을 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의 기질을 다듬고 가꾸어 가는 젊은이에게 소설을 쓰게 한다면 그는 조만간 질식사할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나 둘 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니 매한가지가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콩과 팥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도 이렇게 오줌, 똥을 구별 못하는 높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은 때라 이런 말이 혼란스럽게 들릴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역사를 기록하는 사서와 같이, 지상을 헤아리는 소설가는 잠수함의 흰토끼와 같이 천상을 헤아리는 시인과는 지상에서 천상까지 만큼의 차이가 있다. 지상이 곧 천상이요, 천상이 곧 지상이라고도 하지만. 한 번 아웃사이드는 영원한 아웃사이드요, 촌놈은 자손 3대 세세토록 빈곤에 허덕이다 죽게 되는 것이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국제사회의 국가간에도 통하는 게 바로 한 번 아웃사이드는 영원한 ... 파푸아뉴기니는 인구 4백만 명에 남한의 4배가 넘는 땅을 가지고 있다. 산과 강과 바다에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있다. 금, 석유, 구리, 원목, 커피, 코코아, 코프라뿐만 아니라 수산자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은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다. 단지 이들에게 미래의 자원으로 그 가치가 있을 뿐이다. 타로, 얌, 타피오카, 바나나, 코코넛, 빵나무, 파인애플 등 2백여 가지나 되는 자연산 식량이면 충분하다. 자연이 주는 선물로 지금까지 즐겁게 살아왔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 에덴동산의 실과와 동물, 하나님이 만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옷을 입지 않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산것과 다름없다. 언제든지 부시에는 먹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절대적 빈곤이란 말이 없다. 빈곤이란 말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러한 류의 말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적 빈곤도 없다. 완톡사회에서 부자란 얼마나 많이 자주 완톡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춤추는 가에 달려 있다. 저축을 모르는 데서, 추장이 세습되지 않고 군림하지 않는 점, 꽃과 새와 바람과 별과 달과 함께 시간을 셈할 줄 모르는 점, 나이와 문자가 없고 술을 만드는 법을 모르는 것들에서 20세기까지 이들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대문명이 들어오기까지 먹고 입고 자는 것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그 흔한 술도 없었지만 대나무 속에 차 있는 맑은 생수를, 쿨라라고 하는 야자수를 마시다 정히 술(?)을 마시고 싶으면 부아이를 씹었다. 바나나 잎으로 싼 생선을 장작불로 달군 돌 틈에 밤새 묻어 두면 아침에는 알맞게 익은 생선을 맛 볼 수 있다. 음식은 영양학적으로 보아 질이 나빠도 인구가 자연과 균형을 이루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상태를 백인들은 원시적 풍요(Primitive Wealth)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의 농사법은 산과 들을 태워서 밭을 만드는 화전민식 농경 법으로 특별한 비료는 모르며, 다만 재가 식물의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땅심이 약해지면 새 땅을 찾아 야산을 태워서 밭을 만든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의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내 주위의 산에도 시시때때로 불을 지르는 데 이를 처음으로 보는 이는 이들의 정신을 의심하기도 한다. 아마 이들은 불을 질러 놓으면 언젠가 그곳을 밭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경사가 심한 땅을 계단식으로 밭을 만들 줄 알며, 고랑을 파거나 대나무로 물을 끌어오기도 한다. 대체로 고구마 같은 것은 여자가 재배하고 남자는 얌이나 사탕수수 바나나 등의 재배를 맡는다. 밭은 대개 한 번 재배하면 놀리는 데, 가령 토란을 심은 다음에는 고구마나 바나나를 심지 토란을 다시 심지는 않는다. 특이한 것은 벼농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리와 조 등의 곡식 농사법을 모른다. 최근에 와서 호주에서 금이나 구리와 바꾼 쌀을 먹고부터 쌀 농사에 정부가 나서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 이상 정부주도로 벼농사 연구를 하지만 호주인들의 견제, 부시인들의 농사법 등으로 인하여 연구를 위한 연구에 지나지 않고 있다. 한국과 타이완에서 벼 재배 시험 및 기술전파를 시도하지만 연구결과 보고서가 정책결정권자 호주인의 손에서 휴지통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로, 또 약간 생산되는 쌀의 유통을 호주의 쌀 회사인 트루카이(Trukai) 손에서 놀고 있는 현실과, 유엔이나 각국의 원조기간에서 연구한 보고서가 연구자의 출신 국가에 따라 달라 지난 10년 동안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정부가 강력하게 쌀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최근 농목축부 장관의 이제 더 이상 외국인들의 말을 믿지 않겠다 는 신문지상의 발표에서 잘 알 수 있다. 발명이나 혁신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부시인들이 미개의 원시인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상실하지 않은, 인간의 처녀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넉넉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도시인 그들의 근시안적 표준화된 자로 재단하면 미개의 원시인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혹은 하나님의 척도로 가름한다면 타락한 도시인들이 미개인이 아닐까? 부시의 완톡문화는 산업사회를 건설하는 데 장애물이라며 완톡문화를 파괴하는가 하며, 하나님을 알게 하여 모든 부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절대적 부를 자랑하여 상대적 그리고 절대적 빈곤감을 심어 주어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자본.원료공급 기지와 미래시장을 만드는데 세계의 힘있는 나라들이 숨가쁘게 다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총질로 정원을 넓힐 수 있겠는가 명색이 저마다 일등인간인 데. 전화를 팔아먹기 위해서는 전화가 필요하도록, 또 전화라는 것이 무엇이며, 만약 전화를 산다면 인생이 어떻게 바뀔 것이며 당당하게 중산층.중진국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라는 세뇌교육과 함께 전화를 보여 주기도 한다. 국가간에 있어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광고전략은 고차적이다. 단순히 텔레비전광고나 일간신문의 요삼묘삼한 글과 사진만으로 통하지 않는 법이니까. 파푸아뉴기니에는 수많은 공공원조기관과 사적원조기관이 제각기 활동에 여념이 없다. 경제, 교육, 의료, 사회문화, 종교 등 현대산업 사회의 삶에서 일어나고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청년 해외 봉사단이 내건 나눔과 섬김과 같은 구호를 부르짖으며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둥지를 틀고 이방저방 사방팔방 지방천방 가며오며 오며가며 귀신처럼 피리를 불고 있다. 이제 그들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농업분야 개발사업에 가장 중심적인 원조를 수행하고 있다는 아시아 개발은행(ADB), 코코아 생산 향상 프로젝트의 호주 국제개발원조청(AIDAB), 플랜테이션 경영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럽경제공동체(EEC), 농업기계화 프로젝트에 아시아 태평양지역 경제사회 이사회(ESCAF), 경영강화 프로그램 및 농산림계획의 유엔개발기구, 독일.이스라엘 연구원조(GIARA), 관개수로 분야에 이스라엘정부원조, 부달농대 장비지원 및 협력대를 파견하는 일본국제협력단(JAICA), 연수생을 초청하는 한국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농업교육 및 훈련분야에 뉴질랜드 해외개발청(NZODA), 농촌개발 프로젝트에 남태평양 위원회(SPC), 농업시장유통 프로그램에 미곡 국제개발원조청(USAID), 미린베 야자유 소영농 개발계획에 참여하는 세계은행 하는 식의 타령을 슬픈 곡조로 읊는다. 이런 통곡의 사이사이에 죽은 자의 미덕을 찬양하는 인사의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곡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진실로 슬퍼하는 것은 아니고 이른바 곡군이 되어 건성으로 곡을 하는 수가 많다. 이렇게 곡을 하고 죽은 자를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에 담배도 피우고 부아이도 씹으며 히히덕 거리기도 한다. 늙은 완톡의 죽음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나 간혹 젊은 완톡이 죽으면 완톡 모두가 울며 슬픔에 잠긴다. 인간은 언제나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처럼 삶과 죽음 사이를 무서워하지 않으나 아이나 젊은이가 죽으면 눈물 바다를 만든다. 부시인들은 모든 인간에게는 영靈이 깃들어 있는데 이 영은 육체의 성장에 따라 성쇠 하다가 죽음과 더불어 육체를 떠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로부터 잘 떠나가도록 해야 한다. 잘 떠나지 못한 영혼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화를 끼친다. 특히 폭력에 위해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에 대해서는 마술사를 불러 그 증오를 다스린다. 레이지방의 한 부족은 나무가지나 동굴에다 시체를 연기에 그을려 마을을 바라보게 앉혀놓는 풍습도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이를 규제하여 지금은 사라졌지만, 훈제된 시체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불로로(Bulolo)의 앙가페나(Angapena)마을 미이라(Smoked Man)가 유명하다. 앙가페나산의 7부 능선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 15구의 훈제된 시체가 그것이다. 50여 년 전에 부족전쟁으로 죽은 어린아이 여자 남자 등 100여구의 시체를 살가죽이며 뼈며 살아있는 사람의 형체를 그대로 간직하게 하여 나무가지 위에 앉혀두었다. 장례풍습 가운데 라이바로(Laibalo)는 불을 의미하는 라(La)와 끄다라는 뜻의 이바로(Ibalo)로, 장례식에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장만하여 묘지까지 가는 행사를 말한다. 고인의 친척들은 푸른색의 옷이나 보자기나 천으로 치마같이 두른 랍랍(Laplap)을 입고, 미망인은 검정색의 옷이나 랍랍을 입고 있다. 라이바로가 끝나면 고인의 완톡이 미망인을 묘소 근처의 정글에 작은 집을 만들어 미망인을 가두고 작고 아주 매운 야생고추와 삶은 바나나만 매일 식사로 제공한다. 기간은 1개월에서 1년까지도 있으나 고인의 완톡이 기간을 결정한다. 이때 더위와 습기, 수많은 모기떼, 외로움, 슬픔 등을 겪는다. 이렇게 가두는 것은 죽음의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죽은 자를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이다. 만일 미망인이 울타리를 뛰쳐나오면 완톡이 붙잡아서 구타와 함께 다시 가두게 된다. 히리 모투어로 우무부아(Umubua)는 검정색을 의미하는 우무(Umu)와 버리다라는 뜻의 부아(Bua)의 합성어로 한국의 1년.3년 탈상과 비슷하다. 이는 특정한 기한이 없고 마을 전체에서 일정기간 안에 죽은, 마을 주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공동으로 치르는 행사이다. 이 우무부아는 추장이 마을의 의견을 모아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데, 행사를 치를 비용의 축적여부와 참가자 사람의 수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우무부아 행사 일이 결정되면 돈이 부족한 미망인은 그의 완톡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받아 돼지를 사 잡게 된다. 돼지를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높은 기둥에다 즐비하게 묵어놓고 그 밑에 마른 야자 잎으로 불을 질러 털을 그을려 제거한다. 이때 매캐한 냄새에 마을 꼬마들이 모여들어 마치 한국의 시골 잔칫집을 방불케 한다. 미망인은 이렇게 잡은 돼지와 쌀과 통조림과 바나나 등을 고인의 형제자매와 완톡에게 나누어주며 그들의 노여움을 삭히고 이 의식을 무사히 마치면 비로소 재혼도 할 수 있으며 자유로운 몸이 된다. 이는 베레나의 메케오 부족의 풍습이다. 뉴기니 고산지대의 전사자 장례식은 특이하다. 하일랜드 고산지대에서는 부족간의 전쟁에서 피로 피를 씻는 칼싸움은 없으나 돌과 화살에 의한 전사자가 생긴다. 창에 의하여 심하게 상처를 입은 전사는 그의 집으로 옮겨지고 상처 주변에 새로이 상처를 내어 검은 피를 빼낸다. 완톡들은 사탕수수 끝에 새의 깃을 꽃은 주물呪物을 만들어 부상자의 머리 위를 몇 번 흔든 다음 마을의 밭에 꽂아 그의 혼이 잘 보호되고 있음을 적측의 망령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병을 치료하는 마술사가 부상자의 귀에다 대고 용기를 내라고 일러준다. 이렇게 해도 효과가 없이 부상자가 죽으면 그때부터 복잡한 장례 절차가 시작된다. 전사자가 생긴 다음날 전사자가 속했던 부족의 남녀가 광장에 모여 유해 앞에서 추도식을 올린다. 돼지를 한 마리 잡아놓고 시체의 화장火葬이 시작된다. 완톡들은 장작 위에 놓여진 시체에 불을 지르면 정령은 육체를 떠나 적의 부락으로 화를 일으키려 날아간다고 믿는다. 화장이 끝나면 잡은 돼지를 나눠 먹는다. 그런 다음 바로 손가락을 자르는 의식이 시작된다. 몇몇 소녀가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의 끝마디를 절단하여 죽은 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다. 만일 죽은 남자가 중요한 인물이었을 때는 한 소녀의 귀를 위쪽으로 3분의 1쯤 자르는 의식을 행한다. 절단한 손녀의 손가락 마디는 전사자의 유골과 함께 부락밖에 매장한다. 누가 죽으면 가까운 완톡들이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서 지붕 위에 버리는 습관이 파푸아 지방에도 있다. 이것은 남녀가 다 행하는 습관인데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다.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는 남편의 시체가 백골이 되어 매장하기 직전에 양손가락의 가운데 뼈는 남겨 놓는다. 그런 다음 그 손가락뼈를 실로 매서 4-5개월 동안 목에 걸고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부시인들의 목걸이 가운데 뼈를 갈아서 만든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돼지의 이빨과 조개 등을 실에 매어 만든 목걸이와 같이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내가 죽었을 때는 남편이 아내의 손가락뼈를 남기는 일은 없다. 사람이 병으로 죽으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죽은 자의 소유물을 모두 파괴한다. 이는 죽은 자의 소유물을 파괴함으로써 병이 다른 사람에게 옮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한 죽은 자가 애써서 모아놓은 것을 다른 사람이 갖게 되면 망령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서 이들은 죽은 자의 소유물을 쓰지 못하도록 불에 태워 버리거나 땅에 묻어 버린다. 부시인들은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완톡 가운데 먼 곳으로 가게 될 때 흘리는 눈물 그 이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해외에 연수나 공부를 위해 공항을 나서는 완톡을 환송하는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현대 산업문명이 들어와 흘리게 만드는 눈물에 비하면 완톡의 죽음으로 느끼는 슬픔은 일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툭하면 죽인다. 얼마의 돈을 빼앗기 위해,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데 상대를 죽이기도 한다. 이렇게 금요일의 축제, 사랑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축제로 내달린다. 18. 씽씽 타로와 바나나 먹고 부시(Bush)에 살던 날 당신의 춤은 당신의 삶이었지 부시맨, 오늘의 삶은 당신의 춤이 아닙니다. 선녀와의 일이 있고 난 후 사무실에서 가비를 만나는 것을 피해오던 터에 소게리 하이스쿨 씽씽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물론 사무실에서 전혀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쩌다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볍게 인사만 주고 받아왔다. 그녀로서는 지난 선녀와의 일이 일상사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날 이후 선녀와의 지난 추억을 생각하곤 한다. 귀국 후 서울에서 만나면 어떻게 서로를 마주할지 모르지만 나는 선녀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한동안 잊고 지내온 선녀가 우연한 가비의 만남으로 선녀와의 추억들이 말라리아 모기처럼 나의 가슴과 머리 속에 되살아 난다. 고등학생들이 자신들의 출신마을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다말고 선녀 생각으로 우두망찰 서 있는 나에게 가비가 다시 말을 걸어온다. 박, 지금 저 그룹은 리고 씽씽이야. 가슴을 반쯤 가린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어. 여학생들의 춤이 재미있지? 그래. 소게리 씽씽은 졸업작품 발표회 셈이지. 이렇게 나는 말하자면 가비의 말에 동문서답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씽씽에 대하여 말을 한다. 포트 모르스비의 씽씽은 크게 1975년 9월 16일 독립 전까지만 해도 각 지방에서 온 부족들 간의 물물교환 축제였으나 그러나 오늘날에는 외국 관광객을 위한 축제로 독립기념일 전후로 매년 열리는 엘라비취 씽씽과 소게리 고등학교 졸업씽씽으로 나뉜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연중 씽씽축제가 이어지는데 9월 16일 독립기념일을 전후하여 각 지방에서 올라온 부족이 고유의 전통차림으로 약 1주일간 열리는 엘라비취 씽씽을 비롯하여 고로카(Goroka), 마운트하겐(Mt.Hagen), 마당(Madang), 라바울(Labaul), 세픽(Sepik)축제가 유명하다. 초대 수상인 소말레가 졸업한 이 소게리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어 이 씽씽에서 라바울 엥가 하겐 세픽뿐만 아니라 베레나(Bereina)의 메케오 씽씽(Mekeo singsing)과 또한 포트 모르스비 근처의 전통적 리고 씽씽(Rigo singsing)도 볼 수 있다. 가비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나는 파푸아뉴기니에 도착한 지난해 9월 현지훈련기간에 독립기념일 씽씽과 마당씽씽 등 여러 차려 크고 작은 씽씽을 보았기에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 지방 씽씽 가운데서는 마누스 씽씽이 재미있다. 남자 여자 각각 반반으로 구성, 열 두명이 한 팀이 되어 남녀관계를 묘사하며 추는 춤은 보는 이 모두가 배꼽을 재고 웃게 만든다. 여자는 풀잎으로 허리 앞만 살짝 가리고, 남자는 여기에 50센티가 넘어 보이는 튼튼한 막대기를 두 손으로 허리 앞에 대고서 남녀가 배꼽 맞추는 것을 여러 가지 형태로 흉내를 낸다. 또 엥가지방의 진흙으로 온몸을 바르고서 추는 춤은 이야기 속에서 들은 악마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씽씽 기간에는 일을 전폐하고 오직 씽씽만이 있을 뿐이고 부족의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여 보통 2-4일 간에 걸쳐 펼쳐진다. 연중 각 지방에서 열리는 씽씽은 다만 건기(乾期)와 우기(雨期)로 나뉘어 지는 변화 없는 기후와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오는 권태를 해소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로 보인다. 때때로 생활의 자극제가 된 부족전쟁과 같이 씽씽은 언제 어디서나 연중 열리고 있다. 가비는 추장대관식 씽씽에 대하여 나에게 말한다. 사실 나는 추장대관식 씽씽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그렇게 싫지 않다. 여러 씽씽 가운데서도 추장 대관식 씽씽은 매우 화려하고 성대하다. 아직도 전통적 부족마을(Ples Kanaka)에는 추장의 위력이 그 무엇보다도 막강하여 이 추장이 죽으면 장남 또는 실력자(부족민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한 사람)가 새로운 추장이 되는데 이때 성대한 씽씽이 열린다. 추장 대관식 씽씽은 부족 전체의 축제로서 많은 양의 바나나를 굽고 얌을 삶는다. 또한 500 키나(약 40만원)를 혹가 하는 돼지를 여러 마리 잡는다. 소보다 돼지가 비싸며 돼지의 소유에 따라 사회적 신분도 달라지므로 돼지를 잡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전 부족민은 늪에 들어가 하루 종일 자맥질을 하여 많은 물고기를 잡아 훈제를 하고, 젊은이들은 야생돼지와 왈라비(Walaby)를 잡아온다. 여자들은 유색 관상엽인 하와이 무궁화(Prangi pani)로 만든 꽃목걸이, 팔찌, 조개로 만든 각종 악세사리, 극락조와 갖가지 새의 깃털로 머리치장을 한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흙이나 숯으로 색칠을 하여 준비가 끝난다. 이렇게 3-4일 전부터 시작한 준비가 끝나면 추장은 행사의 시작을 알린다. 이때부터 빠신 빌롱 툰부나 씽씽(Pasin bilong tunbuna singsing)의 전통의식과 노래가 시작된다. 남녀 모두 웃옷을 입지 않고 아래의 중요 부위만 나뭇잎으로 가린 전통차림으로 춤이 시작된다. 음악이 몹시 단조로운 것이 특색이지만 이 음악에 따라 추는 춤은 다양하다. 통나무를 뚫어 공동(空洞)을 만들고 그 양쪽 끝에 말린 뱀가죽이나 악어가죽을 덮어만든 쿤두의 리듬에 따라 허리를 자유자재로 돌려가며 남자 여자 함께 춤을 춘다. 또 갈대의 잎이나 대나무로 만든 피리, 소라고동 등을 악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씽씽은 잠도 자지 않고 계속되는데 군대의 열병식처럼 자유자재로 변화무쌍하게 종횡으로 오와 열을 바꾸어 가며 흩어졌다 다시 모이고 흩어진다. 수많은 모양을 만들어 가며 춤을 추는데 이때 불특정 인이 한국의 민요나 동요처럼 매김을 하면 모두가 그 노래를 받아 부른다. 이때 춤추는 자들을 위하여 노약자나 아이들은 계속 부아이를 날라준다. 부족의 늙은 몇몇 지도자들은 빠다빠다(Patapata)에서 춤추는 이들을 지켜보며 지도를 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다른 부족의 완톡을 접견하기도 한다. 이 행사에 참관하러 오는 완톡은 부아이, 바나나, 호박, 얌, 타로 등을 가지고 와서 빠다빠다 울타리에 길다랗게 늘어 전시를 한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와 밤낮으로 계속 춤을 출 수 있는 정열과 스테미너는 아마 이들이 즐겨 씹는 부아이에서 나오는 일종의 환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친 듯 싶으면 부아이를 씹고 그러면서 땀이 흐르고 다시 춤은 연결된다. 이렇게 씽씽을 마치고 나면 젊은 처녀 총각들은 짝짓기를 한다. 처녀들이 부끄러워 하거나 또 누구를 흉보지 않는다. 서로 눈이 맞으면 부시로 들어가 성관계를 가지며 날밤을 지샌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부아이를 주는데 이때 총각이 받으면 일은 시작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처녀 총각이나 결혼을 한 사람이든 성은 대부분의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미치는 농구나 럭비와 같은 놀이와 같이 생활의 일부분으로 보인다. 이렇게 크고 작은 씽씽은 나눔과 공유로써 완톡문화를 발전시키고 이들의 부족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하는 구심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추장은 부족을 위하여 돼지와 돈을 기부하여 다시 씽씽을 베풀기도 한다. 만약 추장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따르지 않는 정적은 뿌리뿌리만(Puripuriman)이라 부르는 마법사로 하여금 죽인다. 정적의 소지품이나 대변을 몰래 가지고 와서 주술을 걸거나 마법사가 사육하는 맹독성 뱀을 던져 죽이기도 한다. 근래에는 밧데리 액인 황산을 먹여 피를 토하여 죽인다고도 한다. 뿌리뿌리만이 금기시 하는 구역에는 누구든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만약 그 금기를 파괴하면 죽음이 아니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해야 한다. 현대 과학에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비를 내리게 하는 뿌리뿌리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 이게 신과학이 아닐까? 이날 나는 가비의 만남을 통하여 부시인들은 선입관과는 달리 너무나 천성이 곱고 낙천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웃 언덕마을 심부 사람들을 통해서도 이들의 삶을 차츰 이해한다.이들은 한 두 번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다 보면 차츰 자신들의 주변인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발이나 팔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고 나면 자신들의 완톡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단 완톡으로 인정을 받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적절한 관계 유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지켜야 하듯이, 그들의 완톡문화를 흉내 내려다간 이틀이 못 가서 가진 게 바닥이 나기 때문이다. 개인소유 보다는 부족 공동체의 소유가 대부분이거나 가진 것은 나누어야만 하는 이들 나름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두 세 명의 청년들이 집까지 바래다주는 친절에 놀라기도 한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완톡에게 베푸는 일상의 하나일 뿐이지만. 여기서 완톡(Wantok)이란 영어의 원 톡(One talk)으로서 본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집단을 일컫는다. 이는 수만은 부족과 언어가 만들어낸 독특한 관습의 하나로 오늘날에는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불리어 진다. 그 하나의 예로 형제간이나 친척, 친구에서부터 동향인 또 같은 언어 사용자, 심지어는 외국인이라도 자기부족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 완톡으로 불린다. 쉽게 말하면 친구가 완톡이다. 일단 완톡이 되면 먼저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 또 이들에게 완톡이란 거의 절대적인 신의와 상부상조의 대상이 된다. 완톡에 관한 일이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돕고, 때로는 응수 보복까지 한다. 완톡을 찾아가면 돈, 음식, 그 밖의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고도 경찰 가운데 완톡이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으며, 버스 운전사가 완톡이면 차비를 내지 않는다. 완톡이 교통사고를 당하면 피해자의 완톡들이 사고를 낸 사람을 찾아 보복하는 것이 임무다. 이때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것을 페이백(Pay Back)문화라 한다. 물론 선물을 하면 다시 그들은 그들이 가진 무엇인가 하나 이상을 선물로 되돌려 준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파푸아뉴기니에서 페이백은 오히려 복수.보복으로 해석되는 때가 많다. 받은 수모에는 반드시 보복하며 그리하여 보복전쟁이 부족간에 계속되고 있다. 보복전은 대개 간통.돼지.도둑.의심되는 죽음을 싸고 일어났으나, 오늘날에는 자원개발과 함께 이해관계가 생겨나면서 발생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적이 죽인 후 시체를 그냥 두면 상대방을 만나는 대로 죽이되 시체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만일 적이 이쪽의 한 사람을 죽여 머리를 베어 가면, 이쪽도 저쪽의 누구 하나를 목을 베고, 그들이 이쪽의 친척을 잡아먹으면 이쪽도 그들의 누구 하나를 잡아먹는 것이다. 따라서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 즉시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도망을 가는 것이 관례이다. 이는 어떠한 과실치사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결과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밖에 없다. 수년 전 뉴기니의 고로카 시의 가까운 노상에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정부 장학관 두 명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운전 중 실수로 어린애를 치었는데 애를 병원으로 싣고 가려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은 참사가 일례로 유명하다. 그런데 가해자를 잡아가면 잡아간 경찰관에게 페이백 하기 때문에 경찰관마저도 겁을 먹고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완톡문화와 페이백문화는 부족공동체 생활을 오늘날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완톡의 소유물이 곧 내거시며 또 내것이 곧 완톡의 소유, 완톡 가운데 부자가 있다면 그 완톡집에 가서 바닥이 날 때까지 놀고먹는 자가 있는 반면, 고용을 하면 완톡이기 때문에 임금을 주지 않으며 아예 받을 생각도 않는데 서도 이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완톡과 페이백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북엔빌 반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의 군인들이 양민학살 사건으로 법정에 서고 있지만, 정부 진압군인이 반군 수색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여자나 젊은이들 등 양민을 반군에 협조한 혐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시에서 사병들이 총살을 해도 이를 본 하사관이나 소대장이 제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소대원 가운데 총살을 만류하는 소대장이 언제 어디서 명령불복종자의 완톡들이 죽일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양민들을 희롱하는 과정에 소대장이 소대원의 눈치를 보아 먼저 선수를 치는 경우도 있다고 북엔빌 전투에서 양민학살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한 하사관의 말이다. 그는 수명의 양민을 죽인 혐의로 현재 실직상태로 거리를 떠돌고 있는데 겉으로 보아서는 많은 사람을 죽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가 죽인 반란군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는 말에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같으면 양민학살 혐의로 이미 군복을 벗은 자가 시내를 자유자재로 활보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며, 또 자신 스스로 죄책감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빨치산 잡으라고 지리산에 보냈더니 되려 빨치산보다 지독하게 여자나 겁탈하고 그도 모자라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719명을 집단학살한 거창군 신원사건의 원흉들이 이후 대학총장까지 지낸 아픈 역사가 오늘에 와서야 콩은 콩이요 팥은 팥일 뿐이라며 생색을 내지 않았는가. 완톡과 페이백 문화에 이어 부아이문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부아이를 좋아한다. 부아이(Buai)를 영어로 비틀넛 (Betel Nut)이라 부른다. 이는 빈랑나무 열매인 부아이와 오리나무의 열매와 비슷하게 생긴 다카(Daka), 그리고 조개껍질을 구운 다음 대나무와 함께 삶아 만든 감반(Gamban)이란 흰 가루와 섞어 씹는 것으로 이때 타액과 함께 핏빛으로 변하면서 환각작용을 일으킨다. 약 1-2분 부아이를 씹으면 건강한 부시인도 땀을 흘리며 술에 취한 듯 하면서 힘이 솟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부시인들은 부아이를 파푸아뉴기니 위스키라 부른다. 이러한 부아이를 관공서에서는 씹지 못하게 하나 사무실 주위에는 온통 검붉은 부아이 타액이 널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밥보다 좋아하기도 한다. 20토야를 주면 부아이 열매 하나와 다카 하나를 살 수 있는데 이때 감반은 공짜로 약간 준다. 1993년부터 시장이나 거리에서 팔지 못하게 하나 마을 구석진 곳에서 팔고 있는데 시시로 경찰이 단속을 한다. 우스운 것은 단속반 경찰도 부아이를 씹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부아이를 씹으면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길러주는 탄닌, 칼슘, 비타민 등과 함께 신체기능의 조절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즉 부아이는 다량의 탄닌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동물성 지방과 코코넛의 지방질 식사로 인한 설사를 예방하며 또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할 때 몸을 덥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담배와 같이 중독성이나 무한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습관성으로도 보인다. 한편으론 부아이를 씹게 되면 입안이 핏빛으로 변하게 되며 이 타액을 거리거리에 뱉어놓아 혐오감을 주기도 한다. 특히 처음엔 어디를 보나 서울의 명동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처녀인데 부아이를 씹는 입을 보면 3일 동안은 밥맛을 잃게 되곤 했다. 그리하여 정부에서는 부아이의 긍정적인 면을 알고 있지만 공공장소에서 씹지 못하게 통제를 한다. 외국인이 파푸아뉴기니에 오면 이 생경한 풍습을 보고 체념하기도 하면서 직접 씹어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텁텁한 느낌을 받는데 계속 씹으면 머리가 멍하면서 웃음이 절로 나오기까지 한다. 사람에 따라서 구역질을 하기도 하나, 검붉은 타액을 거리에 뱉을 때 기분이 묘하다. 부시인들은 이 부아이를 파푸아뉴기니 맥주라고 생각하는 한, 한 세대가 지나야 부아이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까지는 대부분의 국민학생들이 부아이 보다는 코카콜라나 맥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19. 마스타 10키나 Okay? 소게리 씽씽에서 가비와 시간을 가지면서 다시 가비와 종종 만난다. 어떤 날은 예전과 같이 가비가 나의 사무실에 와 수다를 늘어놓기도 한다. 매일 아침 영어공부도 할 겸 사 읽은 신문보다 나는 가비를 통하여 파푸아뉴기니를 보다 알고 또 이해의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선화신앙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웃들을 보다 이해한다. 하니와 가비의 말을 종합해 보면, 토착문화에서 주술(呪術)을 신봉하는 종교적 신념체계는 하나의 통합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다. 주술은 각 지역마다 서로 상이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상과 정령숭배에 기초하고 있다. 거의 모두가 과거에 죽은 친척의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주술과 요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이러한 전통 종교의 요소들은 계속 남아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 육체가 부패하고 백골이 된 뒤 매장하고 나면 그 사람은 이미 없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내세의 개념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그들의 대부분은 종교적인 인생관을 가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많은 사람이 병으로 죽거나 부족간의 싸움으로 많은 사람이 비명에 가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에 막연한 허무감은 가졌겠으나 대개는 현세와 내세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은 현실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대인과 달리 자연을 너무나 무서워한다. 이유도 없이 주기도 하고 빼앗아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어린이의 사망률은 높고 튼튼한 어른들도 간혹 뚜렷한 이유 없이 별안간 죽는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를 입었는데도 죽는 수가 있다. 이렇게 이유를 알 수 없자 부시인들은 그 원인을 초자연의 힘으로 돌린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포함한 모든 일은 초자연의 힘과 죽은 자의 정령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믿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정령이 하는 행위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떤 정령은 자기들에게 잘해주고 어떤 정령은 악의를 품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정령을 섬기기에 따른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고.질병.죽음.전쟁의 승패.천연재해.기근 등 모든 것이 악의를 가진 초자연의 힘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이 정령이 하는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사람이 갑자기 앓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적이 주술이나 마술을 써서 정령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병들게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지 안으려면 이쪽에서도 손을 써서 그 주술 또는 마술의 힘을 약화시키는 의식, 즉 대주술(Counter-Sorcery) 또는 대마술(Counter-Magic)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주술은 대개 어떤 물체를 이용하지만 성격이 강한 사나이는 살의만 크게 먹어도 주술 없이 적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미신 때문에 멜라네시아 사회에는 노이로제 환자가 많다고 한다. 1970년이래 10년 이상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남태평양의 브루네이 왕국에서 열대병을 연구 조사 관리한 한국인 백영환 박사는 이렇게 보았다. 그는 자기에게 적의를 품은 자의 주술로 점점 몸이 쇠약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여 병색이 점점 더 짙어 가는 사람들을 간혹 보았는데 이들에게는 현대의학이 무력하기 때문에 주술자를 찾아가 대주술(對呪術)을 써야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주술의 효력은 수천 리 밖에까지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예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산지대의 고로카라는 도시에서 세픽 지방으로부터 온 사나이가 급사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세픽 지방 사람들이 문상하러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 사람이 왜 갑작스럽게 죽었을까 궁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 사람에게 적의를 품은 사나이가 수백 마일 떨어진 뉴브리텐 섬의 라바울에 살고 있는데 아마도 이 자가 주술을 써서 죽게 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떻게 보복을 하느냐 고심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고로카 사는 라바울 출신 사람들이 겁이 나서 경찰에 보호인을 신청했다. 1993년 현재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일간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이들이 쓰는 주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1964년과 1966년 사이에 조사된 보고서가 있다. 뉴기니 고산지방에 들어가 부족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조사한, 일본인 누마자와 교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방법이 사용된다고 했다. 병을 고치는 데는 담배가 자주 사용되는 데 담배 연기가 여러 병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고 경원하는 현대인의 생각과는 정반대다. 환자에게 다가가 환부 가까운 곳에서 담배 잎을 태워 그 연기와 함께 환부의 병이 기氣도 들여 마셨다가 뒤돌아 서서 내뿜는다. 그는 아마도 부시인들은 병은 병마나 악령이 사람 몸에 들어감으로써 생기고 담배 연기가 그런 악령들을 끌어내는 것으로 믿는다고 생각하는지. 또한 누마자와 교수는 식물의 잎으로 만든 즙을 가지고 병이나 상처를 고치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것은 주술이라기보다는 오랜 경험으로 효능이 있는 것을 알고 쓰는 민간요법에 속한다고 했다. 또한 마술의 효용은 질병의 치료에서도 있다. 백인들이 들어오고 나서 크로로킨, 페니실린과 같은 화학요법제의 덕택에 말라리아와 폐렴에 의한 영아 사망률이 현저하게 줄었는데 이런 치료법이 들어오기 전에는 다만 몸에서 마귀를 내쫓기 위해서 마술과 주술에 의존했다. 가령 어떤 이가 속이 쓰리다면 그는 자기와 원한관계가 있는 어떤 자가 마술을 쓰기 때문에 속이 쓰리게 되었다고 믿고 워치닥터魔術醫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원수의 마술로 들린 귀신을 쫓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50토야, 약 4백원만 내면 부족싸움으로 다친 사람도 각지역의 국립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각종질환에 마을의 마술사나 주술사로부터 마술과 주술에 의한 치료가 성행했다고 한다. 1993년 12월, 정부관리들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청부 주술자가 등장하였다는 이야기가 나라밖에까지 전해지기도 했다. 이밖에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 내려온 인분을 둘러싼 미신이다. 부시사람들에게는 인분에 관련된 가지각색의 미신이 있다. 그들은 대.소변을 함부로 보이면 자기의 적이 그것을 가져다 말린 뒤, 가루를 만들어 자기를 해치는 마술 또는 저주에 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렇게 못하도록 자기만이 이용하는 비밀 변소를 가지고 있다. 인구밀도가 희박하고 부시는 어디에나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강가의 사람들은 강물에 들어가 변을 보고 물에 떠내려 보낸다. 또 이들은 자기가 본 대변을 들여다 보아서도 안된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어서 수세식 변소의 사용을 꺼린다고 한다. 변소 시설 하나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남에게 노출되게 소변을 보거나 대변을 보지 않는다. 전통적인 마을에 들어가면 거리에 어린아이의 변조차 볼 수 없다. 도시의 언덕마을의 공동 변소는 냄새조차 나지 않게 뒤처리를 하고 있다. 혹 돼지나 개의 오물은 볼 수 있지만 사람의 그것은 찾아볼 수 없어 한국의 6-70년대의 농촌골목과 대조적이다. 마스타, 10토야 오케이? 혹은 보스, 2키나가 필요해! 이러한 요구는 어린아이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다. 하이! 화이트만, 나 배고파! 2키나 가지고 있나? 또 이러한 요구에는 혹 2키나를 주기도 한다. 굿모닝 빅맨,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운동화도 사고 옷도 살 돈이 필요해 ... 완톡, 너 일하나? 아니, 직장을 찾고 있는 중이라네. 나의 일하느냐는 물음에 대답은 잘도 한다. 까이까이(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지? 완톡집에 살지. 완톡집에는 까이까이가 많아 ... 1천키나만 줄래? 순간 머리에서 번개가 친다. 허허야! 1천키나면 한국 돈으로 80만원쯤 되나? 80만원이 누구집 얼라 이름이나 되나! 난 너를 도우고 싶지만, 네가 알고 있듯이 매일 버스를 타고 오피스에 간다구! 난 코리아에서 보내는 적은 돈을 1년에 한번 받는다네. 미안해, 널 도울 수 없어서! 그래, 너 차가 없지! 너 코리아에 돈을 많이 보내달라고 하지? 완톡, 나 지금 바빠서 가야 돼 ... 다시 만나자! 혹시나 늘어붙을까봐 부리나케 아파트로 돌아와 철문을 굳게 잠근다. 이렇게 거리를 나서면 10토야 20토야, 심지어는 몇 키나씩 요구하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머릿속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기에 생판 처음 보는 외국인을 보스니 화이트만 이니 마스터니 하면서 돈을 주라는 것인가. 아이들이야 이해를 할 수 있다지만 아이를 서넛 가진 어른들이 일은 하지 않고 부아이나 꾸역꾸역 씹어대며 돈이나 내놓느라 하다니 ...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이는 바로 선화신앙船貨信仰이라 불리는 카고 컬트(Cargo Cult)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면서 조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완톡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20세기 초 서구인들이 들어오면서 생긴 선화신앙이 현재까지 잔존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오늘날까지 잔존하는 선화신앙은 제2차 대전 중 솔로몬 군도와 뉴기니에서 전개하던 미군이 이 지역 일대의 사람들이 그때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엄청난 양의 물자들을 쌓아 놓고 물 쓰듯 쓰는 것을 보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어느 물자나 섬사람들의 눈앞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먼 곳에서 비행기나 배로 실려오는 것이었다. 즉 선화나 화물의 형태로 온 것이다. 섬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풍부한 물자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서양인이 시키는 대로 따르게 되었다. 또 기독교의 신앙에 따르면 새로운 부가 자연히 자신들에도 베풀어질 것이라고 믿는 이른바 <선화신앙>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선화신앙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30년경 뉴헤브리덴의 탄나섬에서 존 후람이란 사람에 의하여 이른바 <초자연자>를 믿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 당시 이 섬의 인구 6천 명 가운데 60퍼센트가 장로교도, 30퍼센트가 비기독교도, 10퍼센트가 카톨릭 교도였는데 존 후람이 나타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1천년간 탄나섬을 통치하며 원하는 모든 물건을 줄 것이다 라고 부르짖으면서 이를 추종하는 <후람운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토인들을 잡아 호주의 퀸즈랜드나 휘지의 사탕수수 농장에 노예로 팔아먹는 백인들의 노예 매매를, 또 부족간의 살해 행위를 못하도록 힘쓴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선교사들을 따르면서 백인들이 가진 부가 아마도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에 점차로 기독교에 대한 인상이 좋아지고 믿는 사람들이 다시 선교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태로 발전했다. 그러던 중에 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미군이 왔고 섬사람들은 그것을 후람의 힘이라고 굳게 믿었다. 섬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미군을 위해 일을 해 주었는데, 또 그때는 미군들이 물건을 잘 던져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미군은 가버리고 남은 것은 실망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이전의 통치자인 인색한 영국인과 프랑스인 관리가 나타나 후람운동 지도자를 투옥 또는 추방하였지만 후람을 믿는 추세는 시들지 않았다. 이들의 선화신앙을 더욱 굳게 한 요소는 2차대전 중 뉴기니만 해도 소형 비행장이 1천여 개가 넘는 많은 군용 비행장이 생겨 많은 화물을 하늘로부터 비행기로 날라지는 점과 일부 지역에서 전투 중에 공중 투하한 낙하산에 달린 식량이 부시에 잘못 떨어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뉴기니에서도 식민지 통치자들은 부시인들의 선화신앙 운동으로 많은 골치를 앓았는데, 2차대전 중 마당지방에서 일기 시작했다. 부시인들은 뉴기니에 들어온 일본군을 자기들 조상의 정령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비행기로 화물을 날라다 부시인에게 주고 백인들을 내쫓았다. 그들은 뉴기니인 자신들의 검은 피부를 일본군들이 희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일부 지역에서는 창고를 미리 세워 놓고 화물이 오기를 기다린 곳도 있었다. 그들은 백인들이 화물에 관한 비밀을 부시인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신이 노하여 백인을 징벌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믿기 시작했으며 일본군을 환영하기 위해 음식물을 장만하곤 했다. 그때 생긴 조상의 정령을 대신한 일본군이 자기들의 피부를 바꿔 줄 것이란 믿음, 선화신앙을 현재까지도 그를 흰피부.마스타.빅맨.보스 등으로 부르는가하며 그의 얼굴이나 팔을 만지고 싶어하는 것들에서 엿볼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마당 지방에서는 또 다른 선화신앙이 야리(Yali)라는 자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전쟁중에 야리는 호주의 퀸즈랜드에 있었다. 백인들은 그가 물건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를 공장으로 데리고 가서 물건의 생산과정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허사로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가 그들에게만 비밀 기술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뿐 아니라, 위급할 때는 그들에게 예수가 완제품을 하늘에서부터 날라다 준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뉴기니에서 일본군이 들어와 백인을 쫓아 버린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백인들이 막대한 양의 무기와 식량 기타 장비를 배에 싣고 왔는데, 신이 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단시일 내에 그 막대한 양의 물건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인가 하고 의아해 했다. 이는 어쩌면 철기시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20세기 기계문명에 직면한 부신인들로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야리는 퀸즈랜드에서 공장견학을 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백인 장교의 연설을 들었다고 한다. 과거 너희들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다. 이제 일본군을 뉴기니에서부터 내쫓는 데 협력하여 전쟁에 이기면 백인들은 너희들을 도울 것이다. 양철지붕의 집을 지어 주고 전기 시설도 가설해 주고 자동차.모트 보트 그리고 좋은 옷과 음식물을 줄 것이다. 너희들의 생활은 전쟁후에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야리는 크게 잘못 생각하여 전쟁에 잘만 협력하면 나중에 백인들이 <화물>로 상을 줄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리뿐만 아니라 많은 부시인들이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협력하면 좋은 미래를 약속하겠다는 연합군의 방송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여 믿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야리는 고향에 돌아가 부시인들이 호주 행정당국에 협력할 것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백인들이 약속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야리의 말을 부시인들은 좀 다르게 들어가지고 야리는 호주에서 많은 선화를 보았고 그는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가 정령이 되어 되살아났다. 그는 하나님과 예수를 만나고 왔고 하나님은 화물을 이미 뉴기니로 보냈는데 야리로 하여금 이 물건들을 나눠주게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야리는 퀸즈랜드에서 들은 연설을 굳게 믿었으며 호주인들은 반드시 약속한 선화를 보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하여 그는 부락민들로 하여금 식민지 행정당국과 더욱 협력하게 하고 집 주변을 깨끗이 하고 개인위생을 지키고 돼지는 돼지우리에서만 사육하고 또 변소를 만들어 사용하는가 하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미신을 않고 첩을 두지 않은 등 신생활운동에 앞장섰다. 1947년 야리는 포트 모르스비의 중앙 행정당국으로부터 신생활운동에 관한 지시를 받기 위해 소환되었는데 이때 야리는 전쟁 중의 약속이 이제 바로 실현되는구나 하고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호주정부 관리의 이야기는 정부가 교육 시설. 도로. 보건사업 등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뿐 선화를 줄 계획은 없었다. 그제서야 야리는 퀸즈랜드 연설이 한낱 전쟁 중의 선전공작이며 백인들의 기만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야리의 선교사에 대한 태도는 돌변하여 그들을 사기꾼 또는 거짓말쟁이로 여기기 시작했다. 더욱이 사기 당했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는 그는 사람을 선교사가 말한 대로 아담과 이브의 후예로 믿었는데, 한 백인으로부터 인간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학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즉 진화론을 듣고 보니 그럴듯 하였다. 백인들은 동물이 자기 조상이기 때문에 퀸즈랜드 브리스밴의 동물원에는 원숭이들이 잘 사육되고 있고 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의 거대한 동물의 화석이 잘 보존되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시로 돌아간 야리는 기독교에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켜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이탈할 것을 권하고 선교사들이 사람의 기원에 관해서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가 하는 것을 역설하면서 행정당국이 선화를 배급할 약속을 위반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야리를 추종하던 부시인들은 점차 백인들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사병들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을 구타하거나 폭행을 자행하자 부녀자를 능욕했다는 혐의로 야리는 투옥되어 6년형을 언도 받았다. 이렇게 선화신앙 운동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파푸아뉴기니를 휩쓸었는데 1960년대에 들어와 점차 약화되어 물질적 부는 근면의 결과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1994년 4월에는 모로베 지방을 중심으로 1만 9천명의 추종자를 가진 세계지도자 <왕>, 로키 루람(Lockey J.B. Luam)의 전도사들이 포트 모르스비에 와서 미국과 호주 등 세계지도자들에게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왕이 왔다,며 평화와 행복한 삶을 위해 모두가 동참할 때가 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로키를 비롯해 몇몇 지도자들이 1975년과 76년에 경찰이 체포하는 등 마을을 불사르고 신도들을 추방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 종교 또한 일부에서는 선화신앙의 연장으로 보면서 포트 모르스비를 어서 떠나 숨어살라,며 주문을 달고 있다. 선화신앙은 단지 공짜로 어떤 것을 얻겠다는 욕망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선화신앙의 지도자들이 자기 부족들로 하여금 자존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자기들이 절대로 열등한 인종이 아니고, 백인들과 대등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지 백인이 잘난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 나머지 생긴 사상이라고 보겠으며, 순진한 석기시대인이 백인들의 엄청난 기계문명에 갑작스럽게 직면하게 되면서 비롯된 비극의 소산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이를 선의로 해석하면 백인이 가진 권력과 부에 대한 한없는 선망에서 시작된 현존 사회에 대한 비판운동의 성격을 띤 사회운동이라고 할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뉴기니와 멜라네시아 지역에서 행해졌던 하물숭배(Cargocult)와 천년왕국운동 등의 종교운동은 서구와의 접촉에 의한 전통적 가치체계와 서구문화와의 마찰 갈등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문화충돌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 나는 씨받이가 되고 당신을 절름발이라 부르는 이 누구입니까 당신을 원시인이라 부르는 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위로 받을 이 누구입니까 도대체 당신을 추장이라 부르는 이 누구입니까 당신을 인간이라 부르는 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거둬 주소서 절름발이 도시인 - 베니아이 추장 - 귀국준비 통보를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엥가(Enga)지방에 시장조사를 간다. 시장에 무엇이 팔리고 있고 가격은 얼마인지 등을 엥가도청에 근무하는 현지인 한 명과 함께 조사하게 된다. 파푸아뉴기니에서 가장 큰 부족으로 20만 명이 넘는 엥가 부족은 1948년까지 서구문명과 접촉이 없었다. 마운트 하겐(Mt. Hagen)이라는 지방도시에서 서북쪽으로 130킬로미터 떨어진 분지에서 자급자족하며 비교적 넉넉하게 살아간다. 선교사. 정부 관리. 상인들과의 접촉한지 40여 년이 지나면서 자급자족 농업경제로부터 소비경제 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있어서도 엥가의 전통적 티 씽씽은 성행하고 있다. 해발 2,000에서 4,000미터 되는 고원지대인 이곳에서 고구마를 주로 재배하며 돼지가 중요한 재산이다. 포트 모르스비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가까이 가서 마운트 하겐(Mt. Hagen)에 내려 다시 엥가지방의 도청소재지 와백(Wabag)까지 12인승 경비행기로 30분 넘께 가야한다. 무엇보다 나는 엥가지방의 계속되는 부족싸움을 신문으로 잘 알고 있기에 두려움이 앞서지만 파푸아뉴기니에 사는 동안 마지막이 될 이번 여행의 설렘으로 공항에 내린다. 너무나 초라한 와백공항, 아니 활주로를 걸어 나오니 마침 전화로 연락해 놓은 미스타 오레가 나를 알아본다. 그가 반갑다며 거듭 악수를 하는 통에 손가락이 아프다. 하이, 미스타 박. 일본사람입니까? 아니오. 나는 코리아에서 왔답니다. 아무튼 반갑소! 코리아는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과 중국을 이웃에 두고 있지요. 박은 결혼했나요? 아니, 혼자지만 어머니와 두 분의 형이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은 어디 ... 서울은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 모르스비같은 곳이지요. ...... 만난지 몇 시간이 지난 오후가 되어서도 미스타 오레는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나에 대해 묻다가도 엥가의 자랑을 한다. 엥가지방에서 가장 큰 엥가부족과 이피리, 카틴자, 와피 그리고 렘피나의 부족이지요. 다시 엥가부족은 마이, 래포, 델랜트로 나뉘어 있답니다. 시장에 가서 일을 합시다. 그는 4륜구동 도요타 랜드쿠루즈를 운전하면서 옆에 앉은 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박, 이번 기회에 티 축제와 함께 열리는 선물교환 축제를 보고 가는 게 좋겠는 데 나와 함께 주말까지 함께 해요. 나는 듣던 중 은근히 그의 제의가 반갑다. 책으로 읽은 티며 선물교환 축제를 직접 두 눈으로 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일을 빨리빨리 마친 다음 구경하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이미 일년 넘께 같은 일로 시장조사는 두 시간이 가까이 와백시장에 나온 감자 옥수수 채소 종류를 돌아다니며 보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내일은 포게라 금광과 가까운 라이감시장을 조사할 것을 생각는다. 미스타 오레, 축제기간이라서 인지 시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내일은 라이감 시장으로 갑시다. 미스타 박, 라이감 시장은 여기서 차로 3시간은 넘게 가야되고 ... 그래도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좋겠소. 오늘은 해가 지고 있으니 그만 집으로 갑시다. 그래요. 오늘밤은 나의 집에서 자고 아침에 라이감으로 가지요. 좋아요. 갑시다. 그의 집은 마침 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공무원으로 정부에서 지급한 집이라 방도 두 개가 되고 제법 사람 사는 모습이 난다. 나는 준비해온 식빵과 통조림 햄과 비스켓을 내놓자 그의 아이들이 좋아한다. 구운 바나나와 돼지고기와 바꾸어 먹으면서 기도한다. 제발 설사만 하지 않게 하소서! 다행히 나는 배알이 없이 아침 햇살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그의 아내가 준비해 주는 매트를 깔고 침낭 속에 들어간다. 잠이 쉽게 오지는 않지만 내일을 위해서 좀 자들 수밖에. 아침햇살이 산을 넘어 달려오지만 춥다. 이제 이틀째 맞이하는 출장인데 가지고 온 식량은 반으로 줄었다는 생각에 남은 나흘이 걱정된다. 나와 오레는 비스켓과 뜨거운 와백산 커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차에 오른다. 차가 잘 굴러가야 할텐데! 미스타 오레가 중얼거린다. 가는 길이 험하나요? 가보면 차차 알게 되겠지요. 우리는 3천 777미터의 마운트 하겐산 5부능선을 따라 달린다. 아득한 베랑 아래로 흐르는 라이감 강물이 흰 이를 내보이며 힘있게 흐르고 있다. 강이 사라지면 다시 우람한 부시의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강물소리가 산을 울리고, 나는 강물과 산이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듣고 본다. 어느새 대여섯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뒤로는 뒤로는 짖은 안개에 허리가 삭뚝 잘린 산이 보인다. 오레, 여기서 좀 쉬어 가는 게 좋겠소. 비가 올 것 같으니 ... 잠깐 차에서 내려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달린지 채 20분도 안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금새 장대비로 변해 무섭게 차의 앞유리창을 내리친다. 길이 안보이니 다시 쉬어갑시다! 박, 정말 여기서 쉬어가겠소? 그럼요. 지금 이대로 차가 갈 수는 없어요. 우리는 차안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무섭게 쏟아지는 비는 멈출 생각도 않는다. 얼마나 차 속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는지, 날이 어두워지는 기분이 든다. 산골의 낮은 짧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어둠기가 몰려들자 겁이난다. 오레,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나요? 좋아요. 찾아봅시다. 둘은 비 속을 뚫고 사람 사는 마을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치 앞을 볼 수가 없다. 비도 비지만 안개까지 겹쳐 우리의 시야를 막기 시작한다. 박, 저기 마을, 마을이 ... 오레가 친 고함소리가 가까스로 들려온다. 어디? 박, 이제 됐어! 오레와 나는 여기 사람들이 안내해 주는 집으로 들어간다. 움막집 안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내가 비에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옷을 벗어 불 가까이 가져가는 데 조개목걸이를 목에 주렁주렁 매단 여자 둘이 구운 바나나와 감자를 내민다. 내가 바나나와 감자를 받아 들자 여자들은 빙긋이 웃으며 문을 닿고 밖으로 나간가. 바나나가 마치 군고구마와 같이 달고 맛이 있다. 또 파푸아뉴기니에서 처음으로 먹는 불에 구운 감자는 어릴 적에 할아버지와 구워먹던 맛이다. 박, 맛이 어때? 옷이 거의 다 말라가고 있어요. 마지막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데 밖에서 여자들 소리가 난다. 밖에 누가 왔나봐. 박, 문제없어! 여자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가봐. 기다리긴 누굴 기다려? 누구긴 누구야. 미스타 박, 귀한 손님이지! 지금 무슨말 하고 ... 내가 조금은 놀랜 표정으로 묻자 오레가 문을 연다. 박, 밖을 봐! 여자들이 줄을 서 있잖아. 내가 그가 가리키는 대로 눈을 돌리자 정말 열 명이 넘는 여자들이 서 있다. 박, 내말 잘 들어! 여긴 여기대로 예절과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 그리고 박과 나는 이 사람들의 마을에 지금 있지 ... 그래서? 이 사람들의 방식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야! 온순하고 가장 예쁜 세 번째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저 여자와 오늘밤 함께 자야 한다는 말이야? 어때. 여기에 오는 이방인은 모두가 이들 여자와 하룻밤 자야돼. 왜? 더 이상 묻지 말고 여자들이 돌아가 남자들이 오기 전에 마음에 드는 여자를 ... 내가 문밖으로 나가자 첫 번째 여자가 나의 손을 잡으려 한다. 나는 잽싸게 그가 말한 세 번째 여자의 손목을 잡는다. 그리고 여자를 이끌며 문 안으로 들어오는 데 오레가 첫 번째 여자의 손목을 잡는다. 오레,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이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씨를 받아 종족을 유지한다오. 그러니 ... 지난달에 시장조사로 용키댐 주위에 갔을 때 동양인을 닮은 열 살 가량의 아이들 얼굴이 쏜살같이 나타난다. 억수로 내리던 비는 멈추었다. 짙은 안개만이 마을을 감돈다. 아침을 대접받고 와백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한다. 라이캄 시장조사는 지난밤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엥가족의 한 집단으로 가파른 계곡에 거주지를 정하고 있다. 강에서 해발 2천 100미터의 산마루에 약 5평방 킬로미터도 채 안되는 데, 1천 500미터 고도까지의 경사지에서만 효율적인 경작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은 매일 섭취하는 음식의 대부분을 원시농경에서 얻는다. 그러나 주위 살림에서 서식하는 산돼지, 파충류, 유충 등도 잡아먹는다고 한다. 밭에서는 감자와 타로 외에 얌, 쿠킹 바나나 등 전분질이 많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 외에도 콩, 야채, 사탕수수 등의 다양한 작물이 간혹 보인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은 열대 우림을 축소시켜 놓은 것이라 생각된다. 해발 1,400 미터 이상의 높은 곳에 위치한 밭에는 감자, 낮은 곳에 위치한 다른 밭에는 주로 타로와 얌을 심어져 있다. 밭을 일구려면 먼저 이차 삼림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은 덤불을 제거하는 남녀공동의 작업으로 시작된다. 약 2주 후에는 남자들이 나무를 제거한다. 그 다음에는 산돼지나 집돼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밭 주위에 울타리를 친다. 밭은 울타리를 되도록 줄이기 위하여 한군데에 집중되어 있다. 밭을 덮고 있는 것이 마르면 그것들을 모아 불을 지르며 잡초를 제거한다. 경작 전략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는 사육하는 돼지의 수다. 돼지 사육은 하나의 주기를 이룬다. 한 가족이 한 두 마리의 돼지를 사육할 경우에는 산 중턱의 제일 큰 밭 하나만 경작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작물은 사람과 돼지의 식량으로 충분하단다. 어제 일어난 일들의 중간중간 책에서 읽은 쳄바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지난밤의 일이 추억으로 빠르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아이는 가질 수 없어! 혼잣말을 하고 있는 데 오레가 말을 해온다. 여기서 약 30분만 가면 티 축제가 열리고 있는 데, 보고 가지요? 성인식, 신부값 치르기, 살인에 대한 보상 등 다채로운 의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티(Tee)라고 불리는 예물교환 의식이랍니다. 나는 그와 그리고 어젯밤 여자를 차에 태워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간다. 오레는 운전을 하면서 이들의 생활에 있어서 돼지사육을 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 평상시에는 돼지의 수가 아주 적지만 돼지들은 낮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주인의 집에 돌아와 당도가 낮은 고구마나 바나나를 먹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거나 질병이 생겨 조사에 제사를 지낼 때 이 돼지들은 그 제물이 되기 때문에, 돼지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례의 제물로 바쳐진 경우 환자와 그 친척들은 신체적으로 쇠잔한 시기에(특히 이곳의 일상생활에서는 단백질이 절대 부족하다) 돼지를 먹음으로써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므로 이들에게 있어 돼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 여러 지역 집단들은 계속적인 전쟁과 평화의 반복 속에 살고 있지요. 대개 한 집단이 이웃 초지를 점령하면 전쟁이 터지고, 이때 산발적인 싸움이 몇 주간 계속됩니다. 힘이 서로 비슷할 때가 많아 어느 한쪽이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둔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때로는 어느 한 집단이 패하는 수가 있답니다. 이때 생존자들은 친족원들을 데리고 다른 집단으로 피하게 되며, 기존의 밭들과 돼지들은 엉망이 되어버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들은 이 단계에서는 곧바로 버려진 땅들을 차지하지 못한답니다. 패자의 조상들이 아직도 그 땅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적대적인 시기가 지나면 싸움에 승리하여 자기 영토를 지킬 수 있었던 집단은 의례를 행하지요. 그 집단은 의례과정 속에서 룸빈이라는 신성한 관목을 심으며, 새끼만 남기고 모든 돼지들을 도살하여 조상영혼에 바치며, 대부분의 돼지고기는 전투에 함께 참여했던 동맹자들에게 나누어 준답니다. 이 의례를 지낼 때 전쟁기간 중에 내려졌던 엄격한 금기는 해제되나 그러나 아직도 동맹자와 조상들에게 물질적 영적으로 진 빚은 남아있다고 믿지요. 빚이 청산되지 않았고 아직 위험이 감도는 이러한 상태는 룸빔나무를 뽑고 티 돼지축제를 벌이기 이전까지 계속되는 데 바로 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룸빔나무가 어제 뽑혔답니다. 오레, 축제는 영토의 경계선에 말뚝을 박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알고 있는 데... 티 의식은 몇몇 사람이 나서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근의 마을 사람들까지 함께 참가해 열립니다. 가장 남쪽에서 시작된 의식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여러 마을로 번져갑니다. 전통적으로 7년 내지 10년만에 한번씩 되풀이 되는 이 티 의식은 남쪽 끝에서 시작하여 북단에 이르러 엥가를 일주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2년이 걸리지요. 이러한 티 의식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지요. 하나는 적어도 티 의식이 두 번 순환하기 전에 지난날 아버지가 진 빛을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에게 10년 전에 선사된 한 마리의 돼지 값으로 그의 아들은 이자를 포함하여 돼지를 돌려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답니다. 두 번째로는 예물을 주는 대상에게 투자를 해두자는 생각에, 부족간에는 서로의 안전과 성장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므로 적절한 예물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돼지를 줌으로써 부족간의 틈이 메워지고 의견의 차이가 조정되며 우의가 더욱 돈독해지거든요. 부락에서 가장 실력이 있는 빅맨은 티 의식 며칠 전부터 예물을 증정할 자리를 마련합니다. 줄을 치고 일정한 간격으로 말뚝을 박는데 그 수는 증정할 돼지의 수와 같지요. 이를 위해서 부족간에 미리 협의하여 교환할 예물의 숫자를 정하면, 그리하여 돼지들이 모두 건강하고 크기가 고르고 마리 수가 틀림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는 답니다. 이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든지 씨를 뿌린다든지 수확을 하는 등의 일상적인 마을 활동은 일체 중단되고 오로지 티 행사에만 여러 날을 보내지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참관할 수 있도록 날짜를 엄선하고 날짜가 정해지면 방방곡곡으로 통문을 띄우지요. 오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축제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하니 광활한 대지에 줄이 나란히 쳐져 있다. 그리고 이미 수 백 명이 모여들고 있다. 이 산골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 지 궁금하다. 지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사람의 머리털로 만든 가발과 극락조의 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목에는 큰 조개와 돼지의 이(齒)로 만든 목걸이를 달고 여기에 얼굴은 검게 칠하였고 콧등과 눈언저리를 흰색으로 칠하고 있다. 몸에는 식물성 기름을 발라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선물이 될 수 백 마리의 돼지는 흰 진흙을 발라져 있고, 타조의 일종인 카소와리는 식물성 기름으로 빛이 난다. 안개가 차츰 걷히는, 오전 10시쯤 되자 예물교환 의식장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들은 돼지를 끌고 나와 말뚝에 붙들어 매고 여인들은 조개와 돌도끼를 나른다. 선물을 주는 측의 성인 남자들은 돌도끼를 한 손에 높이 추켜 올리고 줄을 지어 노래를 부르며 위풍당당하게 행진하여 자기 부족의 전통과 힘과 필승의 신념을 과시한다. 돼지 7마리! ... 한 빅맨이 예물로 나갈 돼지의 숫자와 예물 수령자의 이름을 외치자 말뚝에 매어져 있던 돼지들은 하나하나 풀려 나간다. 이런 식으로 수백 마리의 돼지를 주는데, 부유한 빅맨은 한번에 100마리 이상을 예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돼지가 모두 인계되자 카소와리, 돌도끼, 조개와 현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선다. 이런 예물들은 나눠주기 전에 전시를 통하여 그 부족의 힘과 영향력이 과시되도록 한다. 오레의 말에 의하면 이 예물 교환은 부족 전쟁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부족과 부족 사이의 팽배한 대립과 공격성은 때때로 무력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한편 돼지나 수확물의 교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돼지는 이들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단지 식용을 위한 동물이 아니다. 우선 돼지 소유의 많고 적음은 소유자의 신분을 나타내며 또한 일부다처제가 용납되는 부족에서는 부인의 수와도 비례한다. 또한 이렇게 화해의 상징으로 돼지를 주고받는다. 돼지를 줌으로써 부족간의 틈이 메워지고 의견의 차이가 조정되며 우의가 더욱 돈독해진다. 21. 시간여행 1994년 뉴기니섬은 인류문화 박물관. 돌도끼에서 컴퓨터까지 야자수에서 코카콜라까지 무한한 시간여행이라 석기(石器)에서 현대까지. - 1994년 뉴기니섬 - 부시 사람들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며 예술이다. 또 생활 속에 철학이 살아있다. 물론 문학이니 철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그런 고급스러운(?) 말은 없다. 개똥철학이니 강단講壇철학이니, 그 흔한 무슨 무슨 주의의 철학도 아예 없다. 또 그런 글도 없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에 기본적인 의식주가 환경의 덕분으로 해결되었으니 자연 이들의 삶은 노래와 춤과 미술 그리고 자연 등과 시간을 함께 한다. 소위 문명사회의 지식인이 떠벌리는 개떡같은 소리는 한 마디로 없다. 문명사회의 식자들이 보면 이들의 삶이 미개의 원시라 비웃거나 조롱할 것이다. 아니 정치지향적 경제지향적 지식지향적 지식인들이 이미 이들을 비웃었고, 지금도 비정치적 비경제적 무지한 부시맨이라 너털 웃음을 짓고 있다. 무지한 사람은 바로 이러한 치부로 자신만의 울타리를 정신없이 높이 높이 쌓기에 바쁜 도시사회의 지식인이다. 나는 인성의 형성이나 인간의 문화적인 저력에 접목되지 못한 하나의 기계적이며 단기적인 기술의 한 종류로 떨어진, 이러한 무지한 지식인을 서울에서 보았다. 지금도 바다 건너 파푸아뉴기니까지 지식인의 그 잘난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날아든다. 나는 선천적으로 알레르기성을 가진 사람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서울의 지식문화가 이곳가지 침입할 때마다 온몸을 문지른다. 더 강한 것, 더 유용한 것, 더 큰 것을 지향하는 거대지향주의자 지식인들의 앞에서는 파푸아뉴기니의 자연문화 혹은 인간문화가 거지발싸개쯤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도 서울을 떠나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미개의 부시문화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 죽음보다 깊은 절망, 고독했었다. 쪽 빨아 씹어주시면 더욱 커지고, 더욱 꼭 맞는, XX부라보콘이 더욱 맛 좋다며 밤마다 더욱 찾는, 부시에 나는 먹거리를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알고 있는 서울 지식인 선생님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바로 철학이 죽고 문학이 죽고 인간의 삶이 아닌 거대한 지하철 속에 함께 내달리는 죽은 사회가 보면 부시인의 삶 자체가 어떻다면 배를 잡고 웃을 것이다. 보통사람, 보통사회, 정의가 죽은 사회가 더욱 정의를 나발린 역사를 나는 불행하게도 살았다. 문학이 죽고 철학이 사라진 사회에서 문학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다느니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법이 아닌가. 삶 그 자체가 문학이요 예술인데 굳이 그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뉴기니 북부의 세픽강 유역 부시 사람들의 미술세계가 잘 말해주고 있다. 부시 사람들이 남달리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것이 세픽강 유역의 부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조사됨에 따라 서구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지역에 자존심이 강하고 공격적인 부족 집단이 살고 있다는 것을 유럽인들이 안 것은 20세기 초엽이다. 이들의 예술적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많은 서양인들이 찾아왔다. 그들의 작품은 높이 평가받아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에서는 세픽 사람들의 미술 작품을 대량으로 수집하였다. 진기한 정통적인 미술품이 많이 반출되어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이들의 미술품이 고가로 거래되자 외부에서 온 백인들이 작당하여 권총을 가지고 부락에 들어가 미술품을 싼값으로 강탈해서 밀수출까지 하는 사태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백인들 덕분에 요즘의 부시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군인들의 개인화기인 엠 16 소총까지 동원하여 부족전투를 하게 되었다. 대개의 수집품들은 목각이거나 새의 깃을 모아 머리 위에 올리는 장식들인데 목각은 도구가 변변치 않아 거칠기는 하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느낌을 준다.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자연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리얼리즘의 추구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이고 다니지 않지만, 이미 인간과 삼라만상의 사물과 하나된 세계를 목각예술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목각과 같은 개인이 창조하는 미술 외에도 세픽 사람들은 공동작업으로 훌륭한 창작을 하는데 나무와 풀잎만으로 거대한 하우스 탐바란을 세우고 그 웅장한 건물의 전면을 판자로 만든 벽에 자연에서 얻은 각종 도료로 사람 얼굴을 형용한 단청丹靑을 칠해 놓은 뛰어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 하우스 탐바란에서 정령에 제사를 혹은 씽씽을 하는가 하면 성년의 예식도 거행한다. 이곳에서 성년식에 참석하는 소년들이 온 몸에 색칠을 하고 극락조極樂鳥의 깃으로 머리를 장식하는 일련의 행동이 모두 미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오늘날 도시공간에서 볼 수 있는 발광 또는 어거지를 행위예술이라 부르는 데, 굳이 이름 붙이면 행위예술인 셈이다. 머리 장식물의 어떤 것은 높이가 5미터 정도까지 되는 것이 있는데 이렇게 큰 것을 만들려면 새 몇 천 마리는 잡아야만 가능해 보인다. 이런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남자는 친구나 친척들, 완톡을 총동원하여 새깃을 수집한다. 이들의 미술 활동은 어디까지나 의식(儀式)의 준비로서 하기 때문에 금기가 많다. 하우스 탐바란 앞에 거는 판자에 단청을 칠하는 일은 신성한 작업이다. 식물에서 얻은 온갖 색소를 사용하여 하우스 탐바란 앞면의 벽을 기하학적으로 채색한다. 특히 마지막 단계는 더욱 엄숙하게 진행시켜야 한다. 그들이 색칠을 시작할 때는 작업에 임하는 모두가 지금까지 여성과 접촉해 온 몸을 깨끗이 씻고 색칠을 끝날 때까지 성생활을 금한다. 잔치에 참석할 여성들은 역시 자연에서 얻은 식물성 안료를 사용하여 이들의 초콜릿 색깔의 탄력 있는 피부를 노랗고 붉고 푸르게 색칠한다. 풀로 만든 스커트로 엉덩이를 둘러싸는 외에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인들은 자기들의 피부를 조화 있게 채색하고 새의 깃과 꽃을 적절히 써서 아름다움을 다툰다. 이렇게 색칠하는 방법은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디자인에 따라 한다. 씽씽이나 의례가 열릴 때 도시인들이 카메라를 들어대다가는 그들의 규율에 따른 벌칙을 받아야 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몰래 사진을 찍다가 수 백키나를 요구하는 그들을 따돌리는데 진땀을 뺀 적이 있다. 만약 당신들이 당신들의 규율을 파괴하면 벌을 받듯이 우리는 우리의 규율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든지 이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방식대로 벌을 준다 며 화를 냈다. 목각에는 상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가면에 있어서 코와 턱을 길게 뽑아 남근과 흡사하게 만든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뱀과 사람이 하나가 되거나 악어와 함께 한 여자 등 동물과 인간사이의 섹스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목각들을 만든다. 포트 모르스비의 현대식 호텔로비에는 대개 동물과 인간이 하나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목각을 볼 수 있는 데, 이렇게 부시와 현대의 만남에서 무엇보다 먼저 도시인의 추함을 발견한다. 도시인의 마음속에 그들이 말하는 미개의 원시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시 사람들이 만든 목각들은 다 귀신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현대식 목각 도구로 만든 목각물은 그렇지 않지만 재래식 돌칼로 깎아 만든 목각에는 정령을 부어 넣는 의식을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만든 목각에는 그들 선조의 정령들이 깃들이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목각에는 일종의 초자연적인 힘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픽 사람들의 선조들은 전통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생활의 부분으로 목각에 골몰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돈을 벌기 위해 목각에 골몰한다. 현대적인 목각은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좌우균형도 잘 맞으나 가치는 떨어진다. 거칠지만 오래 전에 전통적 도구로 만들어진 목각들이 귀하게 되자 최근에는 모조품도 나돌고 있다. 백인과 함께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부시 사람들의 삶은 상품으로써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목각을 팔기 위하여 현대적 사무실을 돌곤 한다. 이제 정령이 깃든 목각은 찾아보기 힘들다. 삶이 깃든 목각이 아니라 돈을 위한 상품이다. 삶의 부분으로써 예술과 철학과 종교는 얌에 대한 이야기도 잘 말해주고 있다. 얌은 부시 사람들의 주식으로 매우 신성한 식량으로 생각한다. 얌을 많이 수확하려면 주술사를 불러 얌을 심을 밭의 야생 넝쿨을 깨끗이 잘라 없애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악령이 넝쿨을 따라 내려와 얌을 망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남자들은 서로 실력을 다툴 때 누가 얌을 잘 가꾸어 재배하는가를 경쟁하는 지방이 있다. 북부 뉴기니의 세픽 지방에는 큰 뿌리를 가진 얌이 생산되는 데 이 지방의 남자들은 누가 긴 얌을 생산하느냐를 놓고 다투기도 한다. 이른바 얌 씽씽 동안에 누가 얌농사를 잘 지었는지 전시를 하며 완톡들이 남바완(Nambawan), 1등을 결정한다. 길고 큰 얌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금기를 잘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암을 키우는 남자들은 얌을 심기 전에 여태까지의 성교로 더럽혀진 몸을 깨끗이 씻는데서 시작된다. 물론 수확까지의 6개월간 절대로 성교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들은 얌밭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또한 보다 큰 얌이 되어 달라고 밭 가운데 집을 짓고 몇 번이고 주술을 외는 등 여러 가지의 의식을 치른다. 주술에 쓰이는 물건은 남근과 흡사한 긴 돌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생산한 얌을 얌 축제에 출품한다. 재미있는 것은 또 자기 처의 정조를 의심하는 자는 처의 부정의 상대자로 생각되는 남자에게 큰 얌을 던져준다. 이것은 남의 아내에게 손을 대는 플레이보이 같은 녀석은 그것이나 잘했지 이렇게 큰 얌은 못 만들 것이라며 창피를 주는 것이다. 이때 얌을 받은 자는 만일 그가 그런 간통을 했다면 그 관계를 그만두게 된다. 22. 돌아갈 날은 다가오는 데 떠나갈 채비인가 情理의 나눔인가 신 새벽 강남 제비 지지 배 지지배배 적도의 햇살에 쫓겨 먼먼 길을 떠날까. 오늘은 2월 28일 우기의 끄트머리 내 고향 강북 언덕 봄바람 쫓아가는 제비야 강북 제비야 안녕이라 전하렴. - 제 비 1 - 토요일 오후에 오토 교수를 만난다. 그는 파푸아뉴기니 종합대학의 교수다.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그는 턱과 양빰을 덮은 구레수염과 짧은 곱슬머리에 이마가 넓은 전형적인 하일랜드 사람이다. 벌어진 어깨며 짧고 굴은 목은 유도선수 같아 보인다. 오토, 파푸아뉴기니 사람이 파푸아뉴기니를 대상으로 쓴 소설을 읽고 싶은데 ...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토 교수는 자신 없다고 한다. 그는 사회학 교수이지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되려 나에게 질문을 한다. 왜 파푸아뉴기니에 왔나요? 나는 순간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사실 그 질문에 당황했다. 마음속으로 다시 그의 물음을 되새겨 보지만 뾰족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와 똑같은 질문을 일본의 해외 협력대원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 그 일본 볼런티어는 이미 2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다시 1년을 연장한 친구였다. 나의 질문에 그는 첫 번째로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파푸아뉴기니에 살고 있으며, 둘째로 파푸아뉴기니 사람을 위하여 일 하고 있다 며 자신 있게 말했었다. 처음으로 받은 질문도 아닌데 머리가 혼란스럽다. 생각 끝에 나는 여러 준비된 답들 가운데 하나를 불쑥 끄집어 낸다. 파푸아뉴기니를 보다 알고 싶어서 왔지요. 그러면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의 질문은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1년 넘께 살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기에는 매우 어렵습니다. 아니, 잘 모른다는 말이 옳을 것 같습니다. 워낙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보았습지요 박, 그럼 이곳 생활이 흥미 있나요? 맑은 공기와 푸른 바다, 늘 피는 아름다운 꽃, 특히 친절한 사람들로 인하여 매우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라스칼을 만나곤 하지요. 그래요. 우린 지금으로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족한 것이 없었지요. 1987년 까지 만해도 라스칼이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요. 우리는 증오합니다, 서구문명 ... 현대문명이 유입되고 있는 오늘날이 옛날보다 부족한 것이 많은 가요? 오토 교수의 진지한 모습에 그 또한 심각한 투로 나의 말꼬리를 잡는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거리를 두던 모습과는 달리 몸짓을 섞어가며 나의 말을 받아주고 있다. 호주나 영국같이 산업문명이 발달한 나라로부터 그들 문화가 파푸아뉴기니에 들어왔지요. 또한 현재도 기업과 종교뿐만 아니라 정부 및 민간 원조기관으로부터 바람에 실려오는 검은 구름과 같이 실려오고 있답니다. 그런데 현대문명이 들어올 수록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빈곤해진다는 것입니다. 서구문명 혹은 현대문명이 선진문화로 불리는 데 그 선진문화가 부족문명 또는 원시문명이라 불리는 우리의 문화에 발을 내 디딜 수록 우리는 우울해지고 있지요. 잘 알겠지만, 부족단위의 공동체 생활에서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습니다. 물론 나름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절대적으로 배고픈 사람도 또 상대적 빈곤감으로 오늘날의 도시의 삶처럼 허탈한 하루하루는 아닙니다. 지금처럼 라스칼이 많아 철창문화도 없지요. 엘라비취에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언제나 물놀이를 하고 있지요. 말하자면 아이들의 하루는 자연과 더불어 하루해가 지지요. 그 아이들은 하루 종일 자맥질을 하다가 배고프면 망고나무 밑으로 달려가 잘 익은 망고를 맛있게 먹곤 합니다. 아이들의 하루는 자연과 함께 놀다보면 하루 24시간이 너무나 짧지요. 하지만 그 아이들은 셈이나 글자도 모르고 자신의 나이도 모르며, 또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지요. 더구나 컴퓨터 같은 기계들을 다룰 줄도 모른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나날이랍니다. 미소 가득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명세계의 시간으로 보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지요. 최근에 인간의 수명을 3-4백살까지 연장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 하는 말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일본이란 나라에서는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삶에 대하여 쓴 책들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만약 정신과 육체가 청년의 나이로 2백살쯤만 살 수 있다면 반가운 과학이겠지요. 그러나 80세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4백년 아니라 4만년을 살 수 있다고 하여도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그 잘난 현대과학은 인간이 태어나 늙어가며 병들어 죽는 삶의 10퍼센트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나는 엘라비취의 아이들처럼 족히 30년만 살다가 죽고 싶답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3장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느님과 같이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 호주산 트루카이 쌀이나 코카콜라나 컴퓨터가 마치 동산 중앙의 실과가 아닐까요. 간교한 뱀은 다름아니라 양가죽을 쓴 늑대 같은 문명사회의 사람들이라면 지나친 비관주의 자라 말할까요. 그렇다면 지금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같이 볼 수 있겠군요. 그는 나의 창세기 이야기에 자신의 연구실로 가자고 한다. 연구실은 두 평쯤 되었으나 책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오토 교수는 책상에 걸터앉더니만 나에게 의자에 앉기를 바란다. 나는 친구 사이에 느낄 수 있는 친밀감과 함께 그 어떤 부담도 느낄 수 없다. 영어로 나의 생각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지라 만남을 피하기도 하였는 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말이 서슴없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아마도 권위의식이나 배타주의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파푸아뉴기니는 세계의 영어권 방송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그리고 일본방송까지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뱀들이 하루 내내 부시 사람들을 얼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먼저 보고 먼저 라스칼이 되고 있지요. 또 코카콜라, 도시물을 먹은 사람들은 하루종일 백인 밑에서 일해도 코카콜라 한 병 마음놓고 마시지 못하고 있답니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중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된 셈이지요. 밤을 지새며 추던 춤 대신에 땀흘려 땅을 파고 나무를 팔아도 마음대로 쌀을 먹을 수 없답니다. 우린 흰피부(White Man), 마스타(Master), 보스(Boss), 빅맨 (Big Man)이라 부시 사람들이 부르는 사람들을 멀리하지요. 외국인을 흰피부, 마스타, 보스, 빅맨이라 부르던데, 나도 마스타인가요? ...... 오토, 호주는 파푸아뉴기니에 재정원조를 년간 2억 7천 5백만 호주 달러에서 1993/94년 회계연도에는 약 2억 6천만 호주 달러로 감소했지만 프로그램 원조를 증대시키는 등 향후 5년간 총 15억 달러를 원조할 것을 공약하였는데 ... 호주뿐만 아니라 국제기관의 원조는 1989년 총액 2천 558만 달러였고, 1988년 세계은행은 30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3억 키나의 차관, 아시아개발은행에서도 21개 프로젝트에 2억 8천만 키나의 차관을 제공한 바 있지요. 한편 매년 국가예산의 16퍼센트 이상에 해당하는 1억 7천 200만 키나를 선진국의 재정원조로 충당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원조를 받는데도 우리는 호주사람들을 호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일등국가 일등시민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우리에게 주는데 그 돈의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마치 밑 없는 항아리에 물을 계속 쏟아 붙고 있지만, 그 물은 어디로 갑니까 그들의 농장(Garden) 이랄까 남새밭으로 가지요. 결국 물은 그들의 남새밭으로 되돌아가지요. 몇 갑절 되가져 가지요. 옛날에는 총과 칼로 텃밭을 일구어 관리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요. 어디 일등 문화시민이 총으로 정원을 가꿀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그 동안 총으로 모은 돈으로 앉아서 새로운 정원을 만들기도 하며 또 가지고 있는 정원을 새롭게 단장하기도 하지요. 필요에 따라서 말입니다. 우리는 호주로부터 독립했지요. 하지만 호주의 시장이면서 현재와 미래의 자원공급기지의 역할을 파푸아뉴기니가 하게 될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일부에서는 나무를 베 가는 데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들 단체 역시 선진국의 환경보호단체와 연결된 것이 아닌 가요? 환경보호라고요, 공해로 죽어 가는 지구를 살리자는 데 누가 반대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엘라비취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코카콜라 깡통을 보았지요? 우리의 삶의 방식대로 살면 그런 구호를 부르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똥싼놈이 화낸다고 그들이 환경을 파괴하고선 부시 사람들에게 환경파괴의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우습기 한이 없지요. 환경보호! 말이야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수 세기동안 오물을 쏟아낸 결과지요. 산업문명의 결과물이지요. 주제넘은 허황된 인간욕망의 충족가정에서 나온 오물이 아닌 가요. 부자들은 더욱 돈을 모으기 위해 공장을 돌리면서 인간과 자연에 유해한 물질을 생산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소위 자기들이 말하는 가난뱅이에게 환경보호를 위해 공장을 못 만들게 잡다한 규정을 만들고 있지요. 유엔이 그런 일을 앞장서 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이 싼 똥을 흙으로 되돌려 놓는 일로 바쁘지요. 교수의 말은 나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다. 콜라 하나를 마시면 자연파괴를 얼마만큼 가져올까? 물론 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이 직접적으로 자연파괴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간접적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콜라를 만들려면 먼저 공장을 세우고 돌려야 한다. 여기서 공장은 하늘에서 어느날 아침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땅을 골라야 하고 쇠붙이를 만들기 위해 검은 연기를 내뿜어야 한다. 아마도, 따지고 보면 열대의 밀림에서 나무 한 그루 베는 데서 오는 자연파괴 보다 콜라 하나 마시는데서 오는 자연파괴가 배는 될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님들이 자동차며 인공위성이며 핵실험이며 콜라를 마시는데 서는 공해를 생산하지 아니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인공위성 하나 쏘아 올리는 데 얼마만큼의 공해가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자연파괴.기상이변을 가져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저개발국에 산업화를 규제하려 한다면 먼저 그에 해당하는 개발비용을 선진국들이 냉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문디콧구멍에 씻나락까지 빼 묵는다더니,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환경보호 목소리는 이와 별반 차이 없는 것은 아닌가. 코리아에 대하여 알고계시는 점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88서울올림픽으로 알게 되었답니다.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라고 압니다. 참, 지난해 휴거소동으로도 유명(?)했지요. 파푸아뉴기니에서도 호주를 통해서 휴거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원산지가 코리아이더군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 또 하나 생각납니다. 파푸아뉴기니가 파푸아 사이드(Papua side)와 뉴기니 사이드(New Guinea side)로 분리되었듯이 남쪽과 북쪽으로 분리되어 있지요? 특히 일본의 식민통치가 있었지요. 우리의 <북쪽 아시아를 보라!>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아시아로부터 나라살림을 배우려고 합니다만 기득권을 가진, 특히 호주사람들 압력이 대단하지요. 오토 선생님, 영원한 삶이랄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 종교 아니 신과학세계를 믿지 ..... 종종 신문에는 한국의 좋지 못한 소식만 실렸다. 호주방송과 마찬가지로 달갑지 않은 소식은 대문짝만 하게 내갈겨 놓은 신문을 보고 한국사람이면 얼굴을 붉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말머리는 돌린다. 오토 교수는 나의 영생.천국.불로불사.구도.환골탈태. 유토피아.후천개벽.지상천국.네겐트로피와 무환한 생육.갱생.윤회.영혼불멸.메시아 왕국. 기를 흡수한 불로불사.선도를 통한 불사영생 등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생명에 과한 이야기를 하자 고개를 내둔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2마일 언덕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 되씹어 본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파푸아뉴기니에 살고 있는 자신의 위치를 곰곰이 생각한다. 그렇다. 파푸아뉴기니는 가슴이 볼록볼록하고 엉덩이가 온달만큼 나온 부잣집 외동딸이다. 그래서 이 외동딸을 지구라는 마을의 이웃집 때묻은 어른들이 넘보는가 하며 어느날 밤에는 눈깔사탕을 들고 담장을 넘곤 한다. 어찌 보면 근년에 들어와 논밭에서 금 은 동 석유에 가스까지 쏟아져 나오니 세상 사내 누군들 이 외동딸을 구슬려 떡고물이라도 훔쳐 먹으려고 아니할까. 매일 바나나 구워먹고 망고 먹다보니 좀 새로운 것을 먹고 싶은 참에 눈깔사탕, 바다 건너서 온 트루카이 쌀을 한 번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어떤 한 사내가 엉덩이까지 만저주어, 처음에는 싫었지만 그도 몇 번 횟수를 거듭하니 가슴까지 어루만져 주기를 은근히 바랬지만 그놈은 결코 시원하게 하기는커녕 되려 답답하게만 하였다. 어젯밤엔 한 아이가 전차에 받친 놈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침대까지 올라 왔었다. 처음으로 겪는 일이라 어리둥절하고 그짓이 무엇인지 몰랐어나 아침이 되니 조금이나마 그놈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태양아래 나오니 이상하게도 지난밤 그놈을 조심해야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을 할 수록 또 다른 사내들도 마찬가지로 자세히 따져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없는 살림에 남의 돈을 빌려 눈깔사탕 하나를 가져와 나누어 먹자고 하는 사내도 물론 지난밤 그놈과 같은 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난 너를 존경하기에 내가 가진 이 하나를 나누고 싶어! 나에게 노란 똥빛이 나는 이것 하나주면 나도 이것을 너에게 줄 수 있지. 우리는 지구촌 가족이 아니니? 난 이웃과 나누고 섬기며 살고 싶어! 여기 사탕을 하나 가지고 왔어! 자-, 여기 ... 순간, 머지않아 눈깔사탕 하나 받아먹은 죄(?)로 X죽고도 빰맞는 꼴이라는 속담대로 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간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고자 하는 게 하나 있다. 다름 아닌 0이다. 옛날 사람들은 X라고 부른 모양이지만, 세월 따라 이도 변했는지 국민학생은 0은 1보다 작은 숫자, 눈깔사탕을 내미는 사내는 구멍이라 칭(稱)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내눈에는 부시(Bush), 부족하거나 넘침이 아닌 상태이며 또한 순수 혹은 순결을 의미한다. 나의 0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요즘의 세태가 말하는 구멍이니 입이니 하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철학자나 정치가들이 말하는 0과도 매우 다른 것 같다. 어느 소설가는 그것을 라 부르면서 X자식 이라 말했고 모교수는 여자의 샘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0은 샘도 아니요 구멍이나 입도 아니며 더구나 X도 아닌 부시임을 강조한다. 언젠가 키가 크고 노란 머리칼에 흰피부의 사내가 대낮에 담을 넘어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때 덩달아 검은 머리카락을 바짝 세우고 찾아온 불청객의 사내에게 하마터면 0까지 잃을 뻔 했다. 가까스로 0만은 지켰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들의 총.칼은 무시무시하다. 그런 와중에서도 0만은 지켜 오늘까지 이르렀다. 안줄라카믄 죽는기라! 그거야 뭐 마음 두기 나름 아닌가. 주라면 홀딱 줘버리면 목숨은 건지는 기라. 그놈들은 한 두 놈도 아니고 거기에다 무시무시한 불덩이까지 들이대고 주라는데, 아마 그런 상황에서는 예수도 주고 말았을 거야. 아니 예수도 바리새인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었지. 있는 것 없는 것 팬티까지 벗어 탈탈 털어 주면 되! 홀라당 주고서 집에 돌아오니 그제서야 알았지. 팬티도 입지 않고 큰길을 쏜살같이 달려왔다는 사실을 말이야. 생각하면 분하고 원통하지만 그때 와서 팬티를 입는다고 노팬티로 달려온 사실이 지워지나. 그놈들을 국제경찰에 넘기려 했지만 보복이 언제 어디서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목숨만 건진 것 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지. 제기랄! 잊어야 할 방도밖에 없제. 죽을 때까지 안 잊혀지겠지만 우짜겠노, 속히 잊어야제. 머리통에 총구가 와 닿자 아무 생각 없이 하늘 높이 만세를 불렀지. 그래 얼마든지 줄 테니 쏘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했지. 살려주더만. 아마 세상에 소리나지 않는 총이라도 있다면 그놈은 나를 쏘아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 분명하지. 너도 주라면 별 수 있나. 나마냥 주고도 산다면 그 방도를 선택해야지. 요즘은 스스로 미련 없이 주는 사람도 있더라. 현명한 사람들이지. 미련 없이 아낌없이 주길 바라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건이 아님을 명심하길 바란다며 사랑하는 그니가 라스칼을 만났을 때의 즉각 조치 요령을 이렇게 알려주었다. 더이상 야자나무 그늘아래서 소꿉놀이나 물 속에서 하루해를 보내서는 안된다.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면 어머니 품속 같은 습속으로 달려갈 수 없다. 사냥터는 이미 황톳빛으로 아니면 사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꽃과 새와 물고기와 놀기보다는 구구셈을 외워야 한다.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루종일 시멘트 가루를 마시며 힘을 써야한다. 어서 빨리 주어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이 살아있다. 이를 악다물고 있는 것 없는 것 파가도록 해야한다.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고 쌀을 바다건너서 가져와야 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웃는 얼굴 속에 숨은 무서운 총알을 헤아리며 피할 궁리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말을 곧이곧대로 안들어면 언제 그놈의 총알이 나의 심장에 박힐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처녀로 사는 것 보다 성숙한 여자로 살 수 밖에 없어, 날밤으로 담치기 하는 사내들의 등살을 피하기 위해선 사내들에게 줄 수밖에 없는 것은 주며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그렇게 지켜온 0마저 먹혀버렸다. 코카콜라를 마셔야 한다. 이미 잃어버린 0을 찾아서 떠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렇다면 끝닿는 종착지까지 미친놈처럼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세상살이의 처세술을 배워야 한다. 삼국지도 읽어야 한다. 금도 내다 팔고 석유도 팔아서 콜라를 사 마셔야 한다. 부시는 더이상 부시로서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부시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을 찌르는 이름모를 나무, 산새들이 아침을 여는 노래에 하루가 시작된다. 빨주노초 파난보 달려오는 아침햇살을 등에 지고 바나나와 타로를 굽는다. 여기저기 아침을 준비하는 아낙들 사이 돼지가 꿀꿀거리며 다닌다. 부시에서 사내들이 바나나를 등에 지고 돌아온다. 야자나무를 오르든 아이는 돼지가 야자나무 밑에 오자 오르다 말고 다시 내려온다. 떨어지는 야자에 맞으면 돼지가 죽기 때문이다. 평화스런 아침, 해는 어느덧 하늘가운데서 유유히 햇살을 쏘아댄다. 지난밤 부시에서 사랑을 한 아린과 뉴린은 아직 자고 있다. 무엇을 먹을까? 부시에서의 삶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손 내밀면 부시 어디에서나 먹을 것이 있다. 물론 무제한 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부시, 자연이 준 선물만큼은 누구든 마음 끝 먹고 사랑할 수 있다. 굳이 먹기 위해 땀흘려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노력이나 저축이란 말이 없다. 필요하지 않은 말이 있을 리 없기 대문이다. 말은 필요에 의해서 생성되지 않았는가. 사각 콘크리트 벽속에서, 칙칙한 도시의 거리를 헤매면서 사랑이 뭐니, 삶이 어떻고, 무엇을 먹을까, 버스는 제시간에 올까?, 저축을 해야되는데 ..., 교통사고로 누가 죽었다나, 월급이 친구에 비하면 적다, 오늘은 야근을 해하되!, 시간이 없단 말이야, 도대체 사장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 요즘 정치는 어때!, 신도시에 아파트 분양이 있다는데, 이번 일요일에는 교외로 갈까 교회로 갈까?, 지하철 공기가 말이 아니어 소음도 크고, 주말에 산에 가고 싶은데, 이 잡다한 생각들을 해야 현대인으로서 대접을 받는다니 내 고향 서울 사람들이 불쌍하다. 산과 강 그리고 바다, 부시의 어디를 가도 먹고살기 위해 자신을 기만하거나 나 아닌 나의 모습을 나타내거나 이웃에게 거짓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권력이나 돈에 막대한 정렬을 쏟아 부를 필요가 없다. 세상은 우습게도 산에 산새, 들에 들꽃, 강에 물고기, 밤하늘 별과 달, 아침 풀잎 끝 맺힌 이슬방울에서 느낄 수 있고 또 느껴야 함에도 그 어떤 느낌도 가질 수 없는 도시인들이 부시 사람들은 미개의 원시인이라 말한다. 누가 누구를 구원해야 하는가. 자신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서 이웃을 빨가벗기는 꼴이 아닌가. 부시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축제를 열고 또 함께 사는 형제들을 위해 소유물(?)을 얼마나 내놓았는가 하는 척도에 따라 추장으로 추대된다. 이렇게 오른 추장은 당대로 끝나며 세습되지 않는다. 여기서 보아도 5학년이니 No대통령 시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생각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부시의 추장은 전전하는 전대통령이나 No대통령과 같은 절대적 권력이 없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진리가 될 수 없듯이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협박.공갈.사기.위협, 고문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마을의 어려운 일을 해야하는 등 형제들의 시중을 들어야 할 따름이다. 나의 말에 2해는커녕 5해를 가지는 이들도 있을 것 같아 여기서 부시에 대하여 다시 말하려 한다. 부시(Bush)란? 물음에 당신은 먼저 부시맨(Bushman)을 생각하겠지. 그리고 미개의 원시인이라 말하겠지. 그래 그 잘난 현대인이 안방까지 끌고 와 실의와 절망적 삶을 잠시나마 잊으려고 했었지. 인간의 본성까지 미개의 원시로 몰아 붙이면서, 진작 추악한 자신들의 미개한 원시성을 알아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맨에게 동정 아닌 싸구려 동정을 보내곤 했었지. 사랑은 무엇이고 참사랑은 또 무엇인가. 진짜 참기름과 참기름, 돈과 권력, 상대적 빈곤감, 로봇인간과 산업사회, 세뇌교육과 2중사고, 섹스와 마약, 인간성의 상실이니 운운하면서 현대사회를 뽐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하여 자연의 순리,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을 미개의 원시인인 부시맨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면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도 미개의 원시인이었다. 과연 첨단과학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부시 사람들이 부시 사람들인가. 아니면 산업사회의 그들이 부시 사람들인가. 부시는 영어로 Bush이다. 관목숲 또는 처녀림과 같은 숲을 말한다. 여기서 관목 숲은 인간의 발이 닫지 않은 숲이다. 말하자면 처녀성을 가진 순결한 여인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처녀성의 신비스럼과 같이 말이다. 사람의 발자취가 드문 두메 산골에 들어가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부시에 사는 나는 어떨까? 부시에서 나의 하루는 별과 달과 해와 새와 물고기와 자연의 기(氣)를 찾아 끝없이 떠나며 즐김의 연속이다. 내년에는 승진할 수 있겠지? 점심은 어디에서 무엇을 얼마짜리로 먹을까? 그 남자는 나를 꽁초 버리듯 뒷골목 어디쯤에 내팽개치지 안을까? 여자는 항구이니 배인 나는 오늘밤 어느 항구에 닻을 내릴까?(배라면 국제 호화여객선은 못돼도 원양어선 정도는 되어야제!) 항구는 비에 젖었겠지? 항구를 떠나 공해 상에서 떠돈지가 몇 일인가? 출근길은 막히지 않을까? 혹시 짭새가 낚아채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아니다. 그저 해뜨면 망고나 야자나무 아래서 바다와 하늘과 산과 마주하며 밤이면 사랑에 취하여 잠자는 것이 일이다. 배고프면 망고나무, 목마르면 야자나무, 술 마시고 싶으면 부아이 나무 밑에 가면 된다. 혼자 자는 밤이 추우면 이브와 함께 자면 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부시 사람들에게서 창조적 능력이나 진보와 같은 말들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속된 십원짜리까지 내 씹어가며 비웃기도 했었다. 생각하면 그때는 KS규격 표준처럼 왜소해진 현대사회의 도시인의 눈으로 인간의 동물적 원시성과 미개의 고통을 추적하면서 고독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야말로 잔인한 동물적 근성이 당당하게 활보하는 아스팔트 거리에서 일생을 타율적 삶으로 끝내는 도시인,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이들이 종교만이 인류.인간해방의 유일한 길이라며 낮도깨비 춤을 추는 군상, 자신의 발견하면서 더욱 고독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고독은 절망으로 달려갔다. 이제 나도 부시 사람들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가지면서 좌절이 아닌 사랑을 배우기 시작한다. 환희 넘치는 영원한 삶, 부시(에덴)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마늘 두 통과 쑥 한 줌을 가지고 동굴 속에서 인간이 되고자 꿈꾸었던 곰과 같이! 23. 실낙원의 봄을 찾아 망고 익어 떨어지면 먹으면 되지요 모든 것 문제없소 행복하게 기다려요 내일도 해가 뜬다오 빨리빨리 사람아 - 멜라네시안 웨이(MELANESIAN WAY) - 에디나는 나를 추장에게 소개한다. 추장은 뭐라 말을 하면서 나를 두 팔로 감싸안는다. 에디나의 몸짓으로 보아 추장이 나를 반긴다는 표시라 생각된다. 에디나의 친구들이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달려와 나와 추장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그녀들은 계속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녀들의 미소 속에서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신기한 동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두렵거나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되려 고향에 온 느낌이 들어 이상하다. 마을은 에디나의 가슴을 보듯 시원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부족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몸짓 발짓으로 최소한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자 더욱 이해하지 못할 현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추장은 마을과 307명이 살아가는 방식들을 이야기한다. 추장이 설명을 할 수록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초월적이랄까 마냥 신비롭게만 들릴 뿐이다. 내가 추장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아침이 오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에디나가 말한다. 그리고 추장은 밤이 왔으니 에디나를 따라 가라고 한다. 에디나와 함께 나는 통나무로 만든 추장의 집에서 나왔다. 달빛아래 물안개가 노천온천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에디나는 나를 물 속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한다. 그녀의 앞에서 벌거숭이로 서 있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곁으로 간다. 에디나는 물안개 속에 가물거리는 달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다. 왜 그렇게 웃는지 궁금했다. 말이 통해야지 물어보던지 말든지, 얼떨결에 나도 따라 웃는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 야자나무 꼭대기에 걸린 달을 바라본다. 물 밖으로 나온 에디나는 촉촉이 젖은 손으로 나를 새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바라보더니만 가슴을 만진다. 에디나의 손길이 닫자 나의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찌르르 떨린다. 물방울이 그녀의 가슴으로 타고 내린다.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기 전 잠시 그녀의 가슴 끝에 머뭇거렸다. 풍만한 가슴으로 허리는 날씬해 보인다. 균형 잡힌 몸이 달빛에 빛난다. 엄밀한 곳은 온천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가려 주지만 달은 야자나무 꼭대기에서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 보고 있다. 첫경험의 추억은 땅속까지 간다고 했던가. 에디나, 그녀는 저 달이 사라지고 해가 숲 속에 나타나면 추장이 올 것이라 하면서 둘만의 숲속여행을 떠나자며 그의 손을 잡는다. 달빛이 둘이 가는 곳마다 길을 환히 밝힌다. 간혹 야자나무와 바나나 잎에 달빛이 가려 길을 분간할 수 없을 땐 에디나가 나의 손을 잡아 발길을 재촉한다. 바나나가 발에 밟힐 땐 꼭 뱀을 밟은 것 같아 내가 놀라자 그녀가 자신의 가슴으로 나를 감싸안는다. 그녀의 가슴에 맺힌 물방울이 채 마르지도 않았음을 나는 느낄 수 있다. 바나나와 야자나무 숲을 지나 냇물이 소리내며 흐르는 곳에 왔을 때 그녀는 말문을 다시 연다. 왜 그런 것(옷)을 걸치고 있느냐? 예상 밖의 물음에 나는 시원하게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저 나는 입고 있는 바지를 한 번 만져 보면서 피식 웃는다. 국민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10년 넘께 그 많은 예상문제를 풀었는 데 적중률을 따질 수조차 없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면서 옷을 만지며 자기같이 벗으라고 한다. 나는 에디나의 몸짓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지만, 달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본다. 에디나는 그렇게 머뭇거리는 나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더니,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의 바지를 벗기기라도 하듯이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한다. 달빛이 더욱 환하게 빛난다. 그녀의 오른손이 나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잡는다. 살과 살이 맏닫자 나의 몸은 불덩이 같이 뜨거워져 간다. 가슴이 뛰고 눈앞이 가물거린다. 달과 별이 사라지면서 열대의 밀림 한가운데서 밤은 훨훨 타오르기 시작한다. 대지의 온기가 어린 바나나 잎을 통해 스며옴을 느낀다. 이름 모를 촘촘한 나무 사이로 별이 간간이 보인다. 하늘의 별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것 같다. 달은 바나나 숲 한 가운데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녀가 다시 반듯하게 깔아준 바나나 잎에 누워 별을 헤아리며 제정신 아닌 정신을 되찾으려 한다. 꿈인가 생시인가 ... 이미 내가 시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내가 빌레름산을 1994년 7월 21에 올랐었다. 활동임기만료인 오는 9월 서울로 돌아오라는 귀국연락을 받아두고, 귀국후 다시 무슨일을 할까 궁리하다 떠난 여행이다. 눈 덮인 적도의 해발 4천 691미터의 정상을 향해 포트 모르스비에서 5명이 탈 수 있는 경비행기로 카이난투(Kainantu)에 내려 마을에서 하룻밤을 잔 다음, 이틀동안 안개 속을 헤맨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에디나를 만났고, 그녀는 자신의 마을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추장 다알다, 내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즉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불변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원한 삶을 추구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 그럼 앞으로도 당신들은 영원한 삶의 길을 찾아 외로운 길을 떠나겠군요. 나의 말을 환한 얼굴로 쫑긋이 귀를 세워 듣다가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말한다. 에디나를 만나고부터 다알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이들의 삶의 신비를 신비로만 접어둘 수 없어 나는 이들의 영원한 삶에 대하여 그에게 물었던 것이다. 언젠가 한 잡지에서 코카서스 최고봉 엘부르스산에 사는 발칸시아인들은 여든 살이 넘도록 등산과 사냥, 술과 섹스를 즐긴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해발 5천 여 미터의 코카스산맥 일대에 사는 50여 민족 1천만 명 가운데 1백살 이상 노인은 6천 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훈자라는 파미르 고원에 있는 한 이슬람 마을은 히말리야 산맥의 해발 6천여 미터에 벼랑을 깎아 만든 캐라코람 하이웨이를 차로 20시간 넘게 달려 올라가면, 3-5세대(世代)가 한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 부락으로 이들은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흙탕물을 마시면서 오래오래 살아간다고도 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영원한 삶의 추구에 대한 시원스런 문제의 답이 없다는 사실에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런데 현대과학이 이미 뉴톤역학의 종언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으로 시작되어 절대성이 붕괴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 또한 물질의 개념이 생겨나고 있다며 부르짖고 있잖은가. 특히, 여기 다알다부족 사람들의 삶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 말하자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보편적 종전의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탈출 시도가 널리 확대되고 있다는 말인 것 같은데 ... 질문에는 답이 반드시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존재하지요. 보세요! 인간의 영원한 삶의 길을 여기서 볼 수 없나요? 그쪽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현실적으로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신화적으로만 믿는 모양인데, 우리 다알다 사람들과 매우 다르군요. 무엇보다 먼저 그런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어야 현실을 현실대로, 제대로 볼 수 있겠군! 번개처럼 나의 어린 시절이 지나간다. 찔레순. 송구. 밀찌울. 겨떡. 칡. 도라지. 머루. 다래. 도토리. 쑥떡 등, 요즘은 건강이니 맛이니 추억을 찾아서 귀하게 먹는 것들이지만 무엇이든지 먹어야 살 수 있었던 가난한 시각 시각들이 지나간다. 나의 유년시절 밤하늘 보름달을 바라보며 저 달에는 지금 흰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던 할머니의 이야기에 배고픔을 달래려 했던 추억이 되살아 났다. 세상이 그 강팍한 보리고개를 넘어 풍요로움의 80년대로 가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고 또 바다건너 어디메쯤에 부자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단지 할머니의 말대로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떡방아를 날마다 궁덕궁 궁덕궁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할머니에게 말했었다. 할머니, 저 달에는 암스트롱이라는 바다건너 사람이 가 보았는데 토끼도 떡도 없대요. 나는 이렇게 할머니의 말을 부정했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배고픔 속에 살아갈 것 같던 그날의 보리고개도 어른이 되가면서 또 누구나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땀흘려 일하다 보니 정말 그 부황든 세상이 전설 속의 이야기로 흘러간 것이 사실이다. 다알다의 말이 더욱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 태어난 생명은 자연섭리를 따라 살면 누구나 다 천명天命을 살 수 있지요.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읽은 이야기 같다. 허준이라는 명의의 깊은 철학과 넓은 경험이 응축되어 이룩된 동의보감에 마음이 우리 몸의 주인이라면서, 만물을 육성하는 황토黃土라고 하는 황정은 장생불로를 간판으로 하는 신선술神仙術에 최고의 보약으로 ... 옥념이라는 신선은 이 황정을 먹고 338세에도 청년의 용모를 지녔고 윤첩은 황정의 꽃을 계속해 먹어 수백 세를 살았다고 했었다. 또 누구는 황정을 장복하고 승천하였다고 했다. 그럼, 추장은 결국 언젠가 죽는다는 말입니까? 천명이라면 120살 가량 사는 게 ... 문명사회라고 하는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당신처럼 성격이 급하나요. 빨리빨리 사람들은 죽음도 빨리빨리 인가요. 그렇게 급해서야 어디 죽고 사는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괜히 어렵게 이끌어 가는군! 다알다 추장은 나의 이야기에 쐐기를 박는다. 그는 말로써 백 번 설명하는 것 보다 한 번 눈으로 보는 게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깨달을 수 있다며 에디나와 함께 다알다 마을을 둘러보라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성경에서 신과학까지 <불노불사不老不死의 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밤새도록 들은 적이 있는데, 다알다 추장의 말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서는 다알다 마을을 둘러보고 싶은 맘이 없다. 사실 나는 그때 불로불사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는 흘리며 허튼 소리라고 비웃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여기서 생생하게 되살아 날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삼신산의 불로초에서 시작된 불로불사의 길이란 이야기는 대충 이러하다. 제자백가의 숱한 철학이 분분했던 춘추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구축하고 분서갱유와 같은 무모함을 저지르며 방탕한 사치생활을 하다가 만년에 이르러 죽음에 임박했음을 느끼고 도가사상에 심취했다. 도가의 신비에 빠진 그는 한 번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삼신산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남동녀 500백 쌍을 한반도에 보냈다. 사기史記에도 동쪽 발해에 신선들이 살고 있는 신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불사하는 선약이 있다 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격암유록에도 죽지 않고 영생하는 정감의 예언을 아는 자는 살 것이요, 모르는 자는 죽으리라 고 하면서 영원한 삶의 길을 언급하고 있다. 선인은 영원한 꿈과 낭만의 대상으로,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불로불사를 달성하고 안개를 들이마시며 유유히 산다. 속세에 있으면 사람을 모르고 지내며 평상시는 도자기나 그림 속에 숨어들어서 거기를 거처로 삼고 예쁜 여자와 맛있는 음식과 부의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도 그것들 전부에서 떨어져 있다. 술術을 쓰면 기氣로부터 생기는 분신을 달려서 삽시간에 천리를 내왕케 하고 종이를 산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다시 기를 모아서는 모습을 나타내고 흩어져서는 허공에 없어진다. 이러한 불가사이하고 현묘한 세계에 살고 있는 신선神仙이라 불리는 초인이 여기저기의 산에 살며 때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술을 전했다는 이야기다. 또 그들은 하나 먹으면 금방 선인이 된다는 선단仙丹을 주기도 했다. 현대인으로서 보면 선인의 술은 꿈나라의 일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나 지금도 중국과 대만에서는 구름을 흩어지게 하고 바람을 일으키며 기를 길러서 만든 분신을 멀리까지 보내는 선인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파푸아뉴기니에 비를 내리게 하는 뿌리뿌리만과 같이. 불로불사, 생명의 영원성에 대하여 많은 철학자나 성인들도 고민하여 오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현세만의 것인가 아니면 만약 존속한다면 영원한 것인가, 또 어떤 상태로 존속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생명의 영속의 열쇠가 되는 죽음의 문제에 집착했다. 인간이 죽음에 따라서 육체가 무기물로 환원했을 때 생명 그것도 동시에 소멸해 버린다고 하는 유물론적 사고방식과 또 하나는 유심론적인 생명의 불멸로 나뉘어 진다. 인간의 신체는 사후 무기물로 환원되는 것인데 그런 육체적인 죽음을 가지고 생명의 끝이라고 하지 않는 점은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조로아스터교, 거기에 유태계 종교는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이른바 고등종교는 어느 것이나 생명이 죽은 후에도 존속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의 신앙에 따르면 죽은 자의 부활한 육체나 최후의 심판의 순간에 이따금 살아 있는 인간의 변용變容한 육체는 우리가 늘 눈으로 보아온 인간의 육체와는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육체는 바울의 말에 따르면 영적육신이고 예수가 부활 후에 재림했을 때의 육체가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이것은 최근 성모 마리아의 피승천설이 교리화 되어 마리아의 육신은 승천했다고 하는 예수의 육신과 같이 영적 육신이고 우리들 인간의 경험에 비치는 현상으로서의 육체와는 다른 것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남전불교 내지 소승불교에서는 인간의 욕망의 보금자리라고나 할 육체를 멸滅하지 않으면 열반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여러 종교의 사후의 생명관을 대별하면 불교와 힌두교 등에서 풀이하는 윤회설과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영혼불멸설로 나뉘는 셈이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우리들이 심신통일체로서 눈에 익은 인간의 존재 가운데 육체면의 분해가 따르는 것이지, 실재 그 자체에서 보면 실은 인간의 지적 착상력의 한계에서 생기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구극의 실재 내지 공空에 관한 의문은 공간이라든지 시간이라든가의 관점에서 공식화 해 보았자 회답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이란 과연 영속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공간이라든가 시간의 기준에서는 답할 수 없고 공 내지 영원의 개념에 의해서 비로소 답할 수 있다고 했다. 신약성서가 스스로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는다고 말했을 때 그래도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방법 가운데, 조화된 세계 즉 우주를 말한다. 이 우주는 로고스(이성)의 법대로 조화된 세계라고 보는데 사람이 만일 이 우주의 조화원리인 이성에 따르면 이 우주는 자기 자신의 가정이 되어서 가정에 안주하는 평안히 있을 것이 그 하나다. 만일 그 이성의 법에 따르지 아니하면 이 우주는 가시밭 같은 세상이 될 것이요 나아가서는 사람에게 원수로 적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주의 조화원리인 이성에 복종하는 데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곧 육욕과 혈기(Passion)를 죽여 부동심不動心을 기르는데 자기의 구원이 있다고 한다. 이를 중세기 스콜라 철학에서는 자연법, 자연속에 내재하는 법이라 했다. 말하자면 만인은 평등하다는 인권에 대한 주장과 일부일처제도는 인간의 강륜(剛倫)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근대인들은 이러한 자연법이 아니라 실증법(Positive Law)과 자연과학적 법으로 자기를 구원하려 했다. 인간은 인간속에 있는 지체(肢體)의 법, 죄의 법을 죽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발전시켜 자연계를 정복하고 실정법으로 사회를 조정해놓는 데 있다고 했다. 인간지식이 자연을 정복하면 자연계는 사람이 살기 좋은 여러 가정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율법을 지키고 율법에 자기를 복종시킴으로써 거기에서 잃었던 자아를 발견하고 참 자아를 실현하면서 구원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를 말했다. 이에 영지주의자들은 이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길이라 했다. 인간속에 있다는 영적인 화염이 사후에 육체의 무덤을 나와서 천상의 본향으로 돌아간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영지(靈知)에 의한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생의 영원한 탐구에 있어 자기가 자기를 구원해보겠다는 담대무쌍한 시대의 영웅, 실존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구원이란 인간의 자유라고 역설하면서 인간의 속박된 역사를 지식으로써만 자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필연과 운명 안에 갇혀 있으나 그러나 이 운명을 알고있다는 점, 이러한 생의 지식에서만 그 정도로 운명의 담벽을 넘는 출구가 있을 따름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타락이란 자유에서 부자유에로의 타락으로, 본래적인 자아가 결단의 자유를 피하고 자기를 전통이나 관습에 맡겨 살고 남의 여론에만 따라가고 자기의 판단과 주체성을 포기하는 이러한 모양으로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나>는 진정한 <나>가 되지 못하고 한낱 사람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해서 사람은 오늘도 또 어제와 같이 생활을 하고 내일도 또 오늘과 같은 생활을 계속해서 관습이 미래를 결정하는 일상성의 세계에 타락했다고 본다. 그리하여 이 타락으로부터의 구원의 길은 오로지 자기가 자기를 결정하는 주체적인 결단밖에는 없다고 한다. 여기서 바로 사람의 몸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영생의 도의 출현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증산도에서는 불로불사의 영생하는 비결을 누구든지 내 몸처럼 여겨라 고 말한다. 우리 인류는 틀림없이 한 몸이건만 마귀의 영이 인간을 점령하여 갈가리 갈라놓고 있는 고로, 마귀가 지배하는 영이 되어 인간들이 각각 자기만 생각할 줄 알았지 형제를 내 몸처럼 또 온 인류를 한 나무로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이 영생의 철학이 바로 세계를 통일하는 법이요, 세계를 통일하는 법이라야 만국을 다스릴 수가 있고, 만국을 다스리는 자라야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수 있는 고로 구세주가 바로 사망을 이긴 이긴자이며 이긴자가 구세주가 될 수밖에 없다 한다. 또 재림예수한테 인도를 받으면 신의 체험인 진동과 지혜와 예언 등과 함께 계시록 21장 4절과 고린도 전서 15장 51절을 인용하면서 영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생의 축복과 환희 넘치는 새 세상에서의 삶은 불로영생의 인간의 삶이라고 후천개벽에서도 말하고 있다. 증산 하느님의 인신 탈강, 그의 천지공사로 인하여 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상극지리가 상생지리로 변하여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도통군자이며 신선이 되는데 이는 인간 각자의 성심(誠心)과 노력 여하 그리고 닦은 바에 따라 받을 만큼 받게 되어지며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후천개벽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기氣를 흡수한 불로불사, 영생의 도道를 통한 영원한 삶, 네겐트로피와 무한한 생육이 있다. 특히 열역학의 제2법칙에서 나타나는 이용 가능한 것에서 이용 불가능한 것으로 변하게 하는 엔트로피의 증대가 있다면 감소도 있다는 것이다. 마이너스의 엔트로피, 곧 네겐트로피(Negentropy)는 생물의 생육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하고 생육에 적합한 조건을 정비하면, 생명체는 우주의 무한한 에너지를 흡수하여 무한히 생육할 수 있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토록 인간은 인간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닌 영원한 삶, 불로불사의 길을 찾아왔다. 인간역사는 보는 이의 눈에 따라 전쟁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 실낙원의 역사, 사랑과 미움의 인간역사 등등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또 인간이 환희 넘치는 영원한 삶인 불로불사의 길을 찾아 나선 여정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4. 내 사랑 꿈꾸며 백두산 곰과 같이 쑥 한 줌 마늘 한 통, 그리움 살라먹고 내 사랑 꿈꾼다 홀로 된 하나 하나가 하나되는 그 날을 - 그 날 - 박, 먹어봐! 그래. 에디나는 그릇에 가득한 음식 가운데 불에 구운 바나나 하나를 나에게 내민다. 얌, 타로, 옥수수, 코코넛, 아이비카를 넣고 삶은 들소와 산돼지 고기, 망고, 파인애플 등 무엇이든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한다. 그녀가 잘도 먹기에 에디나가 주는 군바나나를 받아먹는다. 바나나는 마치 군고구마와 맛이 비슷하다. 그러나 사실 이때 나의 마음은 이들 음식을 담은 그릇(?)에 가 있다. 불로불사의 이야기도 떨쳐버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릇이 금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앞서가기 시작한다. 파푸아뉴기니에 금이 많이 생산된다고 들었지만, 그 많은 금으로 바나나를 담는 그릇을 만들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얼마 전에 한 한국사람이 사금 채취허가를 연방정부로부터 두 군데나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에디나, 이거 어디서 가져왔어? 저기, 동생이 저곳에서 가져와 불에 구웠어.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어! 햇빛을 받아 빛나는 그릇을 가르치며 그녀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그녀는 이곳에는 저런 돌이 많다고 할 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히 금이다. 그래, 석유가 생산되기 전에 이 사람들은 원유로 얼굴과 몸에 까맣게 칠을 하고 춤을 추었지 ... 그게 몇 년 전까지 석유인 줄 몰랐었지! 어디? 난 보이지 않아! 다시 이런 돌이 어디에 많으냐고 묻자 그녀는 손짓을 하며 그리 멀지 않는 곳을 가리킨다. 아! 이제 보여! 정말 그곳에는 햇살을 받아 빛나는 물체가 보인다. 나무가 울창한 푸른 산과 너무나 대조적으로 황금빛이 빛나고 있다. 박, 이것 먹어봐! 아-, 벌어진 입이 오므라 들 줄 모르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들소고기를 먹으라며 입에 넣어 준다. 들소고기는 담백하고 맛이 있다. 코코넛과 아이비카를 넣고 삶아 고기가 부드럽다. 또 이름 모를 꽃향기가 나의 코를 간지렵힌다. 들소고기를 먹으며 에디나의 친구들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들이 까르르 웃는다. 모두가 에디나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해맑은 눈빛에 함부로 느낄 수조차 없다. 박, 맛있지! 저기 나의 친구들 어때? 내가 그녀의 물음에 아무말도 하지 않고 들소고기를 입에 넣은 채 그녀의 친구들을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나에게 묻는다. 박, 저기 친구와 달빛여행을 가는 게 ... 에디나는 나에게 마음에 드는 자신의 친구를 말하라고 한다. 그리고 달빛이 바나나 잎에 내리면 어젯밤과 같이 달빛여행을 가라고 한다. 에디나가 가르치는 그녀도 예쁘다. 그런데 괜히 그녀의 말에 신경이 곤두선다. 혹시 두 여자 사이에 싸움이라도 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디나, 난 에디나와 함께 오는 밤 달빛여행을 떠나고 싶어! 좋아. 박의 마음이야! 그럼 마을을 돌아보는 게 좋겠어. 나는 그녀를 따라 걷는다. 에디나와 나는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본다. 마을은 말 그대로 평화가 넘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환희 넘치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다. 간혹 숲 속에서 바나나와 망고를 나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운동화를 신은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더니 웃기도 한다 그래, 원시 공산사회임이 분명해! 자본주의 이후에 도래할 공산사회 보다는 좋은 것 같아. 지금까지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었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종말은 곧 공산사회의 시작이라 했지. 붕괴된 공산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거치지 않았지. 자본주의 사회 이후에 나타날 공산사회, 그 사회보다는 원시 공산사회가 인간적이지. 제도에 의한 공산사회보다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질서에 의한 공산사회가 인간에게 필요해. 마치 인조섬유나 공장에서 만든 무슨 무슨 제품보다 자연상태 그대로의 것이 보다 좋은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공장제품과 자연품이 조금의 차이를 두고 쓰임이 다르긴 하지만 자연품이 절대적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나눔과 섬김은 지구촌의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종말과 함께 도래할 공산사회 건설을 위한 하나의 도전이 아닌가? 다함께 잘 사는 지구촌 건설 이 잘 말해주지. 평등사회, 지구촌 가족의 평등한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데 그 공산주의 사회, 가난한 자도 배부른 자도 없이 더불어 즐기며 잘 사는 사회가 언제 또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까? 부시 사람들은 20세기 말까지 공동체를 지속시켜 왔다. 도시인들의 시간으로 수 천년 아니 수 만년일까. 현명한 인간이지. 형무소도 없고 경찰서도 없고 더구나 교회도 없는데 공산사회 생활을 해왔는가. 나이를 모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말이야! 이렇게 생각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처음엔 햇살이 스며들어왔지만 차츰 깊이를 더할수록 세상의 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모처럼 암흑의 세계에서 새로운 빛을 찾으려는 찰라 암흑을 통과한 후에 맞는 빛이 아니라 지나온 세상의 빛이 강하게 발길을 잡아당기고 있다. 에디나, 죽음에 대하여, 아니 에디나의 나이가 얼마지요? 나의 물음에 에디나는 무슨 말인지 다시 하라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 아차! 나이를 포트 모르스비 사람들도 알고 있는 이가 많지 않았는데 무슨 엉뚱한 ... 그녀는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나의 가슴을 파고든다. 달빛이 내리지도 않는 낮에. 그런데 방정맞게도 머리는 나뭇가지를 떠나 강팍한 나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오늘이 무슨 요일 ... 아니 몇 시간, 며칠이 지났을까? 출근을 해야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잘 익은 바나나를 보고 알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오늘이 며칠이란 말인가? 지난번에 볼 때는 꽃이 피어있던 바나나가 익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분명히 지난번에 본 바나나다. 나는 다시 바나나를 만져 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바나나가 사오일만에 이렇게 자라서 익었다고 볼 수 는 없는 것이다. 그럼 한 달쯤 지났을까? 그럴 리는 없어! 한편 나는 앞만 보고 달려도 시원찮은데 자꾸만 지나간 나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가려는 회귀성回歸性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가? 따지고 보면 나의 내력이나 현재의 삶이 허虛와 공空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는 허공인데 나는 왜 하나밖에 보지 못하고서 헉헉거리는가? 앉은뱅이 앉아서 천리를 본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리 내가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기로서니 ...... 이처럼 떨떨하게 궁상을 떨고 있을 때 다시 에디나가 물어온다. 박,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니야. 그냥 바나나를 보고 있어. 그럼, 우리 저기 보이는 산에 갈까? 응,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지?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또다시 시간을 셈하려 한다. 억세게 좋은 운을 악운으로 만드는데 익숙한 나였기에 세월 따라 더한 것은 이마에 주름살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가! 글세. 난 무슨 말인지 몰라. 아니, 돌아가고 싶어? 글세! 도무지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왜? ... 여긴 우리들의 세계야. 박은 박이면서 또 나, 에디나지. 에디나가 곧 박이란 말이야. 그리고 저기 보이는 나무며 풀이란 말이야. 박은 이미 에디나면서 박이 되었고 새가 되었어. 무슨말이야? 쉽게 생각하라고!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음 편하다. 그래! 내가 에디나가 되어 이렇게 마음 편히 산다면 컴퓨터가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에디나, 난 에디나가 되고 싶어! 극락조가 아름다운 깃털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하늘을 차 오른다. 새의 노래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여온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태양은 부시의 밤을 더욱 평화롭고 아름답게 채색한다. 빌레름산 정상이 더없이 하얗게 빛난다. 멀리 눈 덮인 산을 바라보던 나는 에디나의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나와 에디나는 나무꾼과 선녀로 하나가 되어 바나나 숲 속을 천천히 걸어들어 간다. 에디나, 유 오라이? Okay!" -- 끝 --